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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핵심을 찌르는 질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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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진정한 사랑은 큰소리치는 ‘선언’이 아니라, 전 인격적인 삶을 통해 ‘고백’되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루기 위해 날카로운 질문을 하실 때는 아무리 감추려 해도 숨길 수 없습니다. 그 때는 우리가 두 손 들고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할 때 입니다.

묵상질문

오늘 우리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실 때 마음이 아픈가요? 아니면 아무런 느낌도 없나요?


묵상 레시피

◆사무엘상 24:1-15 + 요한복음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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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24:1-15)
1 사울이 블레셋 사람을 쫓다가 돌아오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 다윗이 엔게디 광야에 있더이다 하니
2 사울이 온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 명을 거느리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찾으러 들염소 바위로 갈새
3 길 가 양의 우리에 이른즉 굴이 있는지라 사울이 1)뒤를 보러 들어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 굴 깊은 곳에 있더니
4 다윗의 사람들이 이르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 네 생각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 하니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 자락을 가만히 베니라
5 그리 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으로 말미암아 다윗의 마음이 찔려
6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7 다윗이 이 말로 자기 사람들을 금하여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하니라 사울이 일어나 굴에서 나가 자기 길을 가니라
8 그 후에 다윗도 일어나 굴에서 나가 사울의 뒤에서 외쳐 이르되 내 주 왕이여 하매 사울이 돌아보는지라 다윗이 땅에 엎드려 절하고
9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다윗이 왕을 해하려 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왕은 어찌하여 들으시나이까
10 오늘 여호와께서 굴에서 왕을 내 손에 넘기신 것을 왕이 아셨을 것이니이다 어떤 사람이 나를 권하여 왕을 죽이라 하였으나 내가 왕을 아껴 말하기를 나는 내 손을 들어 내 주를 해하지 아니하리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기 때문이라 하였나이다
11 내 아버지여 보소서 내 손에 있는 왕의 옷자락을 보소서 내가 왕을 죽이지 아니하고 겉옷 자락만 베었은즉 내 손에 악이나 죄과가 없는 줄을 오늘 아실지니이다 왕은 내 생명을 찾아 해하려 하시나 나는 왕에게 범죄한 일이 없나이다
12 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
13 옛 속담에 말하기를 악은 악인에게서 난다 하였으니 내 손이 왕을 해하지 아니하리이다
14 이스라엘 왕이 누구를 따라 나왔으며 누구의 뒤를 쫓나이까 죽은 개나 벼룩을 쫓음이니이다
15 그런즉 여호와께서 재판장이 되어 나와 왕 사이에 심판하사 나의 사정을 살펴 억울함을 풀어 주시고 나를 왕의 손에서 건지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요한복음 21:17)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 사울 왕은 왜 엔게디 광야에 왔습니까? (1-2절)
  • 다윗은 왜 사울 왕의 겉옷자락을 잘랐습니까? (3-4,10절)
  • 다윗은 곧 무엇을 느꼈습니까? (5절)
  •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는 늘 누구 앞에 서 있는 사람이었습니까? (6,15절)
  • 다윗에게 명분과 합리적 타당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10-13절)

택한 사람 삼천 명(2절)
엔게디의 굴은 험한 자연 요새였지만, 물이 풍부해 은신처로 적당한 곳이었다.
사울은 이곳에 숨은 다윗 무리를 잡기 위해 상비군을 꾸렸다. 다윗 무리와 비교해 볼 때 5배에 달하는 규모이다. 다윗을 반드시 잡아야 한다는 사울의 결심을 엿볼 수 있다.

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4절)
사울은 용변을 보기 위해 동굴로 들어갔다(3절). 용변은 진 밖에서 보아야 했으며(신23:12), 마침 들어간 동굴에 다윗이 있었다. 모압 왕 에글론의 예를 보아도(삿3:24), 다윗은 사울을 처리 할 명분과 합리적 요건을 찾을 수 있었다.

다윗이 마음이 찔려(5절) (히)와야크 레브-다빗 오토
문자적으로 ‘다윗의 마음이 자신을 쳤다’는 의미가 있다. 후회했다, 참회했다, 죄송스럽게 생각했다는 말. 다윗은 뉘우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마땅한 도리를 지켰다. 다윗은 여전히 사울을 ‘내 아버지(11절)’라 부른다. 왕과 신하, 혈연관계 (장인-사위)의 밀접한 존경심을 표한 것이다. 다윗은 모든 판단과 신원을 하나님께 맡긴다(15절).


짧은 기도

내 생명의 하나님이시여, 저는 항상 제 몸을 정결하게 하렵니다.
아버지의 살아 계신 손이 제 몸 구석구석에 닿고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저는 항상 제 마음에서 모든 거짓을 멀리하렵니다.
아버지의 진리가 제 마음속에 이성의 불을 밝힘을 아는 까닭입니다.

저는 항상 저의 가슴에서 모든 악을 내쫓고 사랑을 꽃피게 하렵니다.
아버지께서 제 가슴 깊은 성전에 자리하셨음을 아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제가 할 바는 하나님을 저의 손발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저에게 일할 힘을 베푸시는 이가 바로 하나님인 줄 믿기 때문입니다.

라빈드라나드 타고르_내 생명의 하나님께 (1861-1941, 인도의 사상가, 시인, 종교인)「사귐의 기도를 위한 기도선집」189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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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피상적인 사랑 고백

이전에도 몇 번 언급했는데, 꾸준히 챔버스의 글을 묵상했던 사람들이라면 눈치를 챘을 것 같습니다. 챔버스가 말씀을 풀어나가는 방식은 두 개의 단어 혹은 상반된 개념들을 대비시키며 진리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주님의 물음을 통해 참된 고백이 무엇인지를 비교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베드로는 주님의 물음에 대하여 ‘호언장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챔버스는 이러한 베드로의 고백이 ‘인간적 특성’(natural individuality)에 기인했던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저 훌륭한 사람을 보고 존경하는 차원에서 ‘사랑합니다’라고 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자연적 현상이라는 것이죠. 이러한 ‘natural individuality’라는 말은 [주님은 나의 최고봉]에서 50번 이상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이와 대조되는 개념이 있는데 ‘영적 인격’(personality)이라 불리는 것입니다. 본래적 인간의 특성이 아닌, 영적인 단계에서 주님을 향한 사랑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두 개념의 차이는 [오스왈드 챔버스의 제자도]에서 아주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성경 말씀은 성령의 조명을 떠나서는 와 닿지 않는다. 예수님을 시대를 초월한 영웅으로 보는 데 있어서는 영적인 통찰력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위해서는 영적인 통찰력이 필요하다. 이런 통찰력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며 거듭남을 경험할 때 주어진다.” p.27-28

영적 통찰력이란 무엇일까요? 자연적 인격이 영적 인격이 되어 주님을 만나는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21장에서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찾아와 송곳 같은 질문으로 베드로의 폐부를 찌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깊은 질문에 대하여 베드로는 그렇게 쉽게, 피상적으로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참된 사랑은 결코 큰소리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는 자마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말로만 사랑을 고백하지 말고 모든 행위로 고백하라는 뜻입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은 말로 고백하는 즉흥적인 언어의 유희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통해 모두에게 증명되어야 하는 그런 무게가 동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향해 사랑을 고백할 때는, 그 고백과 더불어 우리의 삶이 함께 드려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고백은 우리의 삶에 따라 참과 거짓이 명백히 밝혀지는 것입니다.

2. 아프니까 복음이다

주님께서 베드로의 심령 깊은 곳에 물음을 던지실 때, 베드로는 두려운 마음으로 주님과 마주서야 했습니다. 그렇게 주님 앞에 마주서고 보니 쉽게 주님을 사랑한다고 호언장담하지 못했습니다. 사랑한다고 쉽게 고백했던 그의 삶에서 수없이 무너졌던 과거가 생각났기 때문이죠. 너무 죄송하고 창피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폐부를 찌르는 주님의 질문은 우리의 마음을 참 아프게 합니다. 하지만, 그 질문에서 우리는 나의 아픔보다,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과거의 우리 모습이 생각날 것입니다.

이 부분을 아주 깊이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때, 이 말씀이 우리를 아주 아프게 합니다. 죄가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보다 더 지독한 아픔을 가져다줍니다. 죄가 우리들에게 주는 아픔은 점점 강도가 약해집니다. 왜냐하면 죄는 우리의 심령을 점점 무디게 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주님의 질문은 영적으로 우리를 아주 예민하게 만듭니다. 주님의 물음 앞에 진지하게 서는 사람들은, 아주 작은 주님의 신음에도 우리의 심령을 깊이 찌르는 아픔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챔버스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양심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가장 깊은 인격적 차원까지 우리를 아프게 합니다. 그 말씀은 심지어 혼과 영을 찔러 쪼개기까지 하므로 거짓이란 있을 곳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강하게 역사하실 때, 우리는 피할 수 없습니다. 마치 창의 끝이 우리의 폐부를 찌르듯이 깊이 파고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그 창이 파고 들어올 때 우리들에게 찾아오는 아픔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핵심을 찌르는 질문이 아프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이라는 사실입니다. 조금 더 생각해 볼까요? 주님의 말씀이 왜 우리를 아프게 할까요?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 말씀에 합당하지 않는 모든 것들이 고통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찾아오셔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시는 순간에, 주님의 자녀들이 아파하고 고통을 당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챔버스는 이 아픔의 순간을 ‘위대한 계시의 순간’이라고까지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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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원
묵상질문
오늘 우리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실 때 마음이 아픈가요? 아니면 아무런 느낌도 없나요?

기도

예...!
가슴이 아픕니다!
예...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라고 고백하는하루이길소망합니다!

아멘!!
2021.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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