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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함께 부활에 참여함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롬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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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십자가에서 죽고 주님의 부활과 함께 살아난 증거는 우리가 그 분을 뚜렷하게 닮는 것입니다.

묵상질문

당신의 어떤 부분이 주님을 닮았다고 말할 수 있나요?


묵상 레시피

◆사도행전 7:54-60 + 로마서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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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7:54-60)
54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로마서 6:5)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 순교할 때 스데반의 상태는 어떠했습니까? (55절 상반절)
  • 그는 무엇을 보았습니까? (55 하반절-56절)
  • 그를 죽이려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합니까? (59-60절)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55절)
스데반은 성난 군중과 순교의 상황 가운데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았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서신 것을 보았다. 그분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있지’않으시고 일어서 계셨다. 첫 번째 순교자인 스데반을 일어서 맞아 주시는 듯 하다. 스데반은 사람들 앞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인정하며 선포했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하나님 앞에서 스데반을 인정하고 계신다.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57절)
군중들은 성령의 역사를 마주하고도 사력을 다해 거부한다. 스데반을 통한 성령의 역사를 막기 위해 그를 ‘침묵’하도록 한다. 스데반은 온전히 성령의 침투하심을 인정했을 뿐 아니라 마음껏 일하시도록 자신의 전 존재를 내어드린 ‘충만’의 사람이었다(55절).

스데반의 마지막 말들(59-60절)
스데반의 두 문장은 예수님이 죽기 직전 하셨던 말씀과 ‘닮아있다(눅23:46,34).’ 두 죽음은 ‘닮은 꼴’이다. 모두 거짓 증인들이 있었으며, 죄명은 신성모독이었다. 모두 두 문장의 기도가 드려졌다.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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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부활에 참여함

오늘 말씀은 어제 나누었던 ‘십자가에 못 박힘’ 그리고 내일 묵상할 ‘영생을 나눔’ 중간에 위치한 내용입니다. 이 세 개의 말씀은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죽음’이 없다면 ‘부활도 없을 것’이며 ‘부활’이 없다면 ‘영생’의 문제로 나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죄에 대하여 죽는 것은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사시도록 하는 첫 단계입니다. 이제 그 부활 생명이 우리 안에 들어오는 과정을 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묵상에서 챔버스는 ‘주님과 닮는다’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에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닮는다는 것은 성령님이 추상적인 존재가 아닌, 실제적인 인격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격은 상호작용하며 영향을 주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재철 목사님의 책 [새신자반]에는 이런 글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성령님을 주술적이거나 마술적인 힘이 아닌, 인격자로 소개하셨다. 인격자가 아니시고서야 어찌 ‘위로자’, ‘돕는 자’가 되실 수 있겠는가? 천지를 창조하신 성부하나님께서 인격자시듯이, 성령하나님 또한 인격자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한다. 다시 말해 인격자이신 성령하나님과의 사귐을 통해 그분을 닮아가야 한다. 누가 성령 충만한 사람인가? 그대의 기도가 비록 서툴고 어눌하다 할지라도 그대가 성령님을 좇아 살면서 그대의 인격이 변해 가고 있다면, 그 인격의 변화가 남을 위로하고 돕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면, 그대야말로 진정 성령 충만한 사람이다.


부활하신 주님의 영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우리의 삶은 주님께 재조정됩니다. 저에게는 이 ‘재조정’이라는 표현이 아주 중요하게 들리는데, 우리의 삶이 주님께 새롭게 맞춰진다는 의미입니다. 이때 비로소 우리는 온전한 의미의 ‘거룩’이라는 말을 사용하게 됩니다. 챔버스가 하나님의 사역자들에 대하여 아주 비판적으로 사용했던 ‘거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거룩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얼마나 인간적이고 자기중심적이었는지를 지적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온전히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재조정’ 되는 순간 그 거룩은 참 거룩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 거룩에는 주님의 생명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사도 바울의 고백을 수없이 인용했습니다. 다시 한 번 그의 십자가와 부활의 신학을 요약한다면 이런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일치되려는 도덕적인 결단을 내리고 나면 예수님의 부활 생명이 인간 본성의 모든 부분을 점령한다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이 표현도 아주 강력하게 와 닿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생명이 인간 본성의 모든 부분을 ‘점령’(invade)한다는 것인데, 저는 ‘점령한다’는 표현을 ‘침투해 들어간다’는 느낌으로 읽으니 더 좋았습니다. 부활의 생명이 육신의 모든 부분에 침투해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강력한 성령의 역사로 가능합니다. 여기서 챔버스의 표현을 인용합니다.

“성령은 육체라는 집에서 손님으로 있을 수 없습니다. 삶의 전 영역을 지배합니다. 내가 나의 ‘옛사람’ 곧 죄의 유전이 예수님의 죽음과 일치되어야 한다고 결단하면, 성령이 나를 점령하기 시작하시며 나의 모든 것을 주관하십니다.”


조금 부정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점령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사람이 점령군이 되어 들어오면 모든 영역에서 다스리기 시작합니다. 전쟁에서 패한 사람은 그 점령군 앞에서 어떤 권리도 주장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살아나려면 모든 것에 순종하고 따르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육신이 완전히 죽고 성령님께 점령당하는 순간, 오로지 살 길은 성령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적극적인 순종’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성품을 ‘온전히 닮는 것’입니다. 제자의 도에 대하여 많은 고민을 하고 주의 제자로 살려고 힘썼던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님은 [나를 따르라]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본받는 것은 그리스도와 유사한 것을 실현하라고 우리에게 맡겨진 이상이 아니다. 우리가 본받을 형상은 우리가 아니다. 우리가 본받을 형상은 하나님 자신의 형상이다. 그 형상은 우리 안에서 형태를 띠려고 하는 그리스도 자신의 모습이다. 그리스도 자신의 모습이 우리 안에서 나타나고 싶어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모습이 될 때까지,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상대로 쉬지 않고 일하신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은 사람이 되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변모하신 분의 온전한 모습이다.


지난주에 이어 챔버스가 사용하고 있는 용어가 있습니다. ‘도덕적 결단’(moral decision)을 내리는 순간,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사실이 명백해 집니다. 도덕적 결단을 내리는 사람들 안에는 ‘예수의 생명’이 있음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내 안에서 발견될 때 나타나는 거룩이야말로 참다운 거룩입니다. 주님의 거룩이 내 안에서 역사하면, 우리는 새로운 영적 질서 속에서 살게 됩니다. 이것이 주님과 함께 부활하는 것의 참다운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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