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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하나님의 침묵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요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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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침묵하실 때, 그분을 찬양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분의 위대한 목적을 향해 당신을 인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묵상질문

지금 당신의 어떤 기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침묵하고 계신가요?
침묵 속에서 당신은 하나님을 신뢰하나요? 아니면 조바심을 내고 있나요?


묵상 레시피

◆하박국 1:2-5 + 요한복음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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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박국 1:2-5)
2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3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4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짐이니이다
여호와의 응답
5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여러 나라를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 너희의 생전에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할 것이라 누가 너희에게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11:6)
6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 하박국 당시의 시대 상황은 어떠했습니까? (3-4절)
  • 하박국은 하나님께 어떻게 호소했습니까? (2절)
  • 하박국의 탄식에 어떻게 응답하실 것입니까? (5절)

부르짖어도,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2절)
‘어느 때까지(히, 아드 아나)’라는 질문은 고발, 피해를 당한 입장에서 불평할 때 사용하는 전형적인 문구이다. 하박국은 불의한 세상을 보고도 침묵하시는 하나님께 탄식하고 있다. ‘부르짖다(히, 쉬봐)’는 생사를 오가는 매우 위급한 상황에 도움이나 구출을 요청하는 표현이다. ‘외치다(히, 자아크)’는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기 위한 부르짖음이다. 하박국은 죽음 직전에 이른 유대 사회를 보고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듣지 아니하셨다.’ 이는 하나님이 기도하는 자의 원수가 되셨다고 간주할 수 있는 상황이다(삼하22:42, 시18:41). 하박국은 하나님을 향해 ‘폭력이다!’라고 외쳤다. ‘도둑이야, 불이야!’라는 긴급한 외침과 같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구원하지 않으셨다.

겁탈과 강포, 변론과 분쟁(3절) 율법, 정의(4절)
‘겁탈(히, 쇼드)과 강포(히, 하마스)’는 사회적 무질서를 의미한다. 주로 정부 관리들, 이웃에 의한 억압을 나타내며 당시 여호야김 왕과 관료들에 의해 행해진 폭압으로 추정된다(왕하24:4, 렘22:13,17). ‘변론(히, 리브)과 분쟁(히, 마돈)’은 법정에 관련된 단어로 이웃들이 서로를 불신하는 상황, 갈등이 빈번한 상황을 나타낸다. ‘율법(히, 토라)과 정의(히, 미쉬파트)’는 짝을 이루어 나타난다. 하나님의 법이 제대로 지켜질 때 사회 정의 역시 제대로 세워진다. 하박국 당시 는 하나님의 법이 권위를 잃어버리고 사회 불의에 대한 법의 기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혼란의 시대였다.

너희는 여러 나라를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5절)
하나님은 하박국의 질문에 응답하셨다. 그 응답은 ‘놀랄만한 것으로’ 하박국도, 공동체도 생각지 못했던 방식으로 부르짖음과 외침에 응답하실 것이다. 질문은 하박국 개인이 했지만 하나님의 답변은 공동체 전체에게 주어졌다. 하나님의 응답은 매우 임박했다(너희의 생전에). 하나님은 그분의 법을 따르지 않고 불의한 유대 사회에 ‘바벨론의 정의’가 시행되도록 하신다. 여호야김과 관료들은 그들이 행한 폭력 하나님의 도구인 바벨론으로부터 받게 될 것이다(9절). 하나님의 침묵에 부르짖었던 하박국은 이제 하나님의 심판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한다(1:12-2장). 그리고 결국 크신 하나님을 경외하며 신뢰 가운데 찬양하게 된다(3:16-19).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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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의미

‘하나님의 침묵’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예화로 오늘 묵상을 풀어 가보겠습니다. 이한규 목사가 쓴 [행복을 향기처럼]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신앙인에게 가장 풀기 어려운 문제는 하나님의 침묵입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은 종종 이런 질문을 합니다. 하나님! 왜 저의 고통을 돌아보지 않습니까? 저의 다급한 문제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셨으면서 왜 그렇게 침묵하십니까? 얼마 전 일이었습니다. 저녁 6시 20분경에 아내와 저는 교회 앞에서 유치원 차를 타고 오는 딸 은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다리는 아내의 얼굴을 가만히 보니 행복한 미소가 깃들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은혜가 좋아하는 맛있는 어묵을 요리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은혜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여느 때와 다름없이 슈퍼마켓에 들르자고 졸라댔습니다. 웬만하면 은혜의 요청을 들어주겠지만 그 순간만은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집에 은혜가 좋아하는 어묵을 준비해 놓았는데, 영양가도 없는 과자를 사주어서 입맛을 버리면 안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자 은혜는 엄마 아빠의 마음도 모르고 막 떼를 쓰며 울었습니다. 껌 사줘요! 과자 사줘요! 엉엉엉! 은혜야! 집에 가면 맛있는 어묵이 있어! 조금만 참으면 돼! 그래도 은혜는 그 잠깐의 순간을 참지 못하고 집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울어댔습니다. 집에 도착한 후 아내는 울고 있는 은혜에게 재빨리 냄비에서 어묵 꼬치 하나를 꺼내 주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은혜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피어났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영양가 없는 껌과 과자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그 사람들의 종합적인 영양을 고려하여 잠시 침묵으로 대응하실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침묵 속에는 오히려 하나님의 위대한 음성이 들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11장은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려 주신 이야기의 일부분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으셨음에도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머무르셨다는 기록의 말씀입니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자신의 오라비가 죽은 후 나흘 동안이나 죽음의 비통함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고통의 시간에 주님은 침묵하고 계셨습니다.


사실, 챔버스가 맹장 수술 후에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그의 아내 비디는 요한복음 11장 4절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라는 말씀을 붙들고 확신에 차서 기도했었습니다. 하지만 챔버스는 죽었고, 하나님의 침묵으로 인해 비디는 혼돈의 시간을 견뎌야 했습니다. 비디가 깨닫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는 그녀가 원하는 응답이 아니라, 챔버스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응답의 결과가 우리가 매일 묵상하고 있는 [주님은 나의 최고봉]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침묵’은 우리가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하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이 침묵의 시간은 우리가 원했던 기도의 응답보다 훨씬 더 유익합니다. 이 시간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훨씬 더 가까이 나아가는 경험을 합니다. 우리가 이미 많은 묵상 글을 통해 배웠듯이, 기도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기 위한 수단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셨다고 자랑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응답받은 사례들을 쭉 나열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알아간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시간들 가운데 하나님의 침묵을 경험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제럴드 싯처는 [하나님의 침묵]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가장 좋은 응답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하시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하시는 일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우리를 바꾸고 싶어 하신다. 번역가이며 작가인 유진 피터슨은 이렇게 말했다, “기도는 행하거나 취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존재하고 변하기 위한 도구다.”


챔버스는 오늘 묵상에서 아주 도전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침묵하실 만큼 당신을 신뢰하십니까? 하나님의 침묵은 큰 의미가 담겨 있으며 하나님의 응답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 주님의 침묵입니다. 마리아와 마르다가 주님께 요청했지만, 그 요청에 대하여 주님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챔버스는 이러한 주님의 행동이 마리아와 마르다를 신뢰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주님은 지금 보이는 응답을 주시지 않았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고 계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응답이 없어도 여전히 주님의 일하심을 믿는 사람에게 주님의 침묵은 기도하는 자에 대한 신뢰의 표징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침묵하시면 주님을 찬양하십시오. 주님께서는 주의 위대한 목적을 향해 당신을 인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언제 응답이 나타날 것인가 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되는 순간 응답의 방법과 시기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이 행하시는 놀라운 일을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침묵을 우리가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에게는 확신이 찾아옵니다. 침묵이 곧 우리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게 되는 순간 우리는 놀라운 축복 속으로 들어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하는 대로 축복하실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침묵’ 그 자체로 은혜가 아니라, 침묵을 통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얼마나 친밀한 것인지를 깨닫게 하는 은혜를 주신다는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침묵을 통해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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