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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하나님의 속성을 드러내는 부르심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사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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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우리가 하나님을 잘 알면 알수록 우리 속에서 부르심이 명확해집니다.
  • 하나님의 부르심을 진정 듣기 원한다면, 나 자신이 부르심을 듣기에 합당한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묵상질문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를 순종의 준비가 되어 있나요?


묵상 레시피

◆ 출애굽기 4:10-17 + 이사야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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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4:10-17)
10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11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12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13 모세가 이르되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14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하여 이르시되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냐 그가 말 잘 하는 것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그의 마음에 기쁨이 있을 것이라
15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의 입에 할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희들이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16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
17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
(이사야 6:8)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 부르심을 고사하며 모세가 내세운 변명은 무엇입니까? (10절, 용어해설 참고)
  • 모세의 심정은 어떠했으며, 하나님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13-14절)
  • 하나님은 모세를 어떻게 돕겠다고 약속하십니까? (12,15-16,17절)
  • 하나님은 이미 무엇을 준비하고 하고 계셨습니까? (14절, 용어해설 참고)
  • 모세를 부르시고 도우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11절)
  • 이 모든 일의 주어, 주체는 누구입니까? (12, 14-15절)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라(10절) (히)로 이쉬 떼바림 말에 능통한 자, 말솜씨가 좋은 능변가.
행 7:22절 참고 하라.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

입이 뻣뻣하고 (히)케바드 느림, 우둔함, 무자비함. 바로의 ‘강팍함’에도 사용됨.

말 못 하는 자 (히)에렘 벙어리의, 문자적으로 혀가 ‘묶여있다’는 의미

노를 발하시고(14절) (히)와이하르 원형은 (히)하라. 타오름(불/분노), 맹렬하다, 진노하다.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14절) (히)요체 리크라테카 (히)‘야차’의 능동 분사형.
즉, 모세와 하나님이 대화를 나누는 이 순간에 ‘이미’ 아론이 이곳을 향해 오고 있음을 뜻함.


짧은 기도

저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아는 분은 당신뿐입니다.

그러므로 당신께서 보시기에 가장 좋은 일을 제게 행하소서.

제게 주기도 하시고 가져가기도 하소서.

제 뜻을 당신 뜻에 맞춰 주소서.

겸손하고 완전한 순종과 거룩한 확신 안에서

당신의 영원한 섭리를 따르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께서 허락하시는 모든 일들을 감사하게 하소서.

블레즈 파스칼_주님 주시는 근심(1623-1662, 프랑스 철학자, 종교인) 「사귐의 기도」562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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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를 부르시는 분

이틀 전 우리는 ‘소명’에 대한 챔버스의 독특한 관점을 보았습니다.
이사야가 부름 받은 것은 그를 향한 ‘특정한’ 부르심이 아니라, 이사야가 하나님의 음성을 구별하여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챔버스는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를 부르시는 분의 ‘속성’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들릴 수 있는 말씀이 ‘소수’에게만 들린다는 것이죠. 즉,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속성과 우리의 속성이 같을 때, 그 부르심을 들을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그분의 완전하신 섭리 가운데 다른 사람이 아닌 오직 우리만 인식할 수 있는 음성이 있습니다. 아주 특별한 사건 속에서 주님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다른 사람과 그 음성에 관해 자문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 영혼이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유지할 때 우리에게만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이사야의 소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이사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을까요?‘주파수’를 맞췄다고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좋은 라디오를 가지고 있어도 텔레비전 방송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나 자신의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주파수를 맞출 수 있는 것 아닐까요? 하나님은 어떤 주파수를 통해 우리들에게 말씀하실까요? 아니 우리가 맞추어야할 하나님의 영역은 무엇일까요? 중요한 것은 부르시는 분이 누구인지 아는 것이고, 우리 속에 그 분이 계실 때, 그 분의 소리가 들린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부르시는 분의 음성을 자꾸 ‘다른 누군가’를 통해 들으려 하거나,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나를 조정하도록 버려둡니다. ‘부르심’은 철저하게 부르시는 분과 ‘나’ 자신과의 관계인 것을 잊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잘 알면 알수록 우리 속에서 부르심이 명확해집니다.

2. 부르심을 들으려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우리의 ‘기질과 취향’을 고려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성품에 순종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기질과 속성 앞에 우리가 순종할 마음이 없다면 절대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을 수 없을 것입니다. 챔버스에게 있어서 이 부르심은 순종의 훈련이었습니다. 오로지 하나님만이 드러나야 한다는 철저한 자기 항복에서부터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우리의 고상함을 드러내려 한다면, 우리의 기질에 맞게 순종하려 한다면 절대로 우리에게 음성이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자신의 음성만을 들을 귀가 있기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의 영역 속에 들어가려면, 우리에게 근본적인 깊은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부르심을 듣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서 변화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순종 없는 따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항복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구별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를 훈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따르기 위해 훈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진정 듣기 원한다면, 나 자신이 부르심을 듣기에 합당한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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