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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하나님의 뜻을 나의 뜻으로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살전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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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빈손 들고 주께 가오니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를 구속하셔서 거룩하게 하소서!
  • 거룩한 성도가 결코 교만하지 않는 것은, 거룩이 구속의 결과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묵상질문

‘거룩함’을 노력해야 얻을 수 있다는 부담을 가지고 있습니까? 당신 안에 구속의 역사가 일어나면 거룩 때문에 고민하지 않을 것입니다.


묵상 레시피

◆데살로니가전서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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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전서 4:1-8)
1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끝으로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배웠으니 곧 너희가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2 우리가 주 예수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무슨 명령으로 준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4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대할 줄을 알고
5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고
6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언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라
7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
8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

  • 바울의 권면과 명령은 누구로부터 기인합니까? (1-3,6-7절)
  • 바울이 성도들에게 구체적으로 명령한 것은 무엇입니까? (3-6절)
  •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뜻은 무엇입니까? (7절)
  • 이를 위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허락하셨습니까? (8절)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1절)
데살로니가 교회는 전반적으로 모범적인 교회였다. 이방인 초신자들이었음에도 그들은 배운 바대로 행하는 성도들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미진했으며 당시 문화권에서 당연시 되던 성적, 도덕적 타락에 늘 노출되어 있었다. 바울은 ‘행하는 것’에 만족하거나 방심하지 말고 ‘더욱 힘쓰라(헬, 페릿슈에테, 고후8:2, 빌4:12 참고)’고 권면한다. 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에 더욱 차고 넘쳐야 할 것’을 말한다.’ 바울은 주 예수 안에서 이를 권한다. ‘안에서(헬, 엔)’는 예수님의 뜻에 합하여, 예수님의 영향권 아래, 그분의 존재의 뜻에 어긋남 없이 행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주 예수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무슨 명령으로 준 것을(2절)
‘명령(헬, 파랑겔리아스)’은 군사 용어로서 장교가 부하들에게 내린 명령, 반드시 이행해야 하는 권위 있는 명령을 의미한다. 바울은 성도들이 꼭 준수해야 하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이 명령의 본 출처는 ‘주 예수’로 ‘말미암은(헬, 디아, -를 통하여)’ 것이다.

하나님의 뜻(3절)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는 ‘마땅히(1절, 헬, 운, 접속사/헬, 데이)’ 과거 육체에 속한 일들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한다(3절). ‘뜻(헬, 델레마)’는 소원, 목적, 욕망, 기쁨, 뜻, 의지 등을 의미하는 단어다. 하나님이 열렬히 원하시는 것, 이루고자 계획하신 목적 즉 ‘거룩함(헬, 하기아스모스)’이다. 영어성경들은 이를 ‘성화(sanctification)’로 번역했다. 문자적으로는 ‘봉헌의 결과’로 이루어지는 성결을 가리킨다. 하나님께 봉헌된 자는 세속과 구별된다. 성도는 하나님이 ‘부르신(7절, 헬, 칼레오)’ 자들이다. 죄와 방종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선택하여 불러내신 사람들이다. ‘교회(헬, 엑클레시아)’를 뜻하는 헬라어는 ‘밖으로(헬, 에크)’라는 말과 ‘부르다(헬, 칼레오)’가 결합된 말로 ‘밖으로 불러낸 자들의 모임’이란 뜻을 갖는다.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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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룩해지려면

오늘 묵상의 제목이 전체 주제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나의 뜻입니까?”(Is God’s will my will?)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거룩’에 달려있습니다. 여러 번 언급했던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단순히 구원받은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따라 거룩한 자로 만드시기 위함입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구속’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베푸신 역사이지만, ‘거룩’은 우리의 의지적인 결단을 통해 이루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거룩’은 우리의 의지와 순종이 ‘구속’에 기초를 둘 때 이루어지는 것이지, 결코 스스로의 노력에만 근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묵상의 첫 문장입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나를 거룩하게 하실 것인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나의 뜻으로 삼을 것인가’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거룩은 우리의 의지적 노력으로만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뜻으로 삼을 때 시작됩니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주의 형상을 본받아]에 나오는 글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영적인 성품이 자라날수록 더욱더 분명하게 이해된다. 따라서 성도들은 그들의 영적 성장의 분량에 따라 하나님의 뜻을 다르게 이해한다. 물론 하나님의 뜻은 변함이 없다. 성도의 성품이 변하는 것이다. 오직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그리고 세상에 물들지 않은 강력한 습관적 거룩함으로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게 된다.


거룩이 구속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이런 뜻입니다.

거룩은 예수님께서 나를 구속하기 위해 행하신 모든 일이 내 속에서 일어나도록 허락할 때 시작됩니다. 단순히 ‘오, 나는 거룩하기를 원합니다.’라는 말로 거룩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내 속에서 역사할 때, 그로 인해 실제로 거룩하게 되는 일이 일어나야 합니다. 오늘 묵상에서 챔버스는 우리가 잘 아는 찬송 ‘만세반석 열리니’의 3절 가사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빈손 들고 앞에 가 십자가를 붙드네

의가 없는 자라도 도와주심 바라고

생명 샘에 나가니 나를 씻어 주소서


우리는 오로지 빈손으로 주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거룩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때 구속의 역사가 우리 안에서 일어납니다. C, S. 루이스는 [기도의 자리로]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빈손에 주신다”라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도 있습니다. 양손에 짐이 가득한 사람은 하나님의 선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 짐이 늘 죄나 세상 염려는 아닐 겁니다. 우리의 방식대로 그분을 예배하려는 조급한 시도도 때로는 짐이 되니까요. 내 경우만 하더라도 가장 단골로 기도를 방해하는 잡념은 중대한 내용이 아니라 잠시 후에 하거나 삼가야 할 일과 같은 자잘한 내용이지요.

양손에 가득한 짐-죄, 세상 염려, 우리의 방식, 잡념 등-을 내려놓고 빈손으로 주님께 나아갈 때, 우리를 채우시는 주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빈손 들고 갑니다.’ 분명한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거룩으로 받아들이십시오.”


2. 거룩의 증거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거룩해졌다는 증거는 무엇일까요? 챔버스는 거룩의 표징으로 ‘겸손’을 이야기합니다. 거만한 거룩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거룩은 가슴을 치는 회개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치와 전적 타락에 대한 깨달음에서 옵니다.”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우리에게 부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깨닫는 순간, 하나님이 내 안에서 구원과 거룩을 완성하셨음을 알게 됩니다. 이러한 믿음의 고백이 로마서 8장 39절에 나와 있습니다.

“…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거룩이 우리에게 주는 또 다른 변화는 이것입니다.

“거룩은 나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게 하고, 주님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 되게 합니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러한 하나 됨은 오로지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서만 이루어집니다. 챔버스가 여기서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절대로 결과로 나타나는 것을 원인으로 두지 마십시오.”


잘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종종 자신의 거룩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하고, 거룩한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주님께서 끊임없이 질책하셨던 위선적인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 누가 하나님 앞에 나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납하시지 않는다면 누가 하나님과 하나 되어 자녀 되는 권세를 누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거룩’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거룩이 원인이라면 우리는 교만할 것입니다. 하지만 구속의 결과로 거룩한 삶을 살게 되었다면 한없이 겸손할 것입니다. 거룩이 결과로서 나타나는 것임을 알 때, 순종과 섬김, 기도가 뒤따라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으로 인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사와 찬양이 지속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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