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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하나님을 향한 거룩입니까, 강퍅함입니까?

사람이 없음을 보시며 중재자가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사 5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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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강퍅한 마음을 드러낼 뿐입니다.
  • 하나님의 마음을 취하며 하는 중보 기도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의 기도입니다.

묵상질문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누구를 위해 중보하며 기도할까요?


묵상 레시피

◆출애굽기 32:1-14 + 이사야 5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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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32:1-14)
1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2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3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가매
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5 아론이 보고 그 앞에 제단을 쌓고 이에 아론이 공포하여 이르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6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8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예배하며 그것에게 제물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
9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
10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11 모세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12 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13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주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14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이사야 59:16)
16 사람이 없음을 보시며 2)중재자가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의 공의를 스스로 의지하사

  • 모세의 하산이 늦어지자 백성들은 무엇을 요구했습니까? (1절)
  • 아론은 백성들의 요구를 듣고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4절)
  •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뭐라고 부르십니까? (7,9절)
  • 하나님은 어떤 일을 행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까? (10절)
  • 모세는 백성들을 위해 무엇을 중보하고 있습니까? (11-13절)
  • 하나님은 기도에 어떻게 응답하셨습니까? (14절)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1절)
하나님은 볼 수 없는 분이고, 인간 지도자인 모세마저 눈앞에 나타나지 않자 백성들의 불안감은 커졌다. 우상은 표면적으로 인간이 신을 섬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인간이 신을 조정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4절)
이는 송아지 형상을 만드는 데 매우 세밀하고 오랜 시간이 걸렸음을 뜻한다. 아론은 모세에게 ‘불에 던졌더니 송아지가 나왔다(32:24)’고 변명하지만 거짓이다. 송아지는 고대 근동에서 주권, 넘치는 힘, 다산, 리더십 등을 상징했다.

내가 하는 대로 두라(10절)
이 말씀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중보기도를 기대하신다는 뜻으로 해석되어 왔다. 하나님은 모세가 백성들을 위해 기도하기를 원하셨다. ‘그럼에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성품이 깃든 말이다.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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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룩함 vs. 강퍅함

오늘 묵상에서도 챔버스는 하나님을 향한 거룩함과 강퍅함의 차이를 구별합니다. 놀라운 것은 기도하는 많은 사람들이 기도의 유익을 누리기보다는 잘못된 함정에 빠지기 십상이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경배하는 마음과 중보 기도는 병행되어야 합니다. 둘 중 하나가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오늘 말씀은 챔버스의 묵상 중 우리 신앙에 가장 유익한 주제 중에 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기도의 함정을 벗어나게 하는 ‘중보 기도’에 대하여 먼저 생각해 보겠습니다. 챔버스는 중보 기도의 정의를 이렇게 내리고 있습니다.

“중보 기도는 우리 자신을 붙들어 기도의 대상을 향한 그리스도의 마음을 취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우리가 하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경배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가만히 우리 기도의 내용을 생각해 보십시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경배하기 보다는 어떻게 우리 기도가 응답될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나요? 그렇게 하다보면 기도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논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강퍅하게 만들고 고집스럽게 만들어 갑니다. 이런 태도로,

“자신의 간청들을 하나님의 보좌 앞에 던져두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그분이 하셔야 한다고 명령을 내립니다.”


기도는 내 뜻을 관철 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나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굉장히 불경스러운 언어처럼 들립니다. 기도하면서 우리가 하나님께 ‘명령’한다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우리 기도가 그런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지 않을 때,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거룩을 상실한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는 횟수와 양이 증가할수록 더욱 우리를 강퍅하게 만들 것입니다.


2. 함정이 없는 기도

그 동안 챔버스는 신앙인들의 오류, 혹은 잘못된 신앙의 ‘함정’들에 대하여 많은 지적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사람들을 의식하거나 인기를 구할 수 있는 함정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조용한 시간을 가지며 영감 받는 것이 소중한 시간이기는 하나, 자신의 거룩함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성향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좋은 비교가 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요나는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기도도 하고 하나님의 음성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사이에서 논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심지어 요나서 4장 1절에 보면 이렇게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 전하기를 거부하며 다시스로 도망갔던 요나를 하나님이 잡아오셨습니다. 여전히 요나는 ‘싫어하고 성내며’ 하나님께 논쟁을 합니다. 하나님이 뜻을 돌이켜 니느웨를 향한 재앙을 거두신 것에 대해 자신의 생명을 가져가시라고 말할 만큼 화를 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깨닫게 하시지만, 본문에 나타나는 요나의 기도 속에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니느웨에 왔던 요나는 그 도시의 멸망을 선포합니다. 그 말을 들은 니느웨 왕이 모든 백성으로 하여금 회개하도록 명했고, 모든 백성이 왕을 따라 회개함으로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멸망시키겠다던 뜻을 철회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일은 요나가 원하던 일이 아니었습니다.


반면에 창세기 18장에는 소돔과 고모라를 위한 아브라함의 중보기도가 나와 있습니다. 32절을 볼까요?

32.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성경 앞부분에서 계속되는 하나님과의 흥정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계속해서 대화하시고 그의 흥정에 응하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지금 아브라함이 기도하는 내용 속에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멸망 받아야만 하는 그 도시를 향한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과 동일한 아픔을 가지고 아브라함은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마음을 아는 기도가 하나님을 ‘경배’하는 기도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시나요? 아브라함의 흥정 속에는 자신의 욕심이라곤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죠.


오늘 묵상에서 챔버스는 전혀 함정이 없는 사역으로서 ‘중보 기도’를 이야기 합니다. 중보 기도는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 이사야 59장 16절에서 하나님께서 안타까워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이 없음을 보시며 중재자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중보 기도자가 되는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며 그 분과 거룩한 관계 속에 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중보 기도는 기도하는 대상을 향해 그리스도께서 어떤 마음을 가지셨는지, 그 마음을 갖고 싶어 주님께 예배하는 마음으로 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기도를 할 때, 우리는 고집스러워질 수 없으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중보 기도는 절대로 잘못될 위험이 없는, 우리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덫이 없는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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