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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하나님과 교제한 이후에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출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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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통해서만이 개인적인 꿈이 하나님의 비전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묵상질문

‘something’ ‘nothing’ ‘everything’ 중 당신은 지금 어느 단계에 있습니까?


묵상 레시피

◆욥기 42:7-17+ 출애굽기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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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42:7-17)
7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여호와께서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
8 그런즉 너희는 수소 일곱과 숫양 일곱을 가지고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가 우매한 만큼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라
9 이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 가서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
여호와께서 욥에게 복을 주시다
10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11 이에 그의 모든 형제와 자매와 이전에 알던 이들이 다 와서 그의 집에서 그와 함께 음식을 먹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내리신 모든 재앙에 관하여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위로하고 각각 케쉬타 하나씩과 금 고리 하나씩을 주었더라
12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그가 양 만 사천과 낙타 육천과 소 천 겨리와 암나귀 천을 두었고
13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두었으며
14 그가 첫째 딸은 여미마라 이름하였고 둘째 딸은 긋시아라 이름하였고 셋째 딸은 게렌합북이라 이름하였으니
15 모든 땅에서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그들의 오라비들처럼 기업을 주었더라
16 그 후에 욥이 백사십 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 대를 보았고
17 욥이 늙어 나이가 차서 죽었더라

(출애굽기 2:11)
11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 하나님은 세 친구에게 어떤 평가를 내리십니까? (7절)
  • 하나님은 누구를 통해 이 일을 해결하게 하십니까? (8절)
  • 하나님은 욥을 어떻게 회복시키십니까? (10-17절)
  • 욥은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일을 겪었고, 어떤 사람이 되었습니까?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10절)
욥기의 결말은 고난 이전의 욥을 소개하는 1장과 닮아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온전한 사람이었으며, 많은 재산과 가족들을 거느린 다복한 사람이었다(1:1-5절).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8절)
욥은 모든 것을 잃고 극심한 고난 한 가운데 던져졌다. 그럼에도 인내한 욥은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다(약5:11). 하나님은 세 친구들 앞에서 욥을 인정하셨으며, ‘내 종’이라 부르신다(7-8절). 욥은 친구들을 위해 번제와 기도를 드릴 ‘중재자’가 되었다. 이는 이사야가 부른 ‘종의 노래’와 예수님의 사역 즉,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를 떠올리게 한다. 하나님은 욥에게 다시금 ‘이 땅에서의’ 번영과 회복도 허락하신다. 소유(10절), 명예(11절), 가축(12절)과 자손(13-16절), 장수(17절)의 축복. 욥이 갑절의 소유와 자손을 얻은 것은 분명 복이지만, 단순히 동화적인 결말로 볼 수만은 없다. 자녀를 잃은 아픔은 더 아름답고 더 많은 자녀로도 완전히 잊히지 않는다. 욥은 상처 입은 치유자이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5절).’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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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꿈이 하나님의 비전이 되는 과정

우리는 어제 묵상을 통해 하나님과 보조를 맞추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배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위대함에 우리가 보조를 맞추기 시작하면서 겪는 ‘좌절’은 결코 실패가 아닙니다. 그 시간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법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모세가 아직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기 전, 그의 마음속에 있던 열망을 가지고 행했던 일과 연관이 있습니다. 자기 민족이 고통당하는 것을 보고 정의감이 불타올라 애굽 사람을 살인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세에게 있었던 그의 개인적인 정의감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모세가 그의 정의감으로 인해 깊은 좌절가운데 40년간의 광야 시간을 지나고 나서야, 하나님께서는 친히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때 모세는 절망 가운데 아주 낮아졌고 내가 누구이기에 가리이까 (출 3:11)라고 하나님께 묻게 됩니다. 챔버스는 이러한 관계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모세는 자신이 백성을 구원할 사람이라고 깨달았지만 그는 먼저 하나님에 의해 훈련되고 연단 받아야 했습니다. 그는 개인적인 면에서 볼 때 옳았지만 하나님과의 교제를 배우기 전까지는 그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이 원문에서는 조금 길게 되어 있습니다. “Individual discouragement and personal enlargement”라는 말을 ‘개인적인 실패와 관계의 확장’이라고 해석을 하면 어떨까요?

하나님이 우리를 개인적으로 부르신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하지는 않으십니다. 오히려 개인적 부르심의 좌절을 통해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가 형성될 때, 그 부르심이 더욱 빛나도록 사용될 수 있다는 말이죠.


우리 신앙에 적용해 볼까요?

우리도 모세처럼 아직은 분명하지 않은 부르심 가운데 살아갑니다. 나는 분명히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철저하게 무시당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마치 광야에서 40년을 도망자로 살았던 모세처럼 말이죠.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을 통해 하나님과의 개인적 만남의 시간이 찾아옵니다. 그 시간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 부르심의 비전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십니다. 그리고 좌절 가운데 이렇게 말하죠. “오, 주님, 제가 누구인데 가겠습니까?” 그러면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출 3:14) 이렇게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인격적인 관계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챔버스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면서 내 마음대로 개인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무례한 것임을 배워야 합니다.”

또한 아주 중요한 사실인데,

“자신의 개인적인 노력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에 의해 불이 붙어야 합니다.”

나침반출판사의 홈페이지 ‘큐티 365일’ 섹션에 올라온 글의 일부(2007.3.19.)를 소개합니다.

무디 선생은 모세의 생애를 세 가지의 단계로 묘사했습니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큽니다.

첫째는, ‘something’ 의 단계로 모세가 왕자로 있을 때입니다.

이 때 모세는 자신이 뭔가를 할 수 있는 대단한 인물로 여겼습니다.

둘째는, ‘nothing’ 의 단계로 그 후 40년간 히브리 목자로 있을 때입니다. 광야에 살면서

자기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부족한 종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something’에서 ‘nothing’ 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셋째는, ‘everything’ 의 단계로 그의 인생의 절정기입니다. 이 때 모세는 아무것도 아닌 자라 할지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들어 쓰시면 권능자(everything)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신 모든 사람들을 보면 처음에는 지극히 평범한 질그릇에 불과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이 되었을 때,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보배를 담은 질그릇으로 성화되었습니다. 결국 우리의 능력이란 어떻게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서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사람이 되십시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비전을 받을 때, ‘something’, 무언가가 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러나 곧 그 비전에 착수하는 순간 40년 광야생활과 같은 ‘nothing’, 아무것도 아님을 경험하는 시절이 옵니다. 그제야 우리는 배우게 되는 것이 한 가지 있는데, 진짜 주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은 주님만이 나의 ‘everything’, 모든 것이 되어주신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모세를 통해 우리가 배운 것처럼, 자신의 개인적인 면에 집중해서 비전을 실현하려고 하면 하나님과 보조를 맞출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인생에는 좌절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과 성숙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역자]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사역자에게 주어지는 첫 번째 요구사항은 자발적으로 훈련에 임하는 자세이다. 열정적인 사람이 되는 것과 영적인 영향력에 감동을 받는 것은 쉽다. 그러나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려면 예수님과 진정한 사랑에 빠져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을 향하여’ 꾸준하게 걸어갈 수 있도록 우리의 삶을 잡아매어야 한다.


오늘날 훈련이란 그리스도인들에게 생소한 것 중 하나가 되어 버렸다. 현대인들은 훈련을 견뎌내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의 생명과 은혜의 체험을 허락하셨다. 그러므로 사역자는 자신을 훈련해야 한다. 사역자의 훈련은 자신을 개발하기 위한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대장 되시는 예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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