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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축복보다 하나님을 바라십시오!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요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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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하나님께서 우리를 흩으셔서 어둠과 황폐함으로 이끌어 가심은 실제적으로 우리 믿음이 어떠한지 묻고 있는 것입니다.
  • 믿음과 불신앙의 경계선에서 우리가 붙잡아야 하는 것은 ‘담대한 믿음’입니다.

묵상질문

당신의 믿음을 점검하십시오. 당신은 지금 떨고 있습니까? 아니면 담대하게 주님을 붙들고 있습니까?


묵상 레시피

◆베드로전서 1:12 + 요한복음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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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1:12)
12 또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데로 시집 가면 간음을 행함이니라

(요한복음 16:32)
32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 베드로가 편지하고 있는 대상은 누구입니까? (1절)
  • 편지를 읽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형편에 있습니까? (6-7절)
  • 베드로는 그들을 뭐라고 부릅니까? (1절 하반절)
  •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위해 어떤 은혜를 주셨습니까? (2-3절)
  • 큰 핍박과 박해 가운데서도 성도들에게 약속된 것은 무엇입니까? (5절)

흩어진 나그네(1절)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어려움을 당한 경우들이 있었다. 그들은 세상의 나그네(헬, 파라이코이)들이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 속해 있어 세상과 다르기 때문에 불공평한 처우에 놓인다. 때로 죽음의 위기에 놓인다.

은혜와 평강(2절)
은혜는 공로 없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기쁨과 감격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고달픈 현실 상황으로 인해 늘 ‘평강’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평강은 기대와 노력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은혜와 참된 샬롬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왔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5절)
보호함을 받고 있다는 동사(프루루메노이)는 현재 수동분사로 하나님의 절대적인 힘, 전능하심이 여전히 ‘진행’중인 상태를 나타낸다. 보호하시는 하나님은 완전한 구원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보호 하실 것이다.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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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께서 흩으심

이미 여러 번 챔버스는 우리가 겪는 ‘영적 어둠’과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흩으시는 고난’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늘 말씀 역시 동일한 맥락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각자 흩어지고 예수님 혼자 고난의 길을 가셔야 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제자들이 진실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믿음이 흔들리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입니다. 챔버스의 이 말이 많이 와 닿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진실했지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their faith was real, but it was disturbed.)


믿음은 있으나 ‘현실적인 상황’에서 그들의 믿음이 작동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는 믿음을 보여주셨지만 제자들은 자신들의 유익을 따라 각각 흩어졌습니다. 이것이 제자들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우리 믿음의 현주소가 아닐까요? 믿음은 있으나 ‘유익함’ 앞에서 무너지는 것 말입니다. 챔버스가 계속해서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거룩함으로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맺고 있다면 ‘현실적인 상황’에서도 이 믿음이 작동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온전한 관계가 맺어진다면 우리는 제자들이 경험했던 것과는 ‘다른 흩어짐’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사역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내면의 절망을 향해 흩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소위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내면의 죽음을 겪게 될 것입니다.”


사실 이 부분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제가 이해한 대로 다시 표현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일 혹은 자신의 사역 때문에 흩어짐으로 주님을 홀로 두게 합니다. 하지만 올바른 관계 속에서 경험하는 흩어짐은 진정한 내적 죽음의 의미를 아는 복된 흩어짐일 것입니다. 흩어짐의 경험은 외롭고 힘든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흩으실 때 반드시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이 있습니다. 철저한 내적 절망과 황폐함 가운데서 주님이 함께 하심을 경험하는 것은 우리에게 큰 축복이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에 대하여 준비가 되어 있으신가요?” 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나요? 이러한 흩어짐의 상황은 우리가 만들거나 우리가 원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개입하셔서 만드시는 것입니다.  요한 웨슬리 목사님의 유언 가운데 참 멋진 문장이 있습니다. 우리도 기억하고 붙들었으면 좋겠습니다. “The best of all is God is with us.”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은 이러한 경험과 상황을 통과하면서 강화되고 위로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흩으시는 이 자리에 한 번이라도 나아가 경험한 사람들은 어떤 내적 황폐함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현실 속에서 작동하는 믿음입니다.


2. 믿음의 경계선

오늘 묵상의 원 제목이 “Those borders of distrust”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믿음과 불신앙의 경계가 무엇인지를 말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라는 주님의 말씀이 바로 그 경계를 보여줍니다. 챔버스가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흩어질 때 주님을 홀로 두고 떠난 것은 아닙니까?

우리의 상황에서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까? …

당신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원하시는 대로 뭐든 하시도록 허락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눈에 뜨이는 축복으로부터 멀어질 것에 대해서도 준비가 되었습니까?”


이러한 질문들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믿음이 어디에 있는지 점검하게 됩니다. 오늘 묵상에서 제일 중요한 문장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가 되실 때까지 우리 모두 자신의 유익을 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진실한 것이지만 아직 흔들림이 없는 영구한 믿음은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이 어떠한지 증명되는 순간, 아니 그것이 증명될 때까지 하나님은 서두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강제로 우리를 끌어가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러한 기다림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 믿음이 ‘주님과의 관계’보다 그분이 ‘주실 축복’에 온통 관심을 쏟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 깨달음은 아픔의 순간입니다. 하지만 아픔을 통해 우리는 기쁨과 감격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렇게 믿음의 경계선에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주 기초적인 믿음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 용기입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 “…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오늘은 짧지만 참 멋진 글들을 소개해드리고 있는데, 존 파이퍼 목사님의 책 [하나님을 기뻐할 수 없을 때]에서 소개하고 있는 조지 허버트의 시 ‘쓰고도 달도다’도 그 중에 하나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노하신 주님

당신은 사랑하시나 때리시며 내던지시나 일으키시나이다.

나도 이렇게 하겠나이다.

불평하겠으나 찬양할 것이며 몹시 슬퍼하겠으나 인정할 것입니다.

내 모든 시큼달큼한 날 동안 애통하며 사랑하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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