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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최상의 영광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행 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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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우리는 최고의 영적 상태에서 최상이신 주님의 영광을 묵상합니다.

묵상질문

주님 때문에 놓을 수 있는 것, 포기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묵상 레시피

◆히브리서 3:12-19 + 사도행전 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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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3:12-19)
12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15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격노하시게 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으니
16 듣고 격노하시게 하던 자가 누구냐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모든 사람이 아니냐
17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 누구에게 노하셨느냐 그들의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범죄한 자들에게가 아니냐
18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19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사도행전 9:17)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 반역한 출애굽 백성들도 처음에는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16절)
  • 그들은 범죄함으로 어떤 결과를 맞이했습니까? (17절)
  • 그들이 하나님을 격노하게 만든 것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18절)
  • 그들은 왜 그런 행동을 했습니까? (19절)
  • 히브리서 기자가 성도들에게 거듭 당부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12-13절)
  • 믿음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는 자가 누릴 복은 무엇입니까? (14절)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14절)
‘참여한 자(헬, 메토코스)’는 길동무, 함께 하는 짝을 의미한다. 첫 믿음과 확신을 잊지 않는 자는 예수님의 동료, 그분의 짝이 된다.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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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최상의 영광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하는 이야기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영광을 대하고 눈이 멀었던 바울이 다시 보게 되었을 때, 그가 주님의 모습을 본 이후에는 다른 어떤 것도 주님의 영광과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2절 말씀.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사도 바울의 이 고백이 어떤 의미일까 묵상했습니다. 왜 이런 고백을 하게 되었을까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진정으로 주님을 만난 사람들의 고백은 다 그랬던 것 같습니다. 가장 귀한 가치를 발견한 사람들이 덜 중요한 가치에 눈길을 두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짐 엘리엇이 했던 말을 기억하시나요?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해 영원하지 않는 것을 버리는 자는 절대 어리석은 자가 아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자꾸 이것저것 저울질하는 것은 아직 최고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의 방증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3장 44절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너무나 당연한 일이죠. 밭에 감춰진 보화가 있음을 믿는다면, 그리고 보화가 묻힌 그 땅을 살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가진 소유를 마땅히 팔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가슴을 가장 뛰게 했던 때가 언제인가요?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바로 나를 위해 죽으시고 살아 나셨다는 것을 고백했던 때가 아닌가요? 챔버스가 늘 이야기하는 것처럼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은 언제든 ‘찢겨진 빵과 부어지는 포도주’가 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인간의 열심이 또 다른 관심을 만날 때,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것이죠. 오늘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입니다. 우리는 누구에게 무엇을 전하고 있습니까?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는 1735년 미국 조지아에 선교사로 떠났습니다. 그는 모든 일에 열심이었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미국으로 향하던 배에서 풍랑을 만났을 때, 웨슬리는 죽음 앞에서 담대했던 모라비안 교도들을 보면서 부러움을 느낍니다. 조지아에 도착한 후 선교를 위해 웨슬리는 열심히 사역을 감당했지만 뭔가 허전했습니다. 그러던 중 자신의 신앙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고 모라비안교 목사인 스팽겐베르크에게 찾아가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그 때 스팽겐베르크 목사가 웨슬리에게 물었습니다. “웨슬리 선생, 성령께서 친히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고 계십니까?”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하여 존 웨슬리는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다시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습니까?” 이 질문은 웨슬리가 수없이 들은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하죠. “네. 그는 세상의 구주이십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주님은 나의 구주입니다!”라고 고백하지 못했습니다. 존 웨슬리가 진정한 전도자가 된 것은 주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난 후입니다. 찬란한 영광을 본 후의 일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 고백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챔버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영적인 사람이 항상 지니고 있는 특징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잘 깨달은 후에 다른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목적이신 그리스도를 알려주려고 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그 인생의 단 한 가지 집중된 열정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사람을 보았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최고의 영광이신 주님을 보고 난 후 주님의 매력에 푹 빠져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최고의 영광이신 주님을 고백하고 있다면 다른 것에 우리의 시선을 빼앗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영적일 때는 주님의 매력에 온전히 빠져 있지만, 다른 것에 한 눈 팔고 있는 자신을 볼 때는 영적으로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 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것은 ‘의지적 결단’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 같이 주님만을 바라보며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유명한 말씀이 있죠.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오늘 묵상글 마지막에 챔버스가 인용한 시는 1871년에 메리 D. 제임스가 쓴 “모든 것을 예수님께(All for Jesus)”라는 제목의 찬양 시 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내 눈이 주를 뵌 이후로 다른 모든 것을 보지 않게 되었다네.

십자가에 달리신 주를 뵐 때에 나의 영혼을 사로잡으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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