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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예수 없는 경건을 주의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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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요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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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려고 하지 않으면서 겉으로 경건하게 살려고 애쓰는 ‘텅 빈 경건’을 주의해야 합니다.

묵상질문

당신이 추구하는 것은 경건의 모양입니까?아니면 경건의 능력입니까?


묵상 레시피

◆요나 4:1-4 + 요한복음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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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 4:1-4)
1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2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3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
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

(요한복음 16:14)
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 요나의 현재 상태는 어떠합니까?(1절)
  • 요나는 왜 화가 났습니까? (2절)
  • 요나는 하나님께 무엇을 간청합니까? (3절)
  • 하나님은 요나에게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4절)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1절)
‘싫어하다(히, 와이예라으 라아 게돌라)’는 극심한 불쾌감과 분노를 뜻한다. ‘성내다(히, 하라)’는 ‘표면이 몹시 뜨거워지는 현상’을 나타낸다. 요나는 하나님께 순종하여 니느웨에 메시지를 전하는 일을 완수했음에도 기쁨이 아니라 ‘화’가 난다. 그의 순종은 말씀에 대한 순종이었을 뿐, 하나님의 마음과 의중, 뜻에까지 순종한 것은 아니었다(2절). 요나는 선지자였고 하나님의 종이었지만 실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4절)
하나님은 요나의 잘못을 세세히 말씀하지 않고 질문으로 대체하신다. 가인의 안색이 변하고 분낼 때에도 하나님은 동일한 질문을 하신다(창4:6). 하나님은 화가 난 이유를 표면이 아니라 그들의 내면에서 찾도록 하신다. 경건의 모습이 아니라 화가 나도록 한 내면의 동인이 무엇인지 스스로 깨닫도록 하신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4:7).’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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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경건

오늘 묵상에서 챔버스는 당시 유행했던 경건 운동에 대하여 비판합니다. 이러한 비판은 오늘날 교회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강조하는 ‘기도와 묵상’ 역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단지 겉모습의 경건일 뿐입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은 상실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물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경건에는 성령님께서 증거하시는 경이로운 능력과 기적이 나타나는가? 그렇다면 진정한 경건은 무엇일까요?

“성경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체험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향해 우리의 인격으로부터 나오는 열정적인 헌신과 관련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상관없는 경건의 모양이나 경험은 다 거짓입니다.”


진정한 경건은 그리스도의 인격이 우리를 통해 나타나고 증거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신앙의 연수, 혹은 경건의 시간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인한 성품의 변화입니다.

지난 해 [텅 빈 경건]이라는 책을 쓰며 바리새인들의 거짓 경건에 대해 여러 가지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 중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가지고 나오라 하십니다. 우리 죄를 용서하겠다고 하십니다. 그것이 우리가 믿는 복음의 본질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죄뿐만 아니라 죄인도 미워했습니다. 이들에게 정의는 시퍼렇게 살아 있으되 사랑은 없었습니다. 누군가를 아프게 하고 정죄했습니다. 복음은 정의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 위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음을 믿으며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본질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보면 명확하게 두 가지 방향을 향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는 자들을 향한 긍휼의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말씀에는 정통하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질책입니다. 당시 율법에 능통했던 바리새인과 제사장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경건’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기준으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했습니다.

‘판단’의 특징은 편을 가르는 것입니다. 기준점을 가지고 편을 가르면 아군과 적군이 생깁니다. 또한 자신들이 상대적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스스로를 만족스럽게 여기며 위안을 삼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적대시하던 바리새인들의 불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들의 율법적 기준에 서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기준은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이었으니 말입니다.

지식은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려고 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은 다른 사람을 섬기려 합니다.

마태복음 23장 2-3절 말씀을 메시지 성경으로 보겠습니다.

“종교 학자와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율법에 관해서라면 유능한 교사들이다. 모세에 관한 그들의 가르침을 따른다면 너희는 잘못될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따르는 것은 조심하여라. 그들이 말은 잘하지만, 그 말대로 살지는 않는다. 그들은 그것을 마음에 새겨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 모두 겉만 번지르르한 가식이다.”


이들의 문제는 틀린 말을 하는 게 아니라, 말하는 대로 살지 않는 것입니다. 이들의 문제는 경건의 내용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경건한 삶을 살지 않는 것입니다.

‘텅 빈 경건’입니다. 복음의 본질이 존재하지 않는 경건은 거짓입니다. 텅 빈 경건입니다. 진정한 경건은 행위에만 있지 않습니다. 그 속에 복음의 본질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하는 것 중에 하나는, 예수님을 단순히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경건의 모범쯤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경건은 거듭난 자의 삶을 통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누는 중생의 체험과 고백, 그리고 그러한 거듭남으로 인해 이 세상에 속하여 있으나 하늘나라의 삶을 사는 모습이 나타나야 합니다.

텅 빈 경건의 단적인 예 중의 하나는, 경건을 어떤 ‘상징물’ 쯤으로 대치하려는 시도입니다. 조금 심하게 이야기 하면 ‘영적 부적’을 달고 경건의 모양을 흉내 내는 것이죠.

교회에 걸려있는 십자가와 목에 걸고 다니는 십자가, 그리고 타고 다니는 차와 집안에 걸린 십자가가 있는데 십자가의 능력이 나타지지 않는 것은, 단지 모양만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삶은 단지 우리에게 상징적인 모범으로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통해 그분의 삶이 드러나야 합니다.

오늘 본문 요한복음 16장 13-1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온전히 자신을 맡기면 성령님께서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오늘 묵상에서 챔버스의 표현이 아주 좋습니다.

“성령님은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셨는지 그 의미를 내게 알려주시고, 특히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객관적으로 이루신 일들을 내 안에서 주관적으로 적용하십니다.”


찰스 프라이스가 쓴 [진정한 그리스도인]에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내가 방문하고자 하는 도시로 가는 버스의 출발 시간을 기록한 시간표를 하나 가지고 있다고 합시다. 그 시간표는 진실이며 정확하긴 하지만, 그것이 나를 그 도시로 데려다 주지는 않습니다. 시간표가 진실이며 내가 거기서 정보를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직 내가 그 시간표에서 알아낸 시간에 버스를 타서 그 도시로 감으로써 시간표에 나오는 정보가 나의 경험이 될 때라야 그 시간표가 진정으로 가치가 있게 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진리를 경험하는 것보다는 진리를 믿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성경에서 보여주는 진리에 견고한 기초를 두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앙이 삶으로 나타나며 진리의 말씀을 삶에서 경험함으로써 성경의 진리가 삶에서 역사하는 것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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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항
복음은 정의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위
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음을 믿으며 살아가는것...하나님의 마음은 다른사람을 섬기는것..패턴이되는 경건을 경계할것.
진리로 인도하시는 성령님을 따라 삶으로!
2021.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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