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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진리를 아는 방법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요 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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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하나님의 분명한 말씀 앞에서 핑계를 댈 수는 없습니다. 단지 순종과 불순종 사이에서 결단해야 합니다.

묵상질문

말씀 때문에 마음이 아픕니까? 그 아픔에 대해 깊이 묵상해 봅시다. 그것이 성장통임을 알게 될 때 감사한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묵상 레시피

◆누가복음 14:15-24+ 요한복음 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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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4:15-24)
15 함께 먹는 사람 중의 하나가 이 말을 듣고 이르되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하니
16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17 잔치할 시각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이르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18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19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20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21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 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22 종이 이르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아직도 자리가 있나이다
23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요한복음 7:17)
17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 큰 잔치가 열렸고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16-17절).
  • 그러나 초대된 사람들은 무엇을 변명하며 거절하였습니까? (18-20절)
  • 주인은 그들을 대신하여 누구를 초대하였습니까? (21절-23절)
  • 초대를 거절한 사람들은 어떤 결과를 맞았습니까? (24절)
  • 나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혹 변명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18절)
초대를 거절한 사람들에게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으나 의도는 비슷했다. 잔치에 참석하는 일보다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더 좋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들에게는 해야 할 일들과 더 중요한 ‘대상’이 있었다. 각자 우선시하는 가치와 기준이 있었다. ‘좁은’ 문은 이 모든 것을 다 가지고 통과하지 못한다. 맨몸으로 왔으니 맨몸으로 돌아갈 것이다(욥1:21, 전5:15).

변명한 내용도 그리 급한 것이 아니었다. 밭을 보러(헬 이데인) 간다는 사람은 밭을 사기 위해 보러간 것이 아니라 이미 산 밭을 둘러보러 간 것이다. 소를 시험하는 사람은 소를 되파는 소 장수로 보인다. 만일 소 장수가 아니라면 소 열 마리로 갈아야 할 만큼 큰 땅을 지닌 부유한 자로 추정된다. ‘시험한다(헬, 도키마조)’는 말은 소를 사기 위해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산 소를 시험한다는 것이다. 잔치를 거절할 만큼 급한 사안도 아니었고, 당장 일해야 먹고 살 만큼 급한 형편도 아니었다. 장가든 사람의 태도는 더욱 완고하다. ‘가지 못하겠노라(헬, 우 뒤나마이 엘데인)’는 ‘나는 절대로 갈 수 없다’는 강력한 거절의 뉘앙스다.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 초대한 사람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어 고의적으로 거절한 경우다.

한편, 초대받은 이들이 변명한 이유들은 신20:5-7, 24:5절에 언급되는 전쟁 면제 규정과 유사하다. 복음의 초청은 거룩한 전쟁에 참여하는 것과 다르다. 복음은 누구를 위한 사역이나 헌신이 아니다. 복음은 ‘구원’의 ‘기쁜 소식’이다.

가난한 자, 몸 불편한 자, 맹인들, 저는 자(21절)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23절)
병행 본문인 마태복음에는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라’고 나온다. 그러나 누가는 천대받고 소외당하는 사회 계층에 관심한다. 21절의 네 부류는 당시 거리나 골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외된 자들이었다. 마태는 한 번의 추가 초청으로 끝나지만, 누가는 두 번 더 초청한다. ‘길과 산 울타리 가’ 즉, 성 밖 이방인들에게까지 초청을 확대한다.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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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으로 성장하려면

오늘 묵상에서는 영적 지식을 얻는 것과 과학적 지식을 터득하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 배우게 됩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과학적 지식은 ‘호기심’을 통해 얻고, 영적 지식은 오로지 ‘순종’을 통해서만 얻습니다.

“영적인 것을 이해하는 황금률은 지능이 아니라 순종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을 배우고자 한다면 순종해야 합니다. 만일 어떤 일이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한다면, 순종하지 않으려는 무언가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지적 어둠이 ‘무지’에서 비롯된다면, 영적 어둠은 우리 안에 순종하지 않으려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기억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주의 말씀으로 마음속에 임하게 할 때 회피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속에 들어 올 때,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 말씀을 요청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회피하는 것은 이미 그 말씀을 알고 있다는 증거이며 그 말씀에 순종하고 싶지 않는 마음에 기인합니다.

[본회퍼와 함께하는 하루]에 나오는 글입니다. 시편 119편 19절의 기도입니다.

“…주의 계명들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하나님의 계명을 내게 숨기지 마시라는 외침은(시 119:19) 하나님의 계명을 알고 있는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당신의 계명을 알게 하셨기에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척 변명할 수 없음은 확실합니다. . .

우리가 처한 문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단순합니다. 곧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행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불순종의 결과로 계명을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우리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계명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불순종하며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영적 지식’은 순종과 분명한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곧바로 우리를 시험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5장 23-24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이 말씀이 우리에게 왜 시험이 됩니까? 말씀에 따라 순종하면 영적으로 성장할 것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현재 우리에게 해당하는 말씀이며, 우리는 단 한순간도 주님을 속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아무것도 감출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진리의 빛이기 때문입니다. 변명하고 감추는 것, 순종하지 않는 모든 것들을 들춰내십니다. 진리의 영이 우리 가운데 들어오면 우리의 양심이 아주 민감해집니다. 영적 지식이 성장할수록 민감해집니다. 아주 작은 죄에도 마음이 아픈 것은 말씀의 칼이 우리의 심령을 찌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우리를 아프게 할 때 즐거워야 합니다. 그만큼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성장통’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키가 한참 자랄 나이의 아이들이 겪는 아픔입니다. 왜 이런 통증이 찾아올까요?

아직까지 성장통이 생기는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답니다. 다만 몇 가지 추정하는 원인이 있을 뿐입니다. 첫째는 아이들의 뼈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무릎 근처의 힘줄이나 근육이 뼈의 성장 속도에 못 미쳐 근육과 힘줄을 당겨 일시적으로 통증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 조직이 손상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둘째는 아이들은 하루 종일 뛰면서 노는데 이로 인한 과도한 운동으로 성장통이 생길 수 있다고 합니다.


분명한 것은 ‘성장통’을 겪는 모습을 보면서 그 아이가 자라고 있음을 알게 된다는 것이죠. 그러니 고통을 회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겪어야 할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챔버스의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의 말씀으로 마음속에 임하게 할 때 회피하지 마십시오. 만일 당신이 회피하면, 당신은 종교적인 위선자가 됩니다.”


원문에서 ‘위선자’는 ‘humbug’라는 단어로 ‘사기꾼’을 뜻합니다. 이 의미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분명히 들어왔는데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위선자요, 사기꾼입니다. 말씀을 아는데도 말씀대로 살지 않을 때 가면을 쓴 위선자가 되고, 그 위선으로 남을 속일 수 있으니 사기꾼이 됩니다. 이러한 상태로 살아가면서 어떻게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영적으로 기괴한 괴물로 변해가지 않겠습니까?

오늘 묵상의 마지막 말씀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먼저 순종하십시오. 광신이라고 생각될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말씀하신 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이 말의 뜻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가 순종하는 삶을 살 때, 말씀을 모르는 사람들은 광신자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진리의 영이신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신의 신념을 밀어붙이는 ‘맹신’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대로 산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광신’이라는 말을 듣는다면 기뻐하십시오! 우리가 영적으로 자라고 있다는 증거요, 좁은 길을 따라 영생으로 가고 있다는 명확한 표식이 될 테니 말입니다.


우리가 순종할 때 알게 되는 것에 대해 [주님은 나의 최고봉 스터디 가이드]에서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순간 우리는 즉시 시험을 받게 됩니다. 이를테면 말씀에 대한 순종 테스트입니다.

둘째로, 자기변호는 하나님이 특별히 싫어하는 죄입니다.

셋째로,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위선자’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세상 사람들은 그 성도를 광신자로 평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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