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주보 QT MY 메뉴
  • Home
  • >
  • QT
  • >
  • 주의 뜻을 행하기
이전으로
2021년 09월 23일 목요일
다음으로
이전으로
2021년 09월 23일 목요일
다음으로
주님은 나의 최고봉

주의 뜻을 행하기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눅 18:31
video poster

한 줄 노트

  • 주님의 뜻을 행하는 것은 주님이 실어 주신 짐을 지고 주님이 가신 길을 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 우리의 최종 목표는 십자가를 지는 것을 넘어, 십자가로 인해 주님의 은혜 가운데 영광에 이르는 것입니다.

묵상질문

당신에게 하신 주님의 가장 불합리한 명령은 무엇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묵상 레시피

◆이사야 53:10-12 + 누가복음 18:31
펼치기/접기

(이사야 53:10-12)
10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11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12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누가복음 18:31)
31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 여호와의 종이 상함과 질고를 당한 것은 누구의 뜻입니까? (10절)
  • 이를 통해 하나님이 뜻하신 바는 무엇입니까? (11절)
  • 여호와의 종이 마다치 않고 끝까지 완수한 일은 무엇입니까? (12절)
  • 여호와의 종이 최종적으로 이르게 될 결과는 무엇입니까? (10-12절)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10절)
‘영혼(히, 나프쇼)’은 목숨, 생명으로도 번역될 수 있다. 속건제물(히, 아솸)은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기 위해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 제물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도록(11절) 종으로 그 대가를 치르게 하신다. 이로써 맺게 되는 결실은 두 가지다. 1) 하나의 결실은 씨(히, 제라으), 즉 후손이다. 종의 고난과 죽음은 당장 땅에서 끊어진 자처럼 보인다. 그러나 종의 순종으로 생명을 얻은 ‘후손’들을 통하여 종의 생명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2) 또 하나의 결실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것이다. 종은 하나님이 지워주신 상함과 질고의 십자가를 기꺼이 감당했다. 하나님의 뜻은 종을 통해서 ‘온전하게 되고 왕성하게 될 것이다.’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11절)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종에게 ‘지식’이 필요하다. ‘지식(히, 따아트)’은 하나님이 종을 보내신 뜻, 그분의 구속 계획과 의지이다. ‘따아트’는 부부가 서로를 ‘안다’할 때 사용하는 동사 ‘야다(알다)’의 명사형이다. 즉 이 지식은 지성적, 표면적인 앎 뿐 아니라 하나님 뜻과 마음, 의도에 동감하는 전인적인 앎이다. 종은 이 ‘지식’에 따라 구속 사역에 자신을 내어놓는다.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12절)
종은 ‘범죄자’로 취급받는 수난을 겪는다. 부당하고 억울하지만 마다치 않는다. 하나님은 뜻을 이룬 종을 높이실 것이다. 오늘 본문은 이사야서에 4번 언급되는 ‘종의 노래’ 마지막 파트로 종의 승귀를 노래하는 절정에 해당한다. 여호와의 종은 ‘그가 의롭게 한 사람들과 더불어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게 될 것이다.’ 종은 최후의 승리자가 될 것이다(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 묵상도움글
펼치기/접기

1. 변하지 않는 목표

며칠 째 선교사의 자격에 대한 묵상이 계속 됩니다. 원문의 제목은 “선교사의 목표”(The missionary’s goal)입니다. 선교사의 목표는 인간의 환심을 사거나 하나님께 유용한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물론 유용한 사람이 되고 이방인들의 마음을 사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선교의 목적이 아닙니다. 선교의 목적은 주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오늘 묵상은 넒은 의미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지침입니다. 주의 뜻을 행하는 것에 대해 깊이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처음 주님의 일을 시작할 때 생각했던 목표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는 경험을 합니다. 상황도 바뀌고 사람도 발전할 테니 어쩌면 이러한 변화는 당연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변하지 않는 목표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나도록’ 애쓰며 그렇게 삶을 마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우리의 생각과 다릅니다.


이진희 목사가 쓴 [광야를 읽다]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낙타는 자기 짐을 지지 않는다. 주인이 실어 주는 짐을 진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위해 져야 할 짐이 있다. 내 몫의 십자가,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 있다. 내게 주어진 사명,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주님의 뜻을 행하는 것은 자기 짐을 지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실어 주는 짐을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져야 할 짐을 마땅히 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예루살렘’은 예수님이 아버지의 뜻을 따라 십자가를 지시는 절정의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는 것은 우리도 주님과 함께 절정의 장소에 이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어떤 것도 주님의 십자가 길을 막지 못했음을 압니다. 제자들이 앞을 막을 때도 주님은 예루살렘을 향해 걸어가셨습니다. 주님을 핍박하는 마을에서도 사역을 회피하지 않으시고 지나가셨습니다. 주님을 환대하는 마을에서도 시간을 지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어떤 것도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는 주님의 발걸음을 막지 못했습니다.


2. 나도 예루살렘으로

주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셨던 그 길에 우리가 동행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마태복음 10장 24절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선생이요, 주 되시는 예수님이 그 길을 가셨다면 우리 앞에도 똑같은 길이 놓일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들이 나타날 것이며 이에 사람들이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한두 사람은 감사를 표현할 것이요 나머지는 무섭도록 배은망덕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우리의 발걸음을 가로막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누군가에게 감사와 사랑을 받을 때, 우리는 기뻐하면 됩니다. 예수님처럼 누군가에게 조롱을 당하고 핍박을 받을 때, 우리는 주님처럼 묵묵히 그 길을 가면 됩니다. 예수님처럼 누군가에게 배신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도 주님처럼 용서하며 그 길을 가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러나 그 길이 구원의 길이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성도의 삶은 십자가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영광의 문에 다다를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에게 주어진 좌우명과 최종 목표는 ‘나도 예루살렘으로 가리라’ 입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정을 위해서는 묵묵히 순종하며 그분이 가신 길을 가야 합니다.

순종은 나의 생각과 목표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말이 있습니다. ‘끝까지’라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목표에 다다르기 위해 기억해야 할 단어입니다.

언젠가 설교에서 인용했던 예화가 생각났습니다.

어느 날 한 청년이 성 프란시스 형제회에 가입하고자 수도원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형제회 위원들에게 수도원에 들어가 함께 수도하며 전도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위원들은 이 열의가 가득한 청년을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해 고심했습니다. 그러던 중 프란시스는 마지막으로 그 청년에게 한 가지 과제를 주었습니다.
“젊은이, 저기 배추가 한 포기 있는데 저 배추를 한 번 거꾸로 심어 보겠는가?”

프란시스가 이런 엉뚱한 과제를 준 이유는, 청년이 상식에 맞지도 않고 자신의 생각에 합하지 않는 요구라 할지라도 영적인 스승의 지시에 그대로 순종하는 자질이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지배했던 가장 중요한 가치관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로딩중...
0:00 0:00
닫기
1.0x
0.5 1.0 1.2 1.5 2.0
닫기

구독설정

구독한 콘텐츠는 MY구독에서 한번에 볼 수 있어요.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