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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주님 앞에서 걷는 삶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사 4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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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진정한 사역은 영적으로 신비한 체험을 한 상태가 아니라 그 상태를 벗어난 일상에서 이루어집니다.
  • 하나님 앞에 진지하게 설 때, 인도하시는 은혜와 막으시는 은혜를 동시에 경험하게 됩니다.

묵상질문

오늘,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서있습니까? 열린 귀와 열린 마음이 있습니까? 말씀 앞에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묵상 레시피

◆시편 119:101-105 + 이사야 4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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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9:101-105)
101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102 주께서 나를 가르치셨으므로 내가 주의 규례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103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104 주의 법도들로 말미암아 내가 명철하게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이사야 40:31)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 주님의 법을 깨닫고 말씀을 맛본 시인은 무엇을 결단합니까? (101절)
  • 주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어떤 마음과 자세가 필요했습니까? (102절)
  • 주님의 말씀과 법을 깨닫고 어떤 길을 걷게 되었습니까? (104-105절)

발을 금하여(101절)
‘금하다’에 쓰인 히브리어 ‘칼루’는 짐승을 가두거나 죄인을 속박, 구류할 때 사용하는 단어다. 힘을 사용하지 않았을 때 어쩔 수 없이, 자연스럽게 일어날 일을 막는다는 의미다. 시인은 불순종 하게 되는 육신의 연약함을 인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매순간 ‘주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주님의 가르침’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102절).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104절)
‘행위’로 번역된 히브리어 ‘오라흐’는 ‘길’이란 의미도 가진다(101절 참고). 새번역 성경에는 본 구절을 ‘거짓된 길은 어떤 길이든지 미워합니다.’로 번역되었다. 시인은 법도와 말씀을 통해 인생의 문제들을 본질로부터 파악하는 통찰력을 얻게 되었다. 그 결과 불순종의 길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그 길을 걷지 않게 되었다.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105절)
‘등(히, 네르)’은 심지와 기름 있는 접시 모양의 등잔으로 가정 필수품이었다. 이 불이 꺼졌다는 것은 집안이 망했음을 의미하기도 했다(잠13:9). 이 등불은 일상생활에서 밤중에 더러운 곳에 빠지거나 넘어지는 것을 막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발’이란 의미는 구체적인 행위를 상징한다. 하나님 말씀이 내 발의 등이라는 것은 1) 어둠의 고난을 극복하도록 방법을 보이신다 2) 선악을 알 수 없는 암흑 세상에서 나아갈 올바른 길을 보이신다, 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길’은 ‘발’이 가리키는 구체적 행위보다 좀 더 넓은 인생 전체의 여정을 의미한다. ‘빛’ 역시 개인적 용도의 ‘등’보다 좀 더 큰 차원을 가리킨다.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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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걷는 것

오늘 묵상을 풀어나가는 비유가 참 좋습니다.

“걷는 데에는 스릴이 없습니다. 걷는다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건강하고 안정한지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챔버스는 스릴은 없을지 모르지만 ‘걷는다는 것’이 건강의 표징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 이사야 40장 31절에서도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가장 고차원적인 상태에서 나오는 신앙인의 힘을 상징합니다.

성경에서 ‘걷는다는 것’은 어떤 사람의 성품이나 인격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서 요한복음 1장 36절에 보면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걷는 것만큼 실제적인 것이 있을까요? 주님의 걸으심을 보고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아보았습니다. 우리의 영적 상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으로 사는 것은 ‘주님 앞에서 걷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서 걷는 것은 우리의 구체적인 일상을 주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우리가 누구인지 알게 됩니다.


‘걷는 것’은 특별하지 않습니다. 가장 보통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챔버스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을 때 ‘스릴’을 원한다고 말합니다. 스릴을 원하면 우리는 곧 위험에 빠질 것입니다. 감정적 기복은 도덕적으로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증거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만일 영적인 영역에서도 계속 스릴을 원하여 날개 위에만 오르려고 하면 결국 믿음을 잃고 영적 파멸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기억하시나요? 챔버스는 특별한 것이 없는 일상의 삶에서 우리의 영적 상태가 분명하게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비전이 없는 지루한 일상이 우리의 영적 상태를 보여주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변화산 체험에서 제자들을 세상으로 데리고 내려오신 주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2. 주님의 임재 앞에서

우리는 ‘모세의 부르심’을 통해 어떤 거룩한 장소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장소가 곧 거룩한 곳임을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만나주셨던 그 장소를 거룩하게 구별하셨습니다. 우리는 자꾸 거룩한 장소를 찾아 헤매면서, 정작 하나님의 임재 앞에는 서려고 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임재 앞에 서는 것은 언제나 우리 삶에 주님을 모시겠다는 결단입니다.


자, 이제 주님의 임재 앞에 서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말은 주님의 임재를 감상적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늘 함께 계신 주님을 ‘믿음으로만’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실체를 경험한다면 위기의 순간이 찾아왔을 때 그분의 인도하심을 구할 수 있습니다.

김득중 교수가 쓴 [무엇이 삶을 아름답게 하는가]에 좋은 글이 있어 소개합니다.

대학 4년 동안과 대학원 2년 동안 내게 라틴어를 교수해 주시던 파올로스 교수님께 배운 것 두 가지를 꼽는다면, 하나는 라틴어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는 마음입니다.

대학을 졸업할 즈음 같은 학과 친구와 함께 교수님 댁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잠깐 만나 뵙고 나왔지만 그 때의 방문이 나에게는 두고두고 기억되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당시 그분과 나누었던 대화는 한 가지도 기억나는 것이 없습니다. 오직 그분의 방에 붙어 있던 라틴어로 쓰인 짧은 문구였습니다. “Me Vidit Deus” (메 비디트 데우스,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신다’) 한참 신앙적으로 살아보겠다고 결심하고 있던 터라 그 문구는 마음에 유별나게 큰 감명을 주었습니다. 나를 바라보고 계신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며 생활한다는 것은 정신적으로는 큰 부담이 될 수 있겠으나, 코람데오(Coram Deo), 즉 그 눈을 의식하며 하나님 앞에 경건하게 산다고 하는 것은 얼마나 진지한 삶의 자세일까요?


챔버스는 오늘 우리에게 주님의 임재 앞에 서는 것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아주 중요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오 주님, 저를 이렇게 저렇게 인도하소서’라고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주님은 인도하실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상식적인 결정이 주님의 뜻에 어긋난다면 주님은 가책하시고 막으실 것입니다. 그러한 때 우리는 잠잠히 주님의 임재를 바라는 가운데 그분의 인도하심을 기다려야 합니다.”


주님의 임재 앞에 서는 것이 주님 앞에 시시콜콜 모든 일을 묻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중요한 순간에, 우리는 주님께 물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주 일상적인 일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지 못해도 의식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합니다. 이와 같은 일상의 사소하고 상식적인 결정들이 주님의 뜻에 맞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런 상황이 오면, 주님이 우리의 마음에 가책을 주시거나 막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멈춰서 기다리며 주의 임재를 바라봐야 하겠지요.


개인적으로 은혜를 체험하고 난 후에 저에게 그런 확신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셨고, 내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한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신다는 확신이었습니다. 그러니 자꾸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이 아니라, 용기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려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만일 내가 잘못된 결정을 하면 하나님께서 막으실 것이고, 올바른 결정을 하면 하나님께서 시온의 대로를 여실 테니까요. 그때, 나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들을 수 있는 귀와 열린 마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오늘 챔버스가 이야기하는 ‘주님 앞에서 걷는 삶’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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