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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주님의 아픔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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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주님의 사랑이 아프게 느껴질 때 비로소 우리는 깊은 사랑의 관계 속으로 들어갑니다.

묵상질문

‘주님, 사랑합니다.’라는 우리의 고백이 너무 가볍지는 않았나요? 당신의 사랑으로 인해 오히려 주님의 마음에 상처를 드리지는 않았나요?


묵상 레시피

◆요한복음 13:21-38 + 요한복음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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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3:21-38)
2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22 제자들이 서로 보며 누구에게 대하여 말씀하시는지 의심하더라
23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24 시몬 베드로가 머릿짓을 하여 말하되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 하니
25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니이까
2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
27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28 이 말씀을 무슨 뜻으로 하셨는지 그 앉은 자 중에 아는 자가 없고
29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가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혹은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
30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새 계명
31 그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
32 만일 하나님이 그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말미암아 그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
33 작은 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나 일찍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36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37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3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요한복음 21:17)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신을 배신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21,38절)
  • 배신의 마음을 품은 유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어떻게 반응하였습니까? (27,30절)
  • 배신한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어떻게 반응하였습니까? (요21:17)
  • 예수님은 유다의 배신으로 어떤 일을 겪게 되십니까? (32-33절)
  • 예수님은 유다와 베드로의 배신을 언급하는 중에 어떤 계명을 주셨습니까? (34절)
  •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에 나타난 예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에 담긴 사랑과 사명을 묵상해 보십시오.

곧 나가니 밤이러라(30절)
유다는 예수의 말을 듣고 곧 나갔다. ‘밤’이었다는 표현은 시간적 배경일 뿐 아니라, 요한복음이 강조하고 있는 빛과 어둠의 대위법적 주제를 상기시킨다. 예수님은 ‘빛’이시다(8:12).
결국 유다는 예수님으로부터 물러갔다. 그리고 곧 ‘밤’이었다.

지금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31절)
유다의 배신으로 십자가와 고난이 시작된다. 죽음의 일체가 시작된다. 예수님의 순종과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온전한 뜻과 사랑, 아들과 아버지의 완전한 연합이 드러난다. 이것이 영광이다.


짧은 기도

진정으로 서로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소서

아들아, 사랑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 만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담 밖으로 뛰쳐나와서 그 사람을 앞서가야만 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의 마음이 통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사람을 위해 자신을 잊어야 하고
그 사람을 위해 완전히 자기를 죽여야 한다.
아들아, 사랑한다는 것은 고통이라는 것쯤, 너도 잘 알리라.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 잘 들어 두어라,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다.

미셀 끄와_사랑을 가르치소서 중에서 (프랑스의 신부, 작가) 「사귐의 기도를 위한 기도선집」244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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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사랑
사랑은 좋은 것이기는 하나 아픈 것입니다. 챔버스는 오늘 ‘아픈 사랑’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내면 가장 깊숙한 곳까지 주님의 아픔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 마귀도 결코 그곳까지는 아픔을 줄 수 없습니다. 물론 죄나 사람 사이의 애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그곳까지 들어갈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질문하실 때, ‘알지 못함’이 아니라 우리에게 ‘새로운 관점’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실 때 의도가 무엇일까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대해 진짜 궁금증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일까요?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질문하실 때는 필연적으로 우리를 사명으로 이끄시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이 질문이 얼마나 아프고 쓰린지 알 수 없습니다.‘아픈 만큼 성숙해집니다.’ 이것은 신앙에 있어서도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우리를 아픈 질문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질문은 아주 효과적인 교육 방법이기도 합니다. 리더십의 대가인 존 맥스웰 목사님은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다시 물어야 할 것들]에서 “질문은 꽉 닫힌 문을 여는 알리바바의 주문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질문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그 질문에 대해 답을 하면서 성장하는 것이죠.

우리가 하나님께 질문을 던질 때는 인생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상황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질문을 던지실 때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원하는 ‘하나님의 소원’이 숨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그렇습니다. 세 번째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을 때, ‘베드로가 근심하여’ 말을 합니다. 여기에서 근심의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마도 피상적이었던 관계, 즉 어제 우리가 나누었던 것처럼 이제 그의 ‘자연적 인격’이 아닌, 영적 관계로 깊이 들어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한 말은 ‘주여,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십니다.’라는 대답이었습니다. 이전의 두 번의 물음에 대한 베드로의 두 번의 대답에는 자랑스러움이 베어납니다. ‘주님, 보십시오. 제가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는지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다 알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나니, 이런 자신감이 다 사라져버렸습니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증명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그저 주님이 진심을 알아주시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주님과 베드로 사이에 어떤 것도 개입할 여지가 없고, 어떤 사람도 그 중간에 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의 질문이 아프게 베드로에게 다가왔을 때, 베드로는 비로소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게 된 것이지요. 이런 예를 생각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남녀 사이에 종종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나를 사랑하시나요?’ 이 때 우리는 그 사랑의 증거를 대기 위해서 분주하게 뭔가를 하고 있나요? 그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어떤 선물을 준비하고, 어떤 행위를 하려고 하고 있나요? 그런데 정말 그런 것들이 사랑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어쩌면 그러한 시도가 아직은 ‘아닌 사랑’일지 모릅니다.
가장 깊은 대답은 ‘잘 알잖아!’가 아닐까요? 어떤 것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가장 깊이 전달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네가 잘 알잖아!’라는 말이 아닐까요? 베드로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주님의 물음에 대하여 베드로의 최선은 ‘주님이 아시잖아요’라는 대답이었습니다. 이 고백으로 인해 주님과 베드로 사이에 깊은 인격적 관계가 형성 되었습니다. 이제 다른 사람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오직 주님과의 관계 속에 들어간 것이죠.

오늘 말씀의 제목이 ‘주님의 아픔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입니다. 여기에서 아픔이라는 영어 단어가 ‘hurt’라는 말입니다. 아픔보다는 ‘상처’라는 말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배신하므로 받았던 상처의 아픔 말입니다. 베드로가 주님의 사랑을 배신했을 때, 주님의 마음에도 상처가 있지 않았을까요? 주님의 마음이 많이 아프지 않았을까요? 베드로에게 이 깊은 주님의 상처가 느껴지고, 그로 인한 아픔이 느껴질 때, 비로소 진실하게 주님께 다가가는 순간이 찾아온 것입니다. 혹시 오늘 우리들의 삶에서 아프게 질문하고 계시는 주님을 느끼고 있다면, 주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시는 순간이 찾아온 것입니다. 챔버스의 말입니다. “거의 드물게, 아마도 한 번, 주님은 우리를 피할 수 없는 곳에 데리고 가셔서 꿰뚫는 직선적인 질문으로 우리에게 고통을 가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어떤 고백보다 훨씬 더 깊이 주님을 사랑하는 자신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 질문이 아프게 우리의 삶에 파고들 때, 어떤 이에게는 진정한 회개의 열매가, 어떤 이에게는 깊은 소명이 찾아옵니다. 이런 아픔이 없는 회개와 고백들은 피상적인 일들, 즉 단순히 행위를 바꾸려는 시도들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회칠한 무덤’이 됩니다. 주님의 마음을 모르는 종교인들이 되어 주님의 마음을 또다시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어제도 나누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찾아와 아픔을 주시는 것은 큰 선물입니다. 때로 우리의 삶에서 징계를 경험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2장 7-8절 말씀.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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