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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주님의 고통과 우리의 친교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마 26:36,38
video poster

한 줄 노트

  • 고통은 힘들기는 하지만 승리로 이끄는 통로임이 분명합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신비입니다.

묵상질문

고통스럽지만 당신을 생명과 승리로 인도하는 십자가는 무엇인가요?


묵상 레시피

◆베드로전서 2:18-25 + 마태복음 26:3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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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2:18-25)
18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19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22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23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마태복음 26:36,38)
3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 오늘 본문은 베드로가 누구에게 하는 권면입니까? (18절)
  • 그들에게는 누구로 인해, 어떤 고통과 고난이 있었을까요? (18-20절)
  • 베드로는 그들에게 어떤 권면을 하고 있습니까? (18-20절)
  • 이러한 고난은 누구로부터, 왜 온 것입니까? (21절)
  • 그리스도는 어떠한 고난을 받으셨습니까? (22-24절)
  • 그리스도는 어떤 마음으로 고난을 받으셨습니까? (23절)

사환들아(18절)(헬, 오이케타이)
종의 신분을 가진 사람들. 로마제국 안에는 태생적, 경제적, 정복전쟁 등의 이유로 노예가 된 사람들이 많았다. 기독교가 지닌 자유와 해방의 복음으로 신앙공동체 안에 많은 ‘사환’들이 존재했다. 사환들의 삶은 대부분 주인에 의해 결정되었다.

두려워 함(18절) (헬, 엔 포보)
‘존경하다’의 의미. 하나님을 ‘공경 한다’에 쓰이는 단어이기도 하다. 베드로가 이 권면을 한 것은 주인을 향할 때의 마음가짐을 가리킬 뿐 아니라, 그가 주인을 향해 하는 모든 행동이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임을 깨닫고 신중히 하라는 의미도 있다.

아름다우니라(20절) (헬, 카리스)
헬라어 카리스는 ‘은혜’로 흔히 번역된다. 눅6:32-24, 70인역 성경에는 총애, 인정 등의 의미로도 쓰인다. 즉, 하나님이 좋게 보시며 총애하실 일.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23절)
예수님은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필요가 없으셨다. 하나님은 상황을 아시며, 공의로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부탁하다’는 단어는 이사야서 헬라어 성경에서 ‘넘겨주다’(53:6,12)에 사용되었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넘겨주셨다’. 온전히 ‘맡기셨다’.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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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우리의 친구

오늘 묵상 글의 의미를 먼저 생각해 봐도 좋을 듯합니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 스터디 가이드]에 의하면, 오늘 글은 비디 챔버스가 이집트에서 돌아온 후, 1922년에 출간한 첫 번째 책 [구속의 심리학(오스왈드 챔버스 십자가의 구속)]에 나오는 내용을 간추려 실었다고 합니다.


챔버스는 오늘 묵상 글에서 예수님이 겟세마네 고통을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셨는지, 그리고 그 고통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오해하지 않도록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죄로 인해 신이신 예수님께서 당하시는 고통을 우리 인간들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그런 주님의 고통을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겟세마네와 갈보리 사건을 통한 주님의 고통이 우리로 하여금 영생에 이르게 하는 유일한 통로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이 고통의 의미에 대하여 챔버스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에서 두려워하신 것은 십자가의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주께서 가장 강조하신 말씀은 자신이 죽기 위해 오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겟세마네에서 주께서 두려워하신 것은 ‘인자’로서의 사명을 다 감당해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아들’을 공격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몸’을 입은 예수님의 약점을 공략합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훼방하기 위한 공격입니다. 사탄이 공격할 때 ‘인자’는 그 공격을 물리칠 수 없습니다. 오롯이 그 공격과 시험을 몸으로 다 받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말씀에서는 신으로서 예수님이 아니라, 인간의 몸을 입고 사탄의 공격을 받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인간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이 고난 가운데서 제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셨을 때, 연약함으로 인해 그 심정이 얼마나 처절했을까요?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마 26:36,38)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자들에게 이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순간이었을까요? 구원의 사역을 이루는 사건 한가운데서 주님과 동역자가 된다는 것이 말입니다. 하지만 연약한 인간은 주님의 동역자가 되어, 중보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십자가의 길과 겟세마네의 시간이 더욱 고통스러웠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간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이 사탄에게 유혹을 받은 첫 번째 사건은 ‘광야의 시험’이었습니다. 사탄은 철저하게 육신의 몸을 입으신 주님의 약점을 공략했습니다. ‘먹는 것’ ‘과시하는 능력’ ‘세상의 권세’와 같은 것으로 말이죠. 하지만 주님은 이기셨고, 누가복음 4장 13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


오늘 본문에서 사탄은 다시 예수님을 시험하고 공략했지만 또 패배했고 물러가게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예수님께도 그랬던 것처럼 사탄의 공격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 할 때면 어김없이 우리에게도 사탄이 공격할 것입니다. 그것도 가장 연약한 부분을 찾아서 말입니다. 그러니 사탄이 시험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길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시험은 우리의 친구다’라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고통’이 힘든 것이기는 하지만, 주님에게는 하나님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필히 겪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져야 합니다. 고통은 유일한 방법이요, 십자가는 ‘인자’로서 승리의 표시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인자’가 고통을 겪으심으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나를 따르라]에서 ‘십자가의 고통’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비범한 것’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고통과 순종 속에서 십자가로 나아가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사랑이다. 그것이 십자가다. 기독교에서 고유한 것은 바로 이 십자가다.”


제가 좋아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필립 얀시가 고통의 문제를 다루면서 ‘고통의 속량’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고통이 힘든 것이기는 하지만 고통을 통해 속량하시는 은혜를 입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고통은 고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우리를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생각하는 것이 왜 우리에게 축복일까요? 고통을 통해 이루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고통에 우리가 동참할 때, 우리의 인격이 그리스도와 하나 됨을 경험합니다. 하나 됨 은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일원으로 인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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