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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주님께서 부활하신 목적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눅 2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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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주님께서 부활하신 목적이 우리를 ‘영광’으로 이끌기 위함이라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묵상질문

오늘 우리는 영광스러운 부활의 삶을 살고 있나요? 아니면 아직도 어둠 속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나요?


묵상 레시피

◆요한복음20:19-23 + 누가복음 2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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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20:19-23)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24:26)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 이날 제자들의 마음 상태는 어떠했습니까? (19절)
  • 예수님이 찾아오셨을 때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19절)
  •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19절)
  • 제자들의 마음과 상황이 어떻게 변했습니까? (20절)
  •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엇을 명령하십니까? (21절)
  • 제자들을 향하여 무엇을 어떻게 허락하십니까? (22절)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21절)
예수님은 두려움과 염려, 혼란에 빠진 제자들에게 ‘샬롬’의 인사를 건네신다. 완전한 의미의 ‘안녕’이며, 예수님이 친히 약속하셨던 것이었다(14;27,16:33). ‘샬롬’은 어떤 부족함도 없이 모든 것이 충만한 상태이며, 창조의 처음 ‘보시기에 좋았던’ 상태이다.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에 있는 최상의 상태를 의미한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오심으로 그들에게는 참된 평안이 임한다.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22절)
창세기 2:7절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를 연상시키게 된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성령을 허락하신다. 이로써 사도들은 새로운 창조, 새로운 시작, 새로운 세상으로 첫 발을 내딛는다.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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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삶을 산다는 것

오늘 묵상의 말씀에도 첫 문장이 가장 명확한 핵심을 짚어주고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그분의 생명으로 들어가는 정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은 우리에게도 그 생명을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이죠. 그러므로 우리도 위로부터 거듭날 때, 그분의 생명을 부여 받을 수 있습니다. 그분의 생명이 우리에게 능력을 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팀 켈러 목사님이 쓴 [팀 켈러의 왕의 십자가]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세상의 부패 권력은 많은 도구로 사람들을 겁주고 있으며 그 중 가장 무서운 도구는 죽음이다. 언제라도 우리를 죽일 수 있는 대상 앞에서 우리는 겁을 먹고 그 대상의 통제를 받는다. 하지만 예수님이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셨으니 그분을 만난 사람에게는 최악의 죽음조차도 최상의 선물일 뿐이다. "얘야, 이제 일어나렴." 죽는 순간, 우리는 세상의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품에 안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죽음은 무시무시한 힘을 잃었다. 이제 우리는 두려움이 아닌 사랑 속에서 살 수 있다.


죽음이 힘을 잃을 때, 우리에게 찾아오는 소망이 있습니다. 죽음에는 내일이 없지만 소망은 늘 내일을 품고 있습니다. 부활의 삶을 사는 사람에게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내일’이 있기 때문이죠. 그 내일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해주신 날입니다. 그저 흘러가는 시간이 아닙니다. 내일의 방향이 분명한 사람에게는 기대되는 ‘영광’이 있습니다. 그날을 마치고 나면 얻게 될 상급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넷 블로그에서 본 이야기를 하나 소개합니다.

한국전쟁 때 전쟁터를 취재한 어떤 미국 기자가 전쟁터에서 싸우는 군인들을 찾아가서 물었답니다. “당신이 지금 이 순간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그랬더니 어느 병사가 그런 대답을 합니다. “Please give me a TOMORROW, only a tomorrow.”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일지 모르는 전쟁터의 절망감이 그 병사로 하여금 내일을 달라고 절규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내일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절망적인 한계 상황입니다.


그러나 부활은 이런 인간의 절망적 한계를 이기게 합니다.
요한복음 17장 2절 말씀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목적은 무엇일까요?

챔버스의 대답은 ‘많은 자녀들을 영광으로 인도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저에게 와 닿았던 부분은 ‘많은 자녀’(many sons)였습니다. 우리에게 부활 생명을 주신 이유는 ‘다른 많은 사람들’을 얻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나 하나의 생명을 위해 우리 주님께서 죽으시고 부활 하신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물론 우리가 생명을 얻었다는 것이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와 같은, 그런 관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양자의 영’을 얻은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이제는 아버지께서 우리의 후견인이 되어 주신다는 말입니다. 우리를 뒤에서 지켜주시고 앞에서 끌어주신다는 말입니다. 사탄의 권세가 함부로 우리를 침범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성육신하기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우리 역시 주님의 부활을 따라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광이 얼마나 놀라운 것입니까?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지금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 10절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

부활하신 주님으로 인해 우리도 부활의 삶을 살 수 있을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이끄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성령님께서는 어떻게 역사하고 계실까요?챔버스의 말에 의하면,

“‘성령’은 지금 이 땅에 존재하는 사람들 안에서 역사하는 ‘영원한 생명’의 또 다른 체험적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말이 조금 어렵습니다. 이런 뜻이 아닐까요? 성령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우리가 영생을 얻었다는 의미입니다. 즉, 성령께서 우리 속에 들어오셔서 역사하실 때 영원한 생명을 체험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이 바로 ‘성령님’인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속에 들어오실 때, 계속적인 속죄의 능력이 임하게 됩니다. 성령께서 우리 속에 계셔야 주님께 순종하며 그 분의 성품을 이루어 갑니다. 이렇게 우리의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겠습니까?


우리가 오늘도 성령님의 임재를 구하며 기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실 때, 하나님의 양자의 영을 가진 아들로서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되기 때문이죠. 우리는 이것을 ‘부활의 삶’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주님이 부활하신 목적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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