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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주님께서 당하신 시험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 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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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시험이 올 때, 그 시험을 이겨내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것입니다.

묵상질문

거듭나기 전 당신에게 시험이 되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거듭난 삶을 살아가려는 당신에게 찾아오는 시험은 무엇인가요? 이 차이를 안다면 우리 자신을 지켜낼 수 있지 않을까요?


묵상 레시피

◆히브리서 4: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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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4:14-16)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4절)
  • 시험 앞에서 담대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5절)
  •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이유, 나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6절)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14절)
예수님은 승리하셨다. 제사장으로서의 사명을 완수하셨고, 종결하셨으며, 그 효력이 사람들 중에 미치고 있다. 죽음과 사단의 권세로부터 승리하신 일은 지금까지의 어떤 제사장도 할 수 없던 일이었다. ‘사역의 범위, 성격, 대가, 효력의 면에서’ 예수님은 ‘큰’ 대제사장, 위대한 대제사장이시다. 인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큰 대제사장 예수의 승리로 인하여 성도들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 수 있다. 두려움 없이 우리의 믿음을 증거 할 수 있다. 성도들은 우리보다 앞서 ‘성문 밖에서’ 고난 받으신 예수님을 따라(13:12-13) 담대히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15절)
예수님은 제한적인 육신을 입고 계셨다. 때문에 여성, 기혼자, 노인, 현대인들이 겪는 특정 시험을 다 겪으셨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인간들이 겪는 온갖 시험의 ‘뿌리’, 그 모든 것의 ‘근본’을 겪으셨다. 시험 이면에 도사리는 의심, 절망, 불순종, 무정함, 이기적인 욕심, 욕망 등에 대하여 승리하셨다. 그러므로 시험의 종류와 가지 수에 대한 논쟁은 의미가 없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요, 참 인간이며, 죄 없는 온전한 성품을 지니셨기에 죄와 시험에 누구보다 큰 고뇌와 고독함을 경험하셨다. 그러므로 시험과 갈등을 겪을 성도들은 외롭지 않다. 먼저 그 길을 가신 예수님, 그분이 보이신 승리가 성도들의 소망이 된다. 이로써 우리는 긍휼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 은혜의 보좌에 나아간다(16절).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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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된 시험이 있다

어제 묵상에서 시험은 우리의 내적 본성과 연관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시험이 우리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와 예수님의 내적 본성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묵상은 야고보서 1장 14절로 시작합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챔버스는 전적으로 다른 두 종류의 시험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의 시험은 우리가 거듭나기 전에 받는 시험입니다. 거듭나기 전에 받는 시험은 전적으로 ‘욕심’에 기인합니다. 하지만 거듭난 이후 우리가 당하는 시험은 주님께서 당하셨던 것과 같은 시험입니다.


우리가 누구인지는 ‘시험’을 통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시험을 당해 봐야 우리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게 됩니다. 이런 질문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유혹을 당하고 시험을 느끼나요? 예수님을 알기 전과 거듭난 이후 받는 유혹이 동일하다면, 그것은 아직 우리가 온전히 변화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가 예수님과 동일한 유혹을 느끼는 것이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제는 단순히 시험이 주는 유익에 대해 묵상했다면, 오늘은 당하는 시험의 종류에 따라 축복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닫습니다. 유혹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사탄은 거듭난 우리에게 그릇된 일을 하도록 시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시험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거듭남을 통해 우리에게 넣어주신 것, 즉 우리가 하나님께 가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잃게 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가 죄를 짓도록 유혹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의 관점을 바꾸려고 합니다. 오직 성령만이 사탄의 유혹을 간파해낼 수 있습니다.”


시험에 대한 본질적 이해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우리는 잘못된 행동을 하도록 유혹받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존재가 되도록 유혹을 받습니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 스터디 가이드]에서 좀 더 명쾌하게 이 부분을 설명해 놓았습니다.

불신자는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고 살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탄은 그들에게 하나님을 몰아내라고 유혹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경우에는 이러한 유혹이 ‘실제로’ 다가옵니다. 사탄은 우리가 그릇된 행동을 하도록 유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원하는 최종 결과는 잘못된 ‘존재’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C. 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 악마가 그리스도인들을 유혹하는 방법이 나옵니다. 삼촌 악마는 조카 악마에게 이렇게 조언하고 있습니다.

이런 건 죄다 사소한 죄가 아니냐고 말하고 싶겠지. 다른 젊은 유혹자들처럼 깜짝 놀랄 만한 죄악을 보고하고 싶어 안달 난 꼴이 보이는구나. 하지만 명심하거라. 중요한 것은 네가 환자를 원수에게서 얼마나 멀리 떼어놓느냐 하는 것 한 가지 뿐이다. 아무리 사소한 죄라도 그것이 쌓여 인간을 ‘빛’으로부터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조금씩 조금씩 끌어올 수 있으면 그만이야.


C. S. 루이스는 우리를 유혹하는 사탄의 전략이 큰 죄를 범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일’에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거듭남으로 하나님의 ‘빛’을 향하게 된 인간이 다시 아무것도 아니었던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간다면, 하나님이 주신 가능성을 소멸시키고 말 것입니다.


오늘 묵상의 제목이 “주님께서 당하신 시험”입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시험의 본질이 무엇인가요?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받으신 소명을 시험을 통해 더욱 분명하게 선포하실 수 있었습니다. 주님은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에 나가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 시험을 지나시면서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시험을 통과하셨습니다. 그 이후 주님의 사명이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예수님은 끝까지 ‘자신의 본성’을 지켜내셨습니다. 주님께서 그러하셨듯이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되면 우리의 본성을 지켜내야 합니다.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나가신 예수님은 시험의 본질을 꿰뚫고 계셨습니다. 우리에게도 동일한 시험이 올 것입니다. 그때 우리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시험의 본질을 알아야 하며, 그 시험 가운데서 우리의 거듭난 본성을 지켜내야 합니다.

유혹에 쓰러지는 사람들은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시험 앞에서 거듭난 자신의 본성을 지켜내지 못했기 때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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