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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주께서 무엇을 해주시기를 원하십니까?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눅 18:41
video poster

한 줄 노트

  • 불가능한 일이야말로 주님께 믿음으로 맡겨드려야 하는 일입니다.

묵상질문

당신의 믿음이 주님의 능력을 제한하고 있지는 않나요? 혹시 우리의 문제가 불가능하다거나 주님을 귀찮게 한다고 생각하면서 주저하고 있지 않나요? 꼭 필요한 일이라면 누군가의 삶에 파장을 일으키는 믿음의 행동을 시작하십시오.


묵상 레시피

◆마가복음 2:1-12 + 누가복음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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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2:1-12)
1 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2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3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4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6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7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8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
9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11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12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누가복음 18:41)
41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 중풍병자는 누구의 도움을 받아 예수님께 나아왔습니까? (3절)
  • 그들의 중심에는 예수님에 대한 무엇이 있었습니까? (5절)
  • 때문에 그들은 어떤 수고도 마다치 않았습니까? (4절)
  •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어떤 능력을 행하셨습니까? (5,11절)
  • 서기관들은 마음으로 어떤 생각을 했습니까? (6절)
  • 예수님은 그들의 속생각을 아시고 뭐라 말씀하십니까?(8-9절)
  • 예수님은 어떤(능력을 가진) 분입니까? (10-12절)

곧 중심에 아시고(8절)
구약에서 하나님은 ‘마음을 아시는 분’이다.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속 생각을 반문하며 자신이 누구인지 보이시는 동시에, 자신이 누구인지를 언급하신다.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10절)
죄 사함은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명령이다. 중풍 병 치유는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중풍 병 치유는 기적이다. 예수님은 기적을 통해 죄 사함도 할 수 있는 분임을 증명하셨다. 한편, 죄를 사할 수 있는 분에게 병을 고치는 일은 불가능 한 것이 아니다. 죽음을 이기실 분이 죽음으로 귀결되는 각종 병을 고칠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짧은 기도

경험의 한계가 믿음의 한계일 때가 있고
성격의 한계가 믿음의 한계일 때가 있습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자신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는 우리를 꺼내 주소서.

한희철_자신이라는 감옥 (목사, 저술가) 「사귐의 기도」412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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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기억하십시오

오늘의 묵상글은 읽는 분도 그렇지 않은 분도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분이라면 ‘윤년’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말씀이 그대로 묵상하기에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내용이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아마도 약간의 의역을 통해 풀어나가면 ‘믿음’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잘 안내해 줄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날 때부터 소경된 ‘바디매오’의 이야기입니다. 챔버스는 이런 질문으로 묵상 글을 시작합니다.
“당신을 혼란스럽게 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 방해가 되는 일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들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입니다.” (의역)

오늘의 본문 말씀은 날 때부터 소경되었던 바디매오가 주님께 나아와 고쳐달라고 애원하는 장면입니다. 바디매오가 주님께 소리를 지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날 때부터 소경되었던 바디매오에게 있어서 눈을 뜬다는 것은 절대로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문제는 그의 등장으로 인해 예수님 주변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방해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스스로에게도 걸림돌이 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8장 39절은 바디매오로 인해 방해를 받았던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앞서 가는 자들이 그를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바디매오의 절규는 스스로의 답답함 때문이지만, 그의 소원으로 인해 주변의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었다는 것을 주목해보기 바랍니다. 챔버스는 우리의 인생에서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안고 절실하게 나아와 주님과 하나 되기를 원할 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만일 우리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파장을 일으키지 않고 있다면, 진지하게 주님께 나아와 간절한 마음으로 우리의 인생의 문제를 구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요?

왜 바디매오는 주님께 소리를 질렀을까요? 그는 보편적 상식, 즉 날 때부터 소경된 자는 소망이 없다는 ‘보편적 상식’에 안주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부르짖음에 우리 주님이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도 이렇게 물으신다면, 주님은 우리 상식의 틀을 깨고 초월적인 일을 행하실 분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이 어떤 분이신가요? 우리의 문제는 과거에 실패했던 우리의 기억으로 인해 주님의 능력을 제한한다는 것입니다. 불가능한 일이라는 우리의 기억으로 인해 우리 주님께 원하는 것을 구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사실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주님께 부탁해야 하는 것입니다.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면 우리에게 고민거리도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소경이 눈을 뜨게 되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요? 과거에 불가능했던 일이 주님과 완전히 일치됨으로 인해 옛 삶의 흔적이 남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부르짖는 바디매오의 간구를 들어주셨습니다. 중요한 사실 하나는, 단순한 부르짖음에 응답하신 것이 아니라, 그 분의 전능하심을 믿고 나아온 바디매오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입니다. 아주 미묘한 차이 같지만, 모든 부르짖음이 동일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자신의 처지가 답답해서 부르짖는 한탄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을 믿기에 부르짖는 믿음의 소원은 다른 것입니다. 소경이 눈을 뜨게 되었다는 것은 그의 믿음과 주님의 능력이 만났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불쌍한 과거의 흔적을 지니지 않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믿음이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의 내용만을 믿기보다 주님 그분을 믿는 것입니다.”
챔버스가 설명하는 이 믿음에 대한 부분이 아주 중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지 않는데,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주님을 알기만 하면 주님은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불가능한 일을 해내실 것입니다. 우리의 고통은 마음의 완고함과 어리석음을 통해 옵니다. 우리는 믿지 않으려 하고, 쓸모없는 것들을 잘라내는 대신에 계속 걱정하기를 좋아합니다.”

오늘 묵상에 좋은 예가 될 것 같습니다. 누가복음 23장 39-43절에 보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던 두 행악자에 대한 내용이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못 박힌 두 강도 중 하나는 자기의 시각으로 하나님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반면 다른 강도는 자신의 불가능함을 알고 하나님께만 의뢰하는 인간의 상반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전자의 강도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부르며 구원하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그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는 마치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했던 마귀처럼 ‘하나님의 아들이면 구원해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는 속으로는 그것이 전혀 이루어질 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다른 강도는 그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 즉 현재 자신의 죄로 인해 멸망하는 상태에서 건져냄을 당하는 일을 지금 십자가에 매달린 같은 처지에 놓인 예수님께 간청합니다. 그는 앞의 강도와는 달리 전능하신 주님을 믿었기에 자기에게 가장 필요하지만 불가능한 그 소원을 아뢸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무엇을 해주시기를 원하신다면, 그 분을 믿어야 합니다. 그 분을 믿지 않으면서 어떻게 그 분이 하신 말씀들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생각이 주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않을 때, 주님께서는 우리 속에서 불가능하게 생각되었던 일들을 깨뜨리시고 역사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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