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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작은 일에도 깨어 있으십시오!

이는 그가 다윗을 떠나 압살롬을 따르지 아니하였으나 아도니야를 따랐음이더라


왕상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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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큰 위기를 넘었다면 자만하지 말고 영적으로 민감한 상태에서 작은 유혹에 깨어 있도록 하십시오!

묵상질문

당신은 오늘 아주 하찮은 유혹 앞에서도 하나님을 생각하며 깨어있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묵상 레시피

◆창세기 6:9, 9:18-29 + 열왕기상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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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6:9, 9:18-29)
9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18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버지라
19 노아의 이 세 아들로부터 사람들이 온 땅에 퍼지니라
20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21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22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23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24 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1)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25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26 또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27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28 홍수 후에 노아가 삼백오십 년을 살았고
29 그의 나이가 구백오십 세가 되어 죽었더라

(열왕기상 2:28)
28 그 소문이 요압에게 들리매 그가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제단 뿔을 잡으니 이는 그가 다윗을 떠나 압살롬을 따르지 아니하였으나 아도니야를 따랐음이더라

  • 노아는 어떤 평가를 받던 사람입니까? (창 6:9)
  • 하나님은 노아의 가족들을 통해 어떤 약속을 이루셨습니까? (창9:7, 19절)
  • 노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9:20-21절)
  • 아들들의 반응은 각각 어떠했습니까? (22-23절)
  • 아버지 노아는 각 아들들에게 어떤 선언을 합니까? (24-27절)
  •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어 어떤 결과가 나타났습니까?
  • 왜 그런 일이 발생하게 되었습니까?

온 땅에 퍼지니라(19절)
퍼지다(히, 나페차)는 ‘어지다’는 의미가 있다. 하나님은 노아의 가족들을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하셔서(9:7), 인류의 확산이 급속히 이루어지도록 축복하셨다.

마시고, 취하여, 벌거벗은지라(21절)
노아의 상태를 점층적으로 드러낸다. 처음에는 가볍게 시작되나 나중에는 자신을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홍수 당시 노아의 나이는 이미 600세였다(7:11). 하나님께 인정받고, 삶의 경륜도 있었던 사람이다.

하체를 보고, 알리매(22절)
‘보다(히, 라아)’는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고 면밀히 살피거나(11:5, 레13:3,5,17, 왕상 9:12) 더 나아가 즐기며 보는 것을 가리킨다(잠23:31, 사53:2). ‘고하다(히,나가드)’라는 표현도 선언하다, 누설하다, 배반하다, 꿈이나 수수께끼 등을 해설하다(민30:18, 수2:20, 욥17:5, 창41:24, 삿14:19)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덮었으며(23절)
이 단어는 ‘덮어서 가리다(시32:1,38:15)와 ’죄를 가리워 용서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느3:37, 시32:1, 85:3, 잠10:12).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25절)
하나님과의 단절은 인간 관계의 단절로 이어졌다. 부부관계(3장), 형제관계(4장), 부모관계(9장). 성경은 원인 제공자 뿐 아니라 그 일에 대한 반응에 대해서도 책임을 묻는다.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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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유혹들이 더 무섭다

어제 말씀은 사소한 것에도, 부르심에 대하여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챔버스는 ‘사소한 유혹’에도 방심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손성찬 목사님의 책 [일상의 유혹]에 보면, 아주 사소해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눈치 채지 못하는 유혹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참 위험한 것인데, 우리에게는 늘 ‘자기 마음대로 사역을 단정하려는 유혹’이 있습니다.

사역은 사명이지만 가정은 사명이 아닌 것처럼,

교회봉사는 사명이지만 이웃에 대한 봉사는 사명이 아닌 것처럼,

어린이 사역은 사명이지만 노년 사역은 사명이 아닌 것처럼,

전도와 설교는 사명이지만 뒷정리는 사명이 아닌 것처럼 여기는 것.

이것은 큰 오해이자 심각한 신앙적 유혹이다.


사소한 차이인 것 같지만 ‘분노조절장애’와 ‘분노조절 잘해’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도 오늘 말씀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어지는 책의 내용입니다.


너무나 쉽게, 그리고 자주 화내는 것을 가리켜 ‘분노조절장애’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진짜 ‘장애’라 불릴 정도의 정신적 질환이 있는 사람은 총칼 앞에서도 조절을 하지 못한다. 사실 평범한 우리는 대부분 ‘분노조절 잘해’가 맞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나 이익을 주는 사람 앞에서는 기가 막히게 잘 참는다. 화를 낸다는 것은 상대방이 그래도 될 만한 사람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을 가려서 분노하는 것은 장애가 아니라, 인격이 안 좋은 것이다. 지금껏 주변 사람들이 잘 참아줘서 그리 살 수 있었던 것뿐이다.


오늘 본문은 아주 슬픈 다윗의 가정사입니다. 성경에는 중요한 사건마다 다윗과 함께 전장에서 싸웠던 요압 장군이 등장합니다. 요압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다윗에게 충성하는 신실한 부하였습니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도 흔들리지 않고 다윗을 지켰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보니 큰 반란을 일으켰던 압살롬을 따라가지 않았던 요압이 아도니야를 따랐습니다. 큰 것을 이겨낸 요압이 오히려 작은 것에서 실수하는 모습이죠. 우리는 모두 시험에 빠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요압이 그렇게 시험에 빠졌다면 우리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챔버스의 경고입니다.

“큰 위기를 통과했다면 아주 작은 일에도 깨어 있어야 합니다. ‘방치된 사소한 유혹들’을 신경 쓰십시오.”


어쩌면 가장 위험한 때는 ‘엄청난 위기’를 지나고 난 후에 찾아올 수 있습니다. ‘유혹’이란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예상하고 준비할 수 있다면 그것이 유혹이 되겠습니까? 우리는 성경을 안에서 혹은 주변에서 영적 거장들에게 찾아오는 치명적인 유혹을 봅니다. 그리고 유혹에 넘어지는 사람들을 보면서 의아해합니다. 저렇게 엄청난 영적 전투에서 승리한 사람이, 저렇게 하찮은 유혹에 넘어 가다니!


‘방치된 사소한 유혹들’처럼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늘 유혹은 그 자리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경계하지 않으면 언제 우리를 넘어뜨릴지 모르는 것들입니다. 이 말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두려움으로 미래를 바라보면서 강박관념으로 자신을 샅샅이 살피라는 의미가 아니라 깨어 있으라는 말입니다.”


‘깨어 있으라’는 것은 어제 말씀과 연결해 볼 때 ‘올바른 관계’ 속에 있는지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민감하게 영적 안테나를 세우고 있으라는 말입니다. 챔버스는 아주 무서운 경고의 말을 하고 있습니다.

“경계하지 않은 장점들은 두 배로 약한 약점들이 됩니다. 왜냐하면 ‘방치된 사소한 유혹들’이 경계하지 않은 장점들을 통해 침입해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인물들은 자신들의 장점 때문에 무너졌지 그들의 약점 때문에 무너진 적이 없습니다.”


어쩌면 악마의 전략이 이런 것 아닐까요?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장점과 사역의 승리를 통해 ‘교만’이라는 감정을 슬쩍 집어넣는 것입니다. 이것이 승리의 순간이 위험한 이유입니다. 저는 ‘디테일’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왕중추가 쓴 [디테일의 힘]이라는 책을 읽으면서부터 그랬던 것 같습니다. 좋은 글이라 조금 옮겨 보겠습니다.

디테일을 중시하는 것은 어떤 환경에서도 성공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소중한 습관이다. 크고 화려한 것에 현혹되지 않고 바로 지금 자신이 하는 일부터 세심하게 처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성공으로 가는 가장 확실한 길임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악마도 디테일에 강한 것 같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꼬리가 몸통을 흔들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겸손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이 얼마나 교만한 것인지를 모르고 교만해지는 것입니다. 그 순간이 되면 겸손의 가면을 쓰고 하나님을 속이고 자신을 속이고 주변의 사람들을 속이는 무서운 죄를 짓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어제에 이어서 C. 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통해 악마의 전략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인간을 타락시키는 전략으로 악마 스크루테이프는 그의 조카인 또 다른 악마 ‘웜우드’에게 이렇게 조언합니다.

“‘세상에 내가 이렇게 겸손해지다니!’하는 식의 만족감을 슬쩍 밀어 넣거라!

 그러면 거의 그 즉시 교만-자신이 겸손해졌다는 교만-이 고개를 들게야. 혹시라도 환자(크리스천)가 위험을 눈치 채고 이 새로운 형태의 교만을 다 잡으려 들거든, 이번엔 그런 시도를 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게 만들라고.”


‘겸손’이 악마에게 이용당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그러니 우리가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늘 하나님의 보호하심 아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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