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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일상적인 삶의 사명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해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갈 1:15-16
video poster

한 줄 노트

  •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섬김과 봉사’는 하나님의 속성을 표현하는 자연스러운 방식입니다.
  • 일상적 섬김은 신비한 부르심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친밀한 사랑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묵상질문

당신이 섬기는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속성과 그리스도의 사랑이 보이나요?


묵상 레시피

◆ 갈라디아서 5:16-26 + 갈라디아서 1: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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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5:16-26)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26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갈라디아서 1:15-16)
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16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 인간에게 놓인 두 가지 상반된 삶의 길은 무엇입니까? (16,17절)
  • 육체의 일은 무엇입니까? (19-21절)
  • 육체의 일은 무엇이 드러난 것입니까? (16-17절)
  • 성령의 열매들은 무엇입니까? (22-23절)
  • 성령의 열매는 무엇이 드러난 것입니까? 어떻게 맺을 수 있습니까?(16,18,25절)
  •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24절, 갈2:20)

짧은 기도

주님, 제 삶이 제게 주시는 사랑에 대한 응답이 되게 하소서.

저의 행동과 말, 생각과 꿈이 예수님 안에서 저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에 대한 응답이 되게 하소서.

그럴 때 제 이기심과 교만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유진피터슨_응답으로서의 삶 「사귐의 기도」84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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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봉사와 부르심은 무엇이 다를까요?

우리는 가끔 신앙생활을 하며 이런 의문을 가집니다.
‘지금 하고 있는 봉사가 과연 하나님의 부르심인가?’ 내가 열정을 가지고 봉사하며 섬기는 일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지금 하는 일이 하나님의 부르심인지 자신이 원하는 일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때입니다. 챔버스는 여덟 살에 스코틀랜드에 있는 미술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한 이후 에딘버러에 이르기까지 약 14년간 자신의 재능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미술이 아닌 다른 곳으로 그를 부르셨습니다. 챔버스가 깨닫게 된 것은, ‘열정’은 어떤 특정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도록 하지만, ‘소명’은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곳에 초점을 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어떤 특별한 봉사를 위한 부르심이 아닙니다.”

부르심과 봉사의 구별을 어제 묵상과 연결 해보겠습니다. ‘부르심’은 하나님의 속성과 관계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속성을 접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주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봉사’는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우리가 내 속에 있는 성향을 따라 자연스럽게 표출하는 행동입니다. ‘부르심’은 나의 성향과 관계없이 찾아오는 것이고, ‘봉사’는 하나님의 속성과 나의 속성이 일치되어 일상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봉사는 헌신된 마음이 흘러넘치는 것입니다. 엄밀히 말한다면, 봉사는 부르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속성과 나의 속성이 일치된 모습이 현실 속에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봉사는 나의 삶의 자연스러운 부분에 해당합니다. 주님과의 관계를 맺게 되면 나는 주님의 부르심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분을 향한 순전한 사랑 가운데 내게 있는 것으로 주를 위해 뭔가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주님의 부르심을 듣고 마음을 다해 사랑의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봉사는 내 속성에 맞는 것이 표현된 것인 반면 하나님의 부르심은 그분의 속성이 표현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섬김과 봉사’는 하나님의 속성을 표현하는 자연스러운 방식입니다.

2. 일상에서의 부르심으로

부르심과 섬김의 구분은 해묵은 논쟁을 꺼내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우리 인간의 의지에 대한 문제입니다. 기독교 역사 가운데서 우리는 오랫동안 그런 질문을 해 왔습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하나님이 은혜인가? 아니면 그리스도인의 의지 문제인가? 만일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오는 것이라면, 우리의 선한 의지는 어떤 역할을 하는가? 챔버스는 구원에 관한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거룩하게 살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 ‘의지적 노력’이 아닌 ‘부르심에 대한 순종’에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속성 즉, ‘은혜’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자연스럽게 나타나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거듭남을 통해 내가 주님의 속성을 받고 그분의 부르심을 들을 때, 그 신성한 부름은 놀랍게도 내 속에 임한 주님의 속성을 부르게 됩니다.”

챔버스는 ‘일상적인 삶의 사명’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우리를 부르신 사명과 우리의 삶에서 섬기는 봉사가 자연스럽게 일치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결과적으로 거듭남을 통해 내가 주님의 속성을 받고 그분의 부르심을 들을 때, 그 신성한 부름은 놀랍게도 내 속에 임한 주님의 속성을 부르게 됩니다. 그래서 이 둘이 함께 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자신을 내 안에서 나타내십니다. 그러면 나는 주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 가운데 나의 일상적인 삶에서 그분을 섬기게 됩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나타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메소드 연기’와 비슷합니다. 그러나 연기는 배우가 인물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지만, 주님을 닮아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우리의 응답이 조화를 이룬 결과입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을 표현하는 사람에게 주님이 그 모습을 드러내시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며 몸에 밴 듯이 그의 선한 일들을 일상에서 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부르심을 따르는 사람의 ‘선한 의지’는 절대로 충돌하지 않습니다. 자연스러운 인과관계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일상적 섬김은 신비한 부르심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친밀한 사랑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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