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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이상입니까, 비전입니까?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잠 2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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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우리가 영적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이상’과 ‘비전’ 사이를 혼란스럽게 오갈 수 있습니다.
  • 올바른 삶의 자세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순간들이 모여 비전이 되고, 그 비전이 성품을 이루는 것입니다.

묵상질문

당신은 비전의 성품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묵상 레시피

◆스가랴 4:1-10 + 잠언 2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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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 4:1-10)
1 내게 말하던 천사가 다시 와서 나를 깨우니 마치 자는 사람이 잠에서 깨어난 것 같더라
2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가 보니 순금 등잔대가 있는데 그 위에는 기름 그릇이 있고 또 그 기름 그릇 위에 일곱 등잔이 있으며 그 기름 그릇 위에 있는 등잔을 위해서 일곱 관이 있고
3 그 등잔대 곁에 두 감람나무가 있는데 하나는 그 기름 그릇 오른쪽에 있고 하나는 그 왼쪽에 있나이다 하고
4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이르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하니
5 내게 말하는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이것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하므로 내가 대답하되 내 주여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6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7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8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9 스룹바벨의 손이 이 성전의 기초를 놓았은즉 그의 손이 또한 그 일을 마치리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네가 알리라 하셨느니라
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사람들이 스룹바벨의 손에 다림줄이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다니는 여호와의 눈이라 하니라

(잠언 29:18)
18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 ‘순금 등대’의 이상은 누구에 관한 말씀입니까? (6절)
  • 하나님은 그와 이스라엘에게 어떤 약속을 주십니까? (7-10절)
  • 사람들의 이상과 하나님의 비전은 어떻게 달랐습니까? (10절)
  • 일곱 등잔은 무엇을 상징하며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10절)
  • 이 모든 일의 주권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6,9-10절)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6절)
당시 유다 사회는 여호수아와 스룹바벨, 두 지도자에 주목했다. 특히 스룹바벨은 왕족이었기 때문에 다윗 왕조에게 하셨던 하나님의 약속이 그를 통해 성취될 것이란 기대가 있었다. 하나님은 스룹바벨이 유다 재건에 사용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인간의 힘과 능(육체적, 군사적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루히)’, 하나님의 영으로 수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10절)
백성들은 솔로몬 성전의 영광을 기억하며 눈에 보이는 재건 작업들을 멸시하며 비웃었다.

이 일곱은, 여호와의 눈이라(10절)
일곱은 완전수다. 눈은 감시하고 살피는 기능을 한다. 본문은 순금등대 환상을 통해 이 세상을 보고 계신 분, 살피시는 분, 주권을 가지신 분은 인간 지도자가 아니라 하나님임을 강조한다.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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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상’과 ‘비전’은 어떻게 다른가?

오늘 묵상에서도 챔버스의 전형적인 방법론이 나타납니다. ‘이상’(ideal)과 ‘비전’(vision)을 비교해 신앙의 길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이상과 비전(묵시)은 다릅니다. 이상은 영적인 영감이 없지만 비전에는 영감이 있습니다. 이상에 빠진 사람들은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이상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이 해야 할 마땅한 의무에 대해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를 정당화 합니다. 예를 들어 요나는 공의와 자비의 하나님이시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상에 확신이 들자 주어진 사명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스스로 판단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의무, 즉 니느웨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회개를 선포하라는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것을 정당화 합니다.


그러나 비전에는 우리를 올바른 삶으로 인도하는 힘이 있습니다. 비전 가운데서 ‘영적 동기’를 부여 받고 순종하기 때문입니다. ‘이상’은 자신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이 배제된 인간의 생각은 스스로를 멸망으로 인도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우리의 생각이 이상인지 비전인지 조차 구별하지 못합니다. 이재철 목사님의 책 [비전의 사람]에 보면 비전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유념해야 할 다섯 가지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현장의 중요성: 하나님의 비전은 언제나 삶의 현장에서 주어집니다. 바울이 책상 앞에 앉아서 자신의 비전이 무엇인가 골몰한 끝에 로마의 비전을 얻은 것이 결코 아닙니다. 만사를 제쳐 놓고 심산유곡 기도원을 찾아 금식기도 하다가 얻은 것도 아닙니다. 매일매일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던 중, 그 삶의 현장에서 자신을 통해 이루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비전을 깨달았습니다.
지닌 것의 소중함: 하나님을 비전으로 삼은 자는 오늘은 곧 내일을 위한 예비라는 사실을 인식하며 사는 자입니다. 지금 내가 지니고 있는 것들은 내일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기 위한 귀중한 도구들입니다. 지금 내게 주어진 상황이 어떠하든 그 상황 자체의 소중함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그 상황을 거치는 것이 이 상황을 내게 주신 하나님의 비전이 이루어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세계의 확장: 하나님을 비전으로 삼은 사람은 끊임없이 자기 세계를 확장시켜 가는 자입니다. 여기에서 자기 세계의 확장이란, 첫째, 자기 영성의 세계를 키워 가는 것입니다. 둘째, 사람의 세계를 확장해야 합니다. 셋째, 지리적 세계를 확장시켜 가야 합니다. 넷째, 실력을 배양해야 합니다.

이성적 신앙: 하나님을 비전으로 삼은 자는 이성적 신앙의 소유자가 되어야 합니다. 누구든 이성적 신앙의 소유자라야 하나님의 비전을 바르게 분별할 수 있고, 자신의 전 생애를 그 비전을 실천하는 거룩한 산 제물로 하나님께 바쳐 드릴 수 있습니다.

결과로부터의 자유: 하나님을 비전으로 삼은 사람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결과를 보고픈 유혹에서 자유하는 자입니다. 크리스천이란 영원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주님을 위해 행하는 일의 결과를 우리 생애에 못 볼 수도 있지만, 그러나 영원 속에서 주님과  함께 반드시 확인케 될 것입니다.


2. 비전이 없으면

오늘 본문 잠언 29장 18절 말씀에서 ‘비전’이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한다고 말합니다.

“‘묵시(비전)가 없으면’, 즉 우리가 일단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게 되면, 우리는 무절제해지고 제멋대로 행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 것은 삶의 주도권을 자기가 가지겠다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실 여지를 남기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 이들은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를 하겠다는 ‘교만’에 찬 사람들 입니다. 이런 태도를 가질 때, 점점 영적 내리막길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우리에게 주님을 바라보는 비전이 있다면, 주님께서 지금까지 하신 일 보다 더 위대한 일을 꿈꿀 것입니다. 위대한 일을 꿈꾸는 사람에게는 신선한 활력이 넘칠 것입니다.


성경훈련대학에서 가르칠 때, 챔버스에게는 별명이 있었답니다. 학생들이 챔버스를 ‘더 좋은 것이 온다!’(Better to come!)라는 애칭으로 불렀으니,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듯 합니다. 비전의 사람은 늘 더 좋을 것을 꿈꾸며 살아갑니다. 만약 우리에게 비전이 없고 하나님의 생각을 볼 수 없다면, 자신의 계획과 능력에 맞게 할 수 있는 일만 하지 않겠습니까? 반대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비전이 있다면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자신의 한계를 넘는 일을 꿈꿀 것입니다. 현실 너머의 것이 보이기 시작할 때 기대와 기쁨을 누리며 살지 않겠습니까?


언젠가 말씀을 묵상하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비전’을 갖는 것은 ‘성품’의 문제구나! 비전은 단 한 번의 결심이나 계기로 갖는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의 내면에 성품으로서 자리 잡는 것입니다. 예전에 제가 썼던 설교의 일부분을 나눠보겠습니다.

비좁은 감방에 갇힌 죄수 두 명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감방에는 빛이라고는 전혀 없고 단지 눈높이에서 석 자 위에 자그마한 창문이 나 있을 뿐이었습니다. 물론 두 죄수는 그 창문을 쳐다보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 명이 본 것은 엄연한 현실을 일깨워 주는 차가운 쇠창살이었습니다. 그는 날마다 점점 풀이 죽고 비탄에 젖어 분통을 터뜨리는가 하면 절망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다른 죄수가 본 것은 그 창문 너머에 있는 별이었습니다. 자유의 몸으로 새 생활을 시작할 것을 생각하면 그는 희망이 샘솟았습니다. 사실 별보다 창살을 보기가 훨씬 쉽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별을 보는 사람을 우리는 비전의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 시대에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현실 가운데 비전을 보는 성품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현실 그 너머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어떻게 그런 능력을 소유한 성품의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비전을 소유한 사람들의 성품 중의 하나는 늘 문제의 해결이 가능하다고 보는 시각입니다. 이러한 성품의 사람은 늘 긍정적이며, 소망을 품고 살아갑니다. 나의 능력이 다한 곳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다하지 않았다는 것을 믿는 사람의 능력입니다. 혹시 여러분 스스로 너무 작게 생각하지는 않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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