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주보 QT MY 메뉴
이전으로
2021년 09월 13일 월요일
다음으로
이전으로
2021년 09월 13일 월요일
다음으로
주님은 나의 최고봉

의지의 순복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요 17:4
video poster

한 줄 노트

  • 순복을 취소하지 않도록 끝까지 열망을 붙들어야 합니다.

묵상질문

당신에게 ‘순복’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내려놓은 ‘의지’가 있다면 차분히 적어봅시다.


묵상 레시피

◆요한복음 17:1-5
펼치기/접기

(요한복음 17:1-5)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 예수님의 순복은 오직 무엇을 위한 것이었습니까? (1절)
  •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하신 순복은 무엇입니까? (1절)
  • 구원을 완성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하신 순복은 무엇입니까? (4,5절)
  • 구원(영생)은 무엇입니까? (3절)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1절)
‘때가 이르렀다’는 것은 예수님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말한다. 죽음에는 긴급함과 진심,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드러난다. 예수님의 관심은 오직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것’ 이었다. 하나님은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그 일을 이루게 하셨다. 즉, 하나님의 방법은 십자가였다. 십자가는 수치와 고난의 상징이다. 그러나 십자가를 통해 모든 사람이 영생을 얻게 되었다. 예수님은 죽기까지 복종하여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주심으로 영화롭게 되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다.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2절)
하나님은 이 일을 이루도록 예수님께 ‘권세(헬, 엑수시아)’를 주셨다(2절). 이 단어에는 ‘선택의 자유, 능력, 권위, 통치권, 세력 범위, 무제한적인 행동의 가능성이나 자유’라는 뜻이 담겨있다. ‘엑수시아’는 법률, 정치, 사회적 영역에서 발휘하는 왕권, 부권, 관리 및 사자들의 권한이라는 점에서 ‘뒤나미스’와 구별된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권세로 십자가와 부활, 구속에 관한 모든 것에 지배력을 행사하신다. 어떤 피조물과 권세라도 믿는 자들에게 임하는 예수님의 구원을 막지 못한다.

영생(2,3절)
‘영생(헬, 조엔 아이오니온)’은 시간적인 측면과 질적인 측면 모두를 포함한다. ‘아이오니온’은 생명이 영원히 지속된다는 의미이며, ‘조엔’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지복, 활기 있는 삶’을 의미한다. 한편, 영생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3절). ‘아는 것(헬, 기노스코신, 현재 시제 가정법)’은 문법 상 ‘계속해서 알아가야 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인격적이고 친밀한 ‘교제’를 말한다. 즉, 성도가 누릴 ‘영생’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가운데 영원토록 하나님 나라의 복을 누리는 것이다.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5절)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완성하는 데는 큰 희생과 순복이 필요했다(4절). 영광을 버리고 육신의 몸을 입으셔야 했으며(빌2:5-8),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셨다(히12:2). 이제 예수님은 때가 되어 십자가에 자신의 몸을 위탁하신다. 아버지 옆에 데려가셔서 영화롭게 하실 하나님을 바란다.


◆ 묵상도움글
펼치기/접기

‘순복’이란 무엇일까요? 제목에서는 ‘surrender’라는 영어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외적인 삶이 아니라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항복’이라고 표현해도 되겠네요. 나의 의지가 아니라, 그분의 뜻을 따라 살겠다는 결심입니다. 챔버스는 말합니다.

“삶의 대단히 많은 중대 국면 가운데 가장 큰 갈림길은 의지의 순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순복을 강요하지 않고 우리 스스로 내어맡길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강요하지 않으신다는 것, 그리고 기다리신다는 것이죠. ‘순복’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 역사에 대한 우리의 반응입니다. 챔버스는 세 가지 순복을 이야기합니다.


구원을 위한 순복

마태복음 11장 28절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

구원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것이지만, 우리가 참된 쉼을 위해 의지를 주님께 드릴 때 ‘구원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마음이 복잡하여 번민하기 시작했다면 ‘내게로 오라’는 부르심을 받은 순간입니다. 고민하지 말고 자발적으로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이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려면 온 맘을 다해 자신의 의지를 항복해야 한다.

설득되어 항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당신 자신을 던지는 의지적인 항복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으려면 당신의 의지를 재촉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당신은 구속주를 믿으려는 의지를 행사하는 자리까지 가야 한다. 그곳으로 나아가면 당신은 모든 결과를 주께 맡기고 자유 할 수 있다.


하나님께 당신 자신을 던지기를 머뭇거리지 말라.

머뭇거림은 인간의 가장 연약한 특징이자 하나님께 순복하지 않으려는 이기적인 요소를 드러내는 태도이다. 출발선을 끊고 앞으로 나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내재하시는 하나님을 볼 뿐만 아니라 구속의 강력한 기적들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이때 우리는 인내를 가지고 이러한 기적들이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나타나도록 해야 한다.


헌신을 위한 순복

마태복음 16장 24절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헌신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여기서 순복은 의지를 넘어서 ‘나 자신’을 주님께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챔버스는 이러한 관계에 대해 명확하게 표현합니다.

“‘만일 내 제자가 되려면 네 자신에 대한 권리를 내게 내어맡겨야 한다.’ 그 후 그의 남은 삶은 내어맡긴 삶의 표현일 뿐입니다.”


우리 인생에 있는 고민은 아직 주님께 나를 온전히 내어드리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완전히 순복한다면 ‘만일’이라는 상황이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헌신을 위한 순복이 주는 가장 큰 축복은 ‘안식’입니다.

“여기서 순복은 나 자신을 예수님께 내어드리고 내 마음 중심에서 주님의 안식을 누리는 것입니다.”


앤드류 머레이는 [순종의 학교]에서 순종과 안식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 모든 것을 드리십시오. 여러분의 생활이 온전히 그리스도로 가득차고 그리스도의 임재와 그의 뜻과 그에 대한 봉사로 가득 찰 수 있게 하십시오. 자신을 그리스도께 드리십시오. 단지 불순종으로부터 구원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러분이 죄 짓는 일과 근심이 없이 복되게 살 수 있도록 자신을 그리스도께 드리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전적으로 자신의 것으로, 곧 사람들을 위한 주님의 생명과 사랑으로 채우는 그릇과 수로로 삼으실 수 있게 하십시오.


죽음을 위한 순복

요한복음 21장 18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순복을 결단한 때가 언제였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순복을 결단한 때는 대부분 영적으로 ‘황홀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황홀한 순간이 지나면, 우리에게는 언제든 순복을 취소할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챔버스는 죽음까지 나아가는 순복에 대하여 이야기 합니다. 마지막 순복은 죽음을 향해 가는 여정입니다. 그 여정은 주님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일이 당신에게도 동일하도록 끝까지 묶이는 것입니다. 순복을 취소하지 않기 위해서는,

“내어맡긴 후에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내어맡긴 후의 모든 삶은 오직 하나님과의 계속되는 사귐을 열망하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열망이 끝나면 사명도 끝난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계속적인 사귐을 열망하지 않을 때 순복은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열정적이었던 크리스천들이 낙담하고 타락하고 버려지는 과정을 주변에서 봅니다. 그들에게 나타나는 피폐한 삶은 열망을 철회한 결과일 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 열망을 놓지 않기 위해 늘 마음에 다짐을 했습니다.

빌립보서 3장 14절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이러한 사도 바울의 다짐은 다음 절에서 그 의미가 보다 명확해집니다.

빌립보서 3장 15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이 다짐은 ‘온전히 이룬 자’들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늘 챔버스의 글과 연결시켜 보면 이미 ‘순복’한 자들이 가져야할 태도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온전히 이룬 자들은 아직 잡은 것으로 여기지 않고 푯대를 향하여 가는 것 같이 살아야 합니다.

로딩중...
0:00 0:00
닫기
1.0x
0.5 1.0 1.2 1.5 2.0
닫기

구독설정

구독한 콘텐츠는 MY구독에서 한번에 볼 수 있어요.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