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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의무나 판단에 따른 사역

이로써. . .우리가 믿사옵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요 16:30-31
video poster

한 줄 노트

  • 우리의 부르심은 이해할 수 있는‘의무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설명할 수 없을 지라도 빛 가운데 순종하라는 데 있습니다.

묵상질문

로렌스 형제의 삶이 우리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묵상 레시피

◆누가복음 15:11-32 + 요한복음 16: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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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5:11-32)
11 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도리어 바라바를 놓아 달라 하게 하니
12 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
13 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14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15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16 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17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18 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19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20 희롱을 다 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22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23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24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새 누가 어느 것을 가질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
25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26 그 위에 있는 죄패에 유대인의 왕이라 썼고
27 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니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28 (없음)
2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30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3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32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요한복음 16:30-31)
30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
3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 둘째 아들은 어떤 아들이었습니까? (30절, 눅15:12-20절)
  • 첫째 아들은 어떤 아들이었습니까? (29절)
  • 아버지가 길 위에서 둘째 아들을 기다릴 때,
    첫째 아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25절, 용어설명 참조)
  • 첫째 아들의 현재 심정은 어떠합니까? (28절)
  • 아버지의 현재 심정은 어떠합니까?(32절)
  • 첫째 아들은 왜 이런 반응을 보였을까요?

거리가 먼데… 달려가(20절)
근동 지방에서 성인이 달려가는 것은 모든 위엄을 내려놓은 상태를 의미한다. 아들이 이미 용서를 구하기 전에, 아버지는 ‘이미’ 아들을 용서 했다. 둘째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뜻을 감당하지 못했고(21절), 첫째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이지 못한다(28절).

밭에 있다가 돌아와(25절)
둘째 아들은 먼 나라에서 돌아왔다. 첫째 아들은 밭으로부터 집으로 돌아온다. 두 아들 모두 집으로 돌아왔지만 한 아들은 아버지와 하나가 되었고, 한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더욱 멀어진다.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29)
‘섬겨 헬)둘류오’ 종이 되었다는 뜻. 첫째 아들의 마음과 심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단어이다. 아버지는 그를 아들로 여겼으나, 아들은 스스로를 ‘종’으로 여기며 자기 일에 한탄한다.


짧은 기도

오, 멸시받고 거부당하셨던 고난의 종이시여,
제가 친구들에게 모욕당하거나
윗사람들에게 무시당하거나
동료들에게 비웃음을 사거나
혹은 아랫사람들에게 수치스러운 대접을 받을 때,
아버지의 거룩한 순교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이렇게 외치게 하소서.
“이제, 내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 시작하는구나!”
그런 다음,
제가 제자로서 성장하도록 돕는 모든 은혜의 수단들을
아버지의 온유하고 겸손한 성령 안에서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신실하게 사용하게 하소서

존 웨슬리_고난의 종(1703-1791, 영국의 목사, 감리교 창시자) 「사귐의 기도」254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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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홀로두기 vs. 주님과 동행하기
챔버스는 묵상을 통해 우리의 거짓된 믿음을 드러내고 참다운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계속해서 묻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사역자들에게 특별히 중요한 말씀이 될 듯합니다. 챔버스의 말입니다.
“많은 사역자들이 예수그리스도를 홀로 내버려두고 의무감이나 자신의 특별한 판단에 따라 일합니다.”

예수님을 홀로 내버려두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먼저 예수님을 홀로 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많은 사역자들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자신의 ‘종교적 이해’를 의지합니다. 이런 차이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종교적인 일을 하는 것과 신앙적인 일을 하는 것의 차이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하시면서 끊임없이 지적하셨던 무리들이 있습니다. 자기 나름대로의 종교적 이해를 가지고 충실히 의무를 이행했던 사람들이죠.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없으니,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고 열심히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 병든 자를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지만, 하나님과 관계없는 일을 하니 하나님을 홀로 두는 행위가 아니었을까요? 종교적 열심에 참다운 신앙이 없으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주님을 홀로 둘 때, 주님이 없는 사역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마치시기 전 다락방에서 제자들에게 설교하신 내용에 대한 물음입니다.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실 것과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이 다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제자들이 ‘우리가 믿사옵니다.’라고 말했지만, 예수님께서 반문하시는 내용입니다. 그리고는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요 16: 32)

그러면, 주님과 연결된다는 것, 부활하신 주님과 깊이 연결되어 의지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챔버스는 의무나 판단에 따른 사역은 우리의 상식적인 결정에 속한 것이기에 영적 실체와는 거리가 멀다고 말합니다. 또한 우리의 상식에 기초한 사역을 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축복을 간구하지만 거기에 하나님의 임재는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의무감으로 뭔가를 할 때는 그 일을 왜 해야 하는지 따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께 순종하기 위해 무엇을 할 때는 논쟁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성도들은 쉽게 조롱을 받습니다.”

이 부분에서 아주 오랜 시간 묵상을 해야 했습니다. 주님께 순종했기 때문에 쉽게 조롱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말입니다. ‘의무감’은 충분한 이유와 설명이 가능합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왜 이런 일을 하는지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순종’은 설명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주님께 순종하는 삶을 세상적 상식과 기준에서 합리적 설명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 주님과 연결되어 있으면 조롱거리가 됩니다. 주님께 순종하면 세상이 우리를 조롱할 수 있습니다. 순종은 사람들과 합리적 논쟁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은 그저 순종일 뿐입니다.

순종을 가능케 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조롱당할지 모르지만, 이러한 순종이 주님을 좇아 빛 가운데 행하는 것임을 믿습니다. 주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 우리도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일하시니 우리도 그 주님을 따라갑니다!우리가 주님과 함께 일한다는 것은, 우리보다 앞서서 일하신 주님을 좇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을 좇아가는 사역을 하는 우리가 우쭐댈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자신의 기준을 가지고 자신의 의무를 내세우니 우쭐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로렌스 형제의 이야기는 의무나 우리의 판단이 아닌, 순종으로 주님을 따르는 것이 어떤 모습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님을 좇아가는 사역을 하는 우리가 우쭐댈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자신의 기준을 가지고 자신의 의무를 내세우니 우쭐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로렌스 형제의 이야기는 의무나 우리의 판단이 아닌, 순종으로 주님을 따르는 것이 어떤 모습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로렌스 형제가 싸움이 많기로 소문난 수도원에 원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가 그 문제 많은 수도원의 문을 두드리자 젊은 수도사들이 몰려 나왔습니다. 그들은 백발이 성성한 노 수도사가 서 있는 것을 보고는, “어서 식당에 가서 접시를 닦으시오!” 라고 말했습니다. 처음 부임한 수도사가 그런 일을 하는 것이 그 수도원의 전통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답하고는 곧장 식당으로 묵묵히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는 한 달, 두 달, 세 달, 계속해서 접시를 닦았습니다. 그런 그에게 엄청난 멸시와 천대와 구박이 쏟아졌습니다. 석 달이 지나서 감독이 순시 차 수도원을 들렀습니다. 젊은 수도사들은 감독 앞에서 쩔쩔맸습니다. 그런데 원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감독이 물었습니다. “원장님은 어디 가셨는가?” “아직 부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감독이 깜짝 놀라며 말했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린가! 내가 로렌스 수도사를 3개월 전에 임명했는데!” 감독의 말에 젊은 수도사들이 아연실색(啞然失色) 했습니다. 그들은 그 즉시 식당으로 달려가 노 수도사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의 겸손으로 그 후부터 그곳은 모범적인 수도원이 되었습니다.

로렌스 형제의 이야기는 ‘순종하는 삶’이 때로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자신의 의무나 판단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그 순종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순종하는 자는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능력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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