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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유용성보다 인격적 관계를 중시하십시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요 18:36
video poster

한 줄 노트

  •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실용적 관점에서는 이해되지 않는 ‘거룩한 낭비의 시간’입니다.

묵상질문

삶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한 ‘거룩한 낭비’의 시간을 구별하여 갖고 있습니까?


묵상 레시피

◆요한복음 18:3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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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8:33-38)
33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네게 한 말이냐
35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37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38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 빌라도는 예수님께 무엇을 묻습니까? (33,37절)
  • 예수님은 이에 어떤 대답을 하십니까? (37절)
  • 예수님이 말씀하신 진리는 무엇입니까? (37절)
  • 빌라도가 생각한 진리는 무엇입니까? (38절)

내가 유대인이냐(35절)
빌라도는 이 일로 자신의 입지가 불편해지길 원치 않는다. ‘유대인’들의 분란은 그의 관심 밖이거니와 그 일에 어떤 책임도 지고 싶지 않았다. 실제 빌라도는 ‘예수’가 무죄인 것 보다 빌라도 자신이 이 일에 무죄(아무 연관이 없다)임을 강조한다(38절). 38절에 ‘찾지 못했다’에 쓰인 부정형은 ‘우크(단순 부정형)’가 아니라 ‘우데미안(강조 부종형)’이다. 예수의 처형에 조금도 연루되고 싶지 않은 빌라도의 입장을 볼 수 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36절)
예수님은 자신을 반기는 민중들의 의도를 알고 있었다. 그들이 정치적 열망으로 예수님을 왕으로 옹립하려 할 때 예수님은 산으로 피신하셨다(요6:15). 예루살렘에도 개선장군의 모습이 아니라 나귀새끼를 타고 겸허히 입성하셨다(12:12-19, 슥9:9-10). 유용성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이 세상 왕권을 잡아 능력을 입증하고 권력을 통해 효과적으로 사역하는 것이 오히려 솔깃한 방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세상의 나라는 하나님 나라의 넓이와 깊이를 결코 담아낼 수 없다.

진리가 무엇이냐(38절)
예수님은 빌라도의 질문에 ‘네 말이 나를 왕이라 하는구나’ 답하신다(37절,NIV). 예수님의 답은 빌라도가 원했던 명쾌한 답이 아니라 모호한 답이다. ‘왕’과 ‘왕권’에 대한 빌라도와 예수님의 정의가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왕이냐’고 묻는 빌라도에게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설명한다(37절). 예수님은 ‘진리(the truth)’를 증언하기 위해 태어났고 이 세상에 오셨다(3:16 참고). ‘인간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유일한 복음의 진리’를 뜻한다. 빌라도는 역시 이해하지 못하고 일반적인 ‘진리(truth)’를 언급한다. 심지어 이 질문은 ‘너 같은 자가 진리에 대해 무엇을 안다고 그런 말을 하느냐’는 조롱의 뉘앙스다.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가 없는 자는 진리이신 예수님(14:6)을 앞에 두고 진리를 논하는 우를 범한다.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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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성이 아니다

우리는 [주님은 나의 최고봉]을 통해 챔버스의 인격과 신앙이 어떠했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그가 끊임없이 고민했던 것은 ‘유용성’의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결론은 늘 같습니다. 유용성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아마도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벗어나기 힘든 유혹 가운데 하나가 ‘유용성’의 문제가 아닐까요? 다른 말로 하면, 내가 하는 일로 인해 세상에서 얼마나 인정을 받느냐는 것이죠. 세상은 자기들의 잣대로 우리의 일을 판단합니다. 하지만 말씀 묵상을 통해 깨닫는 것은 하나님의 관심은 ‘유용성’이 아닌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할 일은 그들의 선생이신 주님과 같아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의 핵심은, 주님과의 인격적 관계에 있지 공적으로 사람들에게 얼마나 유용한가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왜 하나님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까요? 신부산교회 조정희 목사님의 칼럼 일부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가 없는 자는 엄청난 부를 가지게 되면 그 부를 자신의 수고와 노력의 산물로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자기 존재를 증명하고 자기를 과시하는 삶을 사는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자기 나라를 구축해가는 자입니다. 그러나 주님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자는 자신이 노력하여 얻은 부와 권력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 여기며 그 힘과 능력과 환경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자신은 주님을 따르는 종일뿐이라는 ‘청지기의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주님과 친밀함을 유지하며 결코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주님을 드러내며, 다른 사람을 무시하지 않고 철저히 섬기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입니다.


우리는 지난 5일 선교사들이 가져야 하는 핵심적인 요소 다섯 가지를 나누었습니다. 당시 챔버스가 목격한 것은 선교사들의 빈곤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은 세상의 기준으로는 결코 풍요로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선교사들에게 유일한 소망이 있다면 ‘그리스도의 구속’에 완전히 젖어드는 것입니다. 그 구속의 의미를 온전히 깨닫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일을 계속하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 묵상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오늘날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큰 원수는 사역의 실리성입니다.”


누가복음 17장 20-21절

20.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사람들은 자꾸 하나님 나라를 보여 달라고 말합니다. 눈으로 확인해야 하는 세상의 관점이 작용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인다는 것은 결과가 얼마나 효과적인지와 관련이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하나님 나라가 ‘우리 안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보는 대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잘못된 생각은 챔버스 시대에나 우리 시대에나 계속되는 것 같습니다.

“보이는 활동으로 바쁜 기독교 사역자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만 삶의 능력은 그 사람의 생명의 가장 깊은, 보이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진정한 기독교인의 능력, 교회의 영향력, 신학교와 같은 기관의 탁월성은 우리 눈에 보이는 실질적인 활동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얼마나 깊은 관계 속에 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기독교의 진리]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은 홀로 있을 때에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는 사람입니다. 당신의 삶은 어떻습니까? 또한 당신의 소망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고상해 보이는 다른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과 이 세상을 위해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원한다면,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인내하십시오. 늘 평안할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은, 흔들림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원한다면, 먼저 예수 그리스도와 올바른 관계를 맺으십시오. 그러면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매순간 주님께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실용적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께 푹 빠지는 관계의 시간을 ‘낭비’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근본적인 구속의 은혜와 사랑에 빠져 있지 않다면, 어떤 일이 닥쳤을 때 견디지 못하고 부러질지도 모릅니다. 챔버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 푹 빠져드는 시간은 비록 실용적이지 않아 보여도 하나님께 뿌리를 내리고 기초를 다지는 것이기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라도 주님께 진실될 것입니다.”


[잔느 귀용의 순전한 사랑]에 참 좋은 글이 있습니다.

“완전함은 세상이 말하는 최고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내가 경험했던 모든 것이 성경 안에서 발견되었다. 내 영혼 속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이 성경에 있음을 깨닫고 감탄했다.”


유용성보다 인격적 관계를 중시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완전히 하나 됨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내가 경험했던 모든 것이 성경 안에서 발견되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 푹 빠져들어 말씀에 뿌리 내리고 기초를 다진다면, 주님과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더욱 풍성히 교제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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