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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예수 그리스도께 충성하십시오

사람이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요 15:13, 15
video poster

한 줄 노트

  • 주님을 위해 죽는 것보다 주님을 위해 사는 것이 훨씬 어렵고 가치 있는 일입니다.
  • 주님의 명예가 친구인 우리로 인해 평가 받는다는 사실이 두렵습니다.

묵상질문

어떤 그리스도인의 행동이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나요? 진정한 무례함은 그리스도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입니다.


묵상 레시피

◆마태복음 5:38-48 + 요한복음 15: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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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38-48)
3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40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42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원수를 사랑하라(눅 6:27-28, 32-36)
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요한복음 15:13,15)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 성도의 삶으로 권면하신 4가지 말씀은 무엇입니까? (38-42절)
  • 성도의 삶의 태도는 무엇입니까? (43-44, 46-47절)
  • 이러한 삶의 방식과 태도는 무엇에 기인한 것입니까? (48절)
  • 이로써 드러나게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45절)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38절)
함무라비 법전에서도 언급되는 ‘탈리오의 법칙’이다. 받은 그대로 갚아준다는 의미로 보이지만, 사사로운 판단과 복수가 아니라 법적으로 공론화되고 재판을 통해 다뤄진다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신약 시대에는 신체 상해에 대해 금전형으로 처벌을 대신하는 추세가 있었다. 부자들이 가난한 자들에게 해를 입힌 후 돈으로 처리하는 방식은 성경적 가치관에 위배된다.

오른편 뺨(39절)
오른편 뺨을 맞았다는 것은 상대방의 손등에 맞은 것이다. 주로 노예나 종을 때릴 때 주인들이 쓰던 방식이다. 왼뺨을 들이대는 것은 상대방의 하대와 폭력에 복수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 자신을 대하라는 침묵적 저항의 의미가 있다.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40절)
속옷까지 빼앗길 정도이면 이 사람의 형편은 최악이라고 보아야 한다. 더 이상 저당 잡힐 것이 없을 정도로 가난하거나, 상대방의 수탈이 극악하다는 의미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겉옷은 단지 외투가 아니라 이불이기도 했다. 삶을 위한 필수 도구였으므로 채권자도 겉옷까지는 빼앗지 않았다. 모든 것을 빼앗겨 벌거벗을 처지가 된 경우, 나체를 최고의 수치로 보는 유대인들은 벌거벗은 당사자보다 그 지경으로 만든 채권자를 비난했다. 그러므로 겉옷까지 내밀라는 말씀은 강도 행위에 가까운 수탈에 대한 비폭력 저항이라고 볼 수 있다.

오리를 가게 하거든 십리를 동행하고(41절)
로마 군인들은 식민지 백성들에게 강제 노역을 부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제한이 있었는데 배낭(30-38kg)과 5리만 갈 수 있는 규정이었다. 오늘 본문에는 식민지 백성들이 갖는 분노를 배경으로 한다. 예수님은 5리가 아니라 10리를 가라고 하신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로마군인은 군법에 의해 매우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어떻게 해서라도 배낭을 돌려받으려는 군인과 5리를 더 가주겠다는 식민지 백성 사이에 주도권이 뒤바뀌는 것이다.

너희도 온전하라(48절)
구약성경에서 ‘완전함’은 나누어지지 않은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속하는 것을 말한다. 단순히 윤리적인 의미가 아니라 삶이 하나님에게 속해야 하며, 인생 전체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의해 규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신 18:13, 9-12, 창 6:9, 삼하 22:24, 욥 12:4).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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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려 놓는 일

어제로 ‘그리스도의 경험’에 관한 시리즈가 끝났지만, 그와 동일한 메시지를 오늘도 전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1916년 이집트의 뜨거운 사막 열기 가운데 YMCA 막사에서 병사들에게 ‘예수님과의 우정’에 대하여 설교했던 내용입니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평범한 일상 가운데서 주님 앞에 신중하게 삶을 내려놓으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 37절에서 베드로는 ‘주를 위해 목숨을 버리겠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그 말은 그의 진심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영웅심은 십자가 아래서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목숨을 버리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단지 주를 위해 우리의 삶을 내려놓으라고 하십니다.

“당장 목숨을 바치는 것이 높은 소명의식을 가지고 하루하루 자신의 삶을 내로 놓는 것보다 훨씬 쉽습니다. 우리는 어떤 찬란한 순간을 위해 지음 받은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그 찬란한 빛 가운데 걷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를 보십시오! 주님께는 단 한 번의 찬란한 순간이 있었을 뿐입니다. 변화산에서 예수님이 내려오신 것은 영광의 자리에서 악령들이 가득 찬 세상으로 오시는 ‘자기 비움’의 일이었습니다. 주님의 생애를 잘 살펴보십시오! 주님은 33년 동안 하나님의 뜻을 행하시기 위해 늘 자신을 내로 놓으셨습니다. 요한 1서 3장 16절 말씀을 보세요.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우리 말 성경에는 ‘버리다’라고 되어 있는데 영어 성경의 표현 ‘lay down’을 ‘내려놓다’로 번역하는 것이 더 좋을 듯합니다. 즉, 친구를 위해 우리의 ‘삶’을 ‘내로 놓는다’라는 표현이 적절합니다. 이러한 행동은 한 번에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행위는 인간의 본성과는 전혀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제 묵상에서도 인용했지만, 요즘 로렌스 형제의 [하나님의 임재연습]이 참 좋습니다. 일상의 삶에서 자신을 내려놓는 일이야 말로 주님을 가장 잘 사랑하는 표현일 것 같습니다. 진정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다면, 가장 진실하게 삶을 내로 놓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모든 것, 모든 곳, 모든 일이 똑같았다. 이 선한 형제는 기도 모임에 참석하고 있을 때나 신발을 수선하고 있을 때나, 어디서나 언제든지 하나님을 발견했다. 쉼을 갖기 위해 특별히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었다. 로렌스 형제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한 수단은 매사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주어진 그 일을 하나님을 위해 한다는 것이었다.



2. 어려운 일

우리가 친구를 위해 삶을 내려놓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주님이 우리의 친구라면 주님을 위해 우리의 삶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챔버스는 오늘 묵상에서 아주 중요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어렵기 때문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어렵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이미 엄청난 대가를 치르셨기 때문에 구원은 쉽습니다. 그러나 그 구원이 내 삶 속에서 드러나게 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초대교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순교의 영광’을 꿈꿨습니다. 심지어는 일부러 로마의 법정에 나가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밝히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순교하는 순간 순교자는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받습니다. 어쩌면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진짜 순교자와 가짜 순교자를 구분해야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오늘 챔버스의 글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은 그리스도를 위해 죽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산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내러 놓는 일이요, 매일 매일 자신이 죽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가 쉽게 구원을 받았으나, 구원받은 자의 삶을 사는 것은 진심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이미 엄청난 대가를 치르셨기 때문에 구원은 쉽습니다. 그러나 그 구원이 내 삶 속에서 드러나게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힘들기는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구원받은 우리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주변의 상황들이 아무리 우리를 방해해도 힘을 내고 충성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친구라 하셨으니, 우리의 참 친구이신 주님을 위해 충성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주님의 명예’가 친구인 우리로 인해 좌우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요즘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시민의식’에 대하여 많이 생각합니다. 우리로 인해 예수님께서 무례한 분으로 인식되지 않도록, 우리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이 가려지지 않도록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풀러 신학교 총장을 지닌 리처드 마우 가 쓴 책 [무례한 기독교]에 나오는 글입니다.

(복음전도는) 우리 사회의 ‘선한’ 사람들을 초대해서 그들이 복음을 알고 복음에 대한 강한 확신을 품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제자의 삶이 참으로 매력적인 생활 방식임을 보여 주어야 한다. 이는 또한 … 그리스도인으로서 더 온유하고 더 흠모할 만한 인격이 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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