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주보 QT MY 메뉴
  • Home
  • >
  • QT
  • >
  • 예수님을 보았습니까?
이전으로
2021년 04월 09일 금요일
다음으로
이전으로
2021년 04월 09일 금요일
다음으로
주님은 나의 최고봉

예수님을 보았습니까?

그 후에 그들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


막 16:12
video poster

한 줄 노트

  • 체험도 중요하지만, 주님을 보는 것과 바라보는 것을 통해 진정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 소명자가 되는 것은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사명을 묵묵히 수행하는 것입니다.

묵상질문

오늘 우리가 책임을 지고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묵상 레시피

◆열왕기하 7:1-20 + 마가복음 16:12
펼치기/접기

(열왕기하 7:1-20)
1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밀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고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리라 하셨느니라
2 그 때에 왕이 그의 손에 의지하는 자 곧 한 장관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하더라 엘리사가 이르되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니라
3 성문 어귀에 나병환자 네 사람이 있더니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랴
4 만일 우리가 성읍으로 가자고 말한다면 성읍에는 굶주림이 있으니 우리가 거기서 죽을 것이요 만일 우리가 여기서 머무르면 역시 우리가 죽을 것이라 그런즉 우리가 가서 아람 군대에게 항복하자 그들이 우리를 살려 두면 살 것이요 우리를 죽이면 죽을 것이라 하고
5 아람 진으로 가려 하여 해 질 무렵에 일어나 아람 진영 끝에 이르러서 본즉 그 곳에 한 사람도 없으니
6 이는 주께서 아람 군대로 병거 소리와 말 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셨으므로 아람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이스라엘 왕이 우리를 치려 하여 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에게 값을 주고 그들을 우리에게 오게 하였다 하고
7 해질 무렵에 일어나서 도망하되 그 장막과 말과 나귀를 버리고 진영을 그대로 두고 목숨을 위하여 도망하였음이라
8 그 나병환자들이 진영 끝에 이르자 한 장막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거기서 은과 금과 의복을 가지고 가서 감추고 다시 와서 다른 장막에 들어가 거기서도 가지고 가서 감추니라
9 나병환자들이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아니되겠도다 오늘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거늘 우리가 침묵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알리자 하고
10 가서 성읍 문지기를 불러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아람 진에 이르러서 보니 거기에 한 사람도 없고 사람의 소리도 없고 오직 말과 나귀만 매여 있고 장막들이 그대로 있더이다 하는지라
11 그가 문지기들을 부르매 그들이 왕궁에 있는 자에게 말하니
12 왕이 밤에 일어나 그의 신복들에게 이르되 아람 사람이 우리에게 행한 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그들이 우리가 주린 것을 알고 있으므로 그 진영을 떠나서 들에 매복하고 스스로 이르기를 그들이 성읍에서 나오거든 우리가 사로잡고 성읍에 들어가겠다 한 것이니라 하니
13 그의 신하 중 한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청하건대 아직 성중에 남아 있는 말 다섯 마리를 취하고 사람을 보내 정탐하게 하소서 그것들이 성중에 남아 있는 이스라엘 온 무리 곧 멸망한 이스라엘 온 무리와 같으니이다 하고
14 그들이 병거 둘과 그 말들을 취한지라 왕이 아람 군대 뒤로 보내며 가서 정탐하라 하였더니
15 그들이 그들의 뒤를 따라 요단에 이른즉 아람 사람이 급히 도망하느라고 버린 의복과 병기가 길에 가득하였더라 사자가 돌아와서 왕에게 알리니
16 백성들이 나가서 아람 사람의 진영을 노략한지라 이에 고운 밀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이 되고 보리 두 스아가 한 세겔이 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고
17 왕이 그의 손에 의지하였던 그의 장관을 세워 성문을 지키게 하였더니 백성이 성문에서 그를 밟으매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죽었으니 곧 왕이 내려왔을 때에 그가 말한 대로라
18 하나님의 사람이 왕에게 말한 바와 같으니 이르기를 내일 이맘 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고 고운 밀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리라 한즉
19 그 때에 이 장관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 일이 있으랴 하매 대답하기를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였더니
20 그의 장관에게 그대로 이루어졌으니 곧 백성이 성문에서 그를 밟으매 죽었더라

(마가복음 16:12)
12 그 후에 그들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

  • 아람 대군에 포위 된 사마리아 성을 향해 하나님은 어떤 약속을 주셨습니까? (1절)
  • 왕 곁에 있던 한 장관은 약속에 대해 뭐라고 말했습니까? (2절)
  • 그 약속을 맨 처음 눈으로 본 사람들은 누구였습니까? (3-5절)
  • 그들은 곧 어떤 생각과 행동을 했습니까?(9-11절)
  • 왕과 신하들은 이 소식에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12-14절)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왕궁에 가서 알리자(9절)
나병환자들은 전쟁 중에도 성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 사람들이 그들을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자들은 생명의 소식을 전하고자 어둔 밤길을 걸어 자신들을 버린 성으로 돌아간다. 성은 여전히 그들을 받아주지 않았지만, 그들은 멀리서 소리쳤다. 구원의 기쁜 소식이지만 여러 절차를 지나서야 왕궁에 도달했다.


◆ 묵상도움글
펼치기/접기

1. 아는 것과 보는 것은 다릅니다

오늘 묵상에서도 챔버스의 특징이 잘 드러납니다. 개념을 구별하는 방식이죠. ‘그리스도인’을 분명하게 두 부류로 나누는 방식입니다. ‘구원을 받은 사람’과 ‘주님을 본 사람’입니다. 챔버스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는 것과 주님을 보는 것은 다릅니다. 주님을 보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본 사람은 반드시 변화됩니다. 과거에 좋아하던 것을 더 이상 좋아하지 않게 됩니다.”


부활의 가장 확실한 증거는 ‘분명한 변화’가 아닐까요? 우리가 흔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예수님을 만났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이것과 다른 차원의 만남이 존재하는데, ‘그분이 우리를 위해 이루신 일’을 아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구분해야 할 것이 있는데, 만일 우리가 ‘나를 위해 이루신 일만 안다면’ 그것은 온전히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나고 보아야 우리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인도하시는 그분을 따라 살아가며 인내 할 수 있습니다.


챔버스는 오늘 묵상에서 날 때부터 소경되었던 사람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소경된 자는 예수님께서 친히 나타나셔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실 때까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소경을 고치신 후에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하지만 언제 예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실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분명한 것은 그분이 우리에게 나타나실 때, “나는 지금 그분을 보고 있습니다!”라고 말하게 된다는 것이죠. 인터넷 블로그에서 “바라봄의 원칙”이라는 글을 보았는데, 좋아서 옮겨 봅니다.


우리는 우리가 바라보는 것을 얻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바라보는 것을 닮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바라보는 것에 의해 변화되게 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을 닮게 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에 의해 변화됩니다.


인내를 가지고 끝까지 바라보면 끝내 그것을 얻게 됩니다.

인내를 가지고 끝까지 노력하면 끝내 그분을 닮게 됩니다.

인내를 가지고 끝까지 하나님을 바라보면 마침내 하나님과 하나가 됩니다.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주님의 일을 아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며 살게 됩니다.


2. 다른 이에게도 주님이 보여야 합니다

어제 묵상 글에서 챔버스는 주님의 부활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영광에 참여하도록 인도한다고 했습니다. 오늘 주님을 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보았다고 말하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친구들에게도 주님이 나타나셔야 합니다.

“그 이유는 다른 사람의 눈으로는 주님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본 사람과 보지 못한 사람 사이에는 구분이 생깁니다.”


이 부분에서도 조금 어려운 해석에 봉착하게 됩니다. 주님을 보는 체험은 우리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친구들에게도 일어나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시지 않으면 그 친구가 주님을 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보았다면 우리의 친구 역시 주님을 보기 원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우리에게는 친구들로 하여금 주님을 보게 할 능력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 다음 절인 마가복음 16장 13절을 보면.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알리었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게 하는 것은 우리들의 능력이 아니지만, 그들에게 전하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의 책임은 그들이 믿지 않더라도 전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기적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믿게 된 것이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주님의 부활이 누군가의 인격과 삶을 바꾸는 것보다 더 큰 기적이 있을까요?


우리가 소명자가 된다는 것은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도구로 쓰임 받은 것에 만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온전히 쓰임 받았느냐에 대해 물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본 것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입니다.


오늘 묵상 글 마지막에서 챔버스는 시인 프레드릭 W. H. 마이어스(Frederic William Henry Myers)가 쓴 “성자 바울”이라는 장시(長時)의 97연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내가 본 것을 말할 수만 있다면 당신은 분명히 믿게 될 텐데!

어떻게 말해야 당신이 받아들일까!

오직 주님께서 내가 섰던 그곳에 당신을 이끄신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의 소원입니다. 마치 사도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주님께서 누군가를 내가 소원하는 그 자리에 이끄실 수만 있다면 족하다는 마음으로, 전해야 하는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로딩중...
0:00 0:00
닫기
1.0x
0.5 1.0 1.2 1.5 2.0
닫기

구독설정

구독한 콘텐츠는 MY구독에서 한번에 볼 수 있어요.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