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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예수님과 동행하고 있습니까?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눅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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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지금 주님이 당하셨던 것과 동일한 시험으로 씨름하고 있다면, 주님과 동행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 어떤 상황에서든 주님과 동행한다면 우리 속에 계신 주님을 명예롭게 지켜내는 것입니다.

묵상질문

시험을 당할 때,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이 시험 당하신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습니까? 우리의 시험이 얼마나 귀한지 생각하며 이겨내기를 바랍니다.


묵상 레시피

◆히브리서 13:12-13+ 누가복음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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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3:12-13)
12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13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누가복음 22:28)
28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 예수님이 성문 밖에서 고난 받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12절)
  • 우리가 짊어질 것은 무엇입니까? (13절 상반절)
  • 우리가 나아갈 곳은 어디입니까? (13절 하반절)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12절)
12절은 레위기 16장에 기록된 속죄일을 배경으로 한다. 속죄일에는 수송아지와 숫염소를 제물로 희생했다. 그 피로 성소에서 죄를 속하는 예식을 행했다. 예식 후에는 제물을 ‘진 바깥으로’ 끌어내 가죽, 살코기, 똥을 불에 태웠다(레16:27). 히브리서는 성문 밖, 골고다에서 죽으신 예수님께서 새 언약의 속죄 제물로서 레위 규정을 이루셨음을 말한다. 예수님은 ‘성문 밖에서’ 죽으심으로 속죄 제물로 희생 되셨으며 속죄일의 내용을 이루셨다. 그의 희생은 ‘성스러운 영내’에서 ‘밖으로’ 축출되는 수치였으며, 백성들로부터 거부당하고 버림받은 것이었다.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13절)
히브리서는 성도들에게 영내를 떠나라고 권면한다. 영내는 안전하고 쾌적하며 정결하고 성스럽게 생각되는 곳이다. 영문 밖은 더럽고 부정한 곳, 능욕과 수치, 버림받음과 비난이 있는 곳이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로마로부터 종교적 특혜를 인정받던 유대교 테두리 안에 머물고 있었다. ‘예수’로부터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받는 기독교는 유대교와 함께 갈 수 없는 공동체였다. 그럼에도 그리스도인들은 박해를 피할 수 있는 유대교의 안전한 ‘영내’에 머물고 싶었을 것이다. 히브리서는 ‘영문 밖으로’ 나가자고 권면한다. 중요한 것은 ‘그분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에게’로 나가는 것이다. 영문 밖은 치욕 당하는 예수님이 계신 곳이다. 성도는 예수님과 동일한 치욕을 짊어진다. 예수님과 온전히 하나가 된다.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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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님과 함께 시험 당함

오늘로서 시험에 관한 세 개의 묵상이 마무리 됩니다. 첫 번째 묵상을 통해 시험의 유익을 살펴봤고, 두 번째 묵상을 통해 주님과 동일한 시험을 당하는 것이 우리에게 축복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세 번째 묵상에서는 어떤 시험을 당하더라도 주님과 동행하라는 권면이 이어집니다.


오늘 묵상의 첫 번째 문장은 주제를 담고 있으면서도 아주 난해합니다.

“우리가 시험 받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께서 시험 받으실 때 주님과 함께합니까?”


우리가 시험을 당할 때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 얼마나 든든합니까? 그런데 정작 중요한 신앙적 물음은 주님이 시험 당하시는 순간에 우리도 주님과 동행할 수 있느냐 입니다. 요한복음 6장 66절 “…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우리는 쉽게 주님과 동행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일회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님과 함께 동행 할 수 있느냐 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받으신 시험을 경험하는 도중에 동행을 포기합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우리가 진정한 ‘동행’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국민일보 [겨자씨 :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에 실렸던 글이 있습니다.

성경은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다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건 어떻게 살았다는 말일까요. 뜻밖에도 성경은 그에 대해 자세한 내용을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의 삶의 행위가 아니라 자세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동행하다’라는 히브리어는 부부관계를 의미합니다. 부부는 때로 다투고 얄미워 보여도 한평생 묵묵히 함께 걸어가는 사이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동행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에 큰 부담을 느낍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우리가 큰 손해를 감수해야 할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입장 바꿔 생각해 봅시다. 어른이 세 살짜리 아이와 걸어간다면 누가 더 불편할까요. 아이는 제 갈 길을 가면 그만입니다. 보폭을 맞추고 속도를 조절하는 건 어른의 몫이죠.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할 때도 우리보다 훨씬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이 더 손해 보고 불편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죄 많고 어리석은 우리에게 보폭과 속도를 맞추기 위해서겠지요. 동행은 결국 은혜입니다.


시험을 당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 시험 가운데 주님과 동행하는가가 중요합니다. 어제 말씀을 통해 깨달은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가 거듭난 삶을 살 때 주님과 동일한 시험을 당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이 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시험들은 그분이 이 땅에서 사시는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 시험들은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에게 계속될 것입니다. 지금 살아가는 삶 가운데서 예수님과 동행하고 있습니까?”


2. 시험 가운데서도 계속 동행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시는 환경에서 자꾸 자신을 보호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상황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직면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이든 우리 안에 계시는 주님이 우릴 통해 시험 당하실 때 주님과 함께 해야 합니다. 우리가 거듭난 자가 되어 하나님의 자녀로 살면, 우리 안에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이 거하십니다. 따라서 거듭난 자가 당하는 시험은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당하시는 시험입니다. 아주 중요한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예가 당신의 육신의 삶에 의해 좌우됩니다.”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환경이 시험으로 다가오는 상황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에게 지속적으로 충성하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당신은 예수님과 계속 동행합니까? 그 길은 겟세마네를 지나고 성문을 지나 영문 밖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외로운 길이며 아무 발자국의 흔적도 없는 곳까지 이르는 길입니다.”


주님과 동행 하는 길은 오로지 ‘나를 따르라’는 음성에 순종하며 가는 길입니다. 직접적으로 오늘 묵상에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기꺼이 찢겨진 빵과 부어지는 포도주가 되는 길입니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고, 소중히 여기지 않아도 우리를 부르신 자리에서 기꺼이 ‘신발털이개’가 되겠다는 결심입니다. 오늘은 찬송가 449장으로 묵상을 마무리를 하면 좋겠습니다.

1. 예수 따라가며 복음 순종하면 우리 행할 길 환하겠네

   주를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를 주가 늘 함께 하시리라

2. 해를 당하거나 우리 고생할 때 주가 위로해주시겠네

   주를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를 주가 안위해 주시리라

후렴) 의지하고 순종하는 길은 예수 안에 즐겁고 복된 길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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