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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성향과 행동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 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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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선한 행동으로 선한 사람이 되려는 노력은 우리를 위선적으로 만듭니다. 선한 존재가 되어야 선한 행동을 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 올바르게 행하고 싶다면 먼저 새로운 존재가 되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주님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묵상질문

내 안에서 옛사람과 다른 전혀 새로운 유전형질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새로운 사람을 꿈꿔봅시다.


묵상 레시피

◆고린도후서 5:14-21 + 마태복음 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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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5:14-21)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20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마태복음 5:20)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 바울이 하나님의 뜻과 일에 전념할 수 있던 비결은 무엇입니까? (14절)
  • 바울은 무엇을 통해 이 사랑의 진정성을 확신하게 되었습니까? (14절)
  • 바울의 삶에 어떤 변화가 생겼습니까? 어떤 존재가 되었습니까? (15-17절)
  •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에 어떤 변화가 생겼습니까? (18절)
  • 우리에게 어떤 사명과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까?(18-20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14절)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온전히 지배받았다. 하나님 외에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사랑에 강하게 붙들려 있었다. ‘강권하다(헬, 쉰에케인)’는 다스리다, 속박하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 그리스도께서 자신과 모든 사람의 죄를 위해 대신 죽으셨음을 알게 되었다(롬5:6,8, 고전15:3, 갈1:14, 2:20). 바울은 아담 이래로 자기 자신, 자기 가족만을 위해 살아온 인류의 삶에서 새로운 삶의 양식으로 돌아선다.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삶,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삶이다(고전5:15,17절).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16절)
‘육신을 따라(헬, 카타 사르카)’ 안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기 이전, 자신만을 위해 살던 삶, 자신의 기준과 율법에 근거해 모든 것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삶이다.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 안에’ 존재한다. 이는 신비한 합일이나 감정적인 위안, 심리적 안정을 뜻하지 않는다. 세례 받은 그리스도인의 모든 가치, 평가 기준과 행동 근거가 그리스도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18절)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고자 하신 것은 ‘화해의 역사’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온전한 다스림 가운데 들어갈 수 있도록 죄를 속하시고 바른 관계를 회복하게 하신 것이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그리스도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길을 여셨다(마3:2, 4:17, 히4:16).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과 화해하시며 새 창조를 이루실 것이다. 하나님은 이 천국 복음, 화해의 복음을 우리에게 맡겨주셨다(19절).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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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믿음이냐? 행위냐?

기독교 역사에서 끊이지 않는 질문이 있습니다. ‘믿음’과 ‘행위’에 대한 문제입니다. 오늘 묵상에서 챔버스는 ‘성향’과 ‘행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진정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인지, 아니면 의로운 행동이 나타나는 것인지 알고 싶은 것이죠. 챔버스는 오늘 묵상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제자의 특징은 어떤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의 제자라면 선한 동기를 가지는데, 이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은혜에 의해 선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챔버스의 이 말은 ‘믿음’과 ‘행위’가 상반된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챔버스가 ‘선한 일’(right doing)과 ‘선한 존재’(right being)을 구별하고 있으나, 이 둘이 별개가 될 수 없습니다. 선한 일을 하기 때문에 선한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선한 존재가 되면 자연스럽게 선한 일을 합니다. 선한 일을 한다고 해서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주님의 제자는 주님의 은혜로 선한 일을 하도록 변화된 사람입니다.


주님께서는 공생애 기간 바리새인들의 ‘의’에 대하여 많은 질책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질책이 의로움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바리새인들의 문제는 의로운 존재가 되지 않고서 의로움을 행하려고 하다가 ‘위선적’으로 변한 것이죠. 오늘 본문은 이러한 바리새인들의 ‘의’를 지적하시는 말씀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산상수훈]에 나오는 글을 통해 본문의 이해를 돕도록 하겠습니다.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마5:20)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는 옳은 것이다. 악한 것이 아니다. 분명히 그들은 ‘의’를 행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의가 그들의 의보다 훨씬 뛰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의로운 존재가 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들의 의로운 행위를 능가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어 의로운 행위를 할 수 있는 의로운 존재가 되지 않으면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를 능가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는 우리의 의가 행위에 있어서도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를 능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알다시피 전혀 의로운 ‘존재’가 아니다. 따라서 우리의 의로운 행위가 그들의 의로운 행위를 능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단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이다.


선한 행동을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선하지 못한 사람이 선한 행동을 하려고 애쓰는 것이 문제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주께 삶의 주권을 맡기는 자에게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를 능가하는 새로운 유전형질을 넣어주십니다.”


2. 새로운 성향으로만

이제 존재와 행동이 상반되는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면 자연스럽게 삶도 의로워짐을 알았습니다. 진정한 제자라면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순결해야 하고, 하나님께서 지적할 만한 것이 없어야 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빛 앞에 섰을 때, 여전히 의와 순결을 자신할 수 있는가 입니다. 이 세상에서 완벽한 삶을 살았던 분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구속의 사건’을 통해 그를 믿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성향을 넣어 주실 수 있습니다. 구속의 은혜로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성품과 성향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죠. 바로 이 구속의 사건에서 인간의 ‘재창조’가 시작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가장 놀라운 것은 그분이 우리의 유전형질을 바꾸신다는 것입니다. 인성이 아니라 그 근원을 바꾸십니다.”


‘유전형질’을 바꾸는 것은 아주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합니다. [본회퍼와 함께하는 하루]라는 책에서 세 가지 차원의 변화를 아주 잘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성육신하신 분과 같은 형상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은 현실에 존재하는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현실의 모습과 다른, 더 낫고 더 이상적인 인간이 되고자 하는 모든 겉치레, 위선, 긴장과 강박관념은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은 현실의 인간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도 현실의 인간이 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과 같은 형상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인간이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죄로 인해 사형 선고를 받고 살아가며, 하나님 앞에서 매일 죽어야 하는 표를 몸에 지닌 존재입니다. 심판과 은혜를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음을 그는 자신의 삶으로 증명합니다. …

부활하신 분과 같은 형상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인간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새로운 인간은 죽음 한가운데서 생명으로 충만합니다. 그는 죄의 한복판에서도 의롭습니다. 그는 옛사람의 모습이지만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그의 비밀은 세상에 감춰져 있습니다. 그가 살아 있는 것은 그리스도가 살아 계시기 때문이며, 그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살아 있습니다.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빌 1:21)


주님의 제자들에게 ‘행함’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율법을 지켜서 자신을 순결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도 우리가 율례와 규칙을 지키도록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진리의 영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면 새로운 성향이 생깁니다. 이 새로운 성향으로 인해 참다운 행동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잘못된 행동을 교정하고 올바른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행동을 고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우리 본성의 유전형질을 바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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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호
예수님 저를 하나님의 자녀돼게 하셨으니 두려움을 물리치게 하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그리스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내게 선한 마음을 주소서 그리하여 아들들에게 선을 베풀게 하소서 포기하지 않게 하소서 아들들 방을 청소하게 하시고 맛있는 밥을 먹이게 하소서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게하소서
2021.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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