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주보 QT MY 메뉴
  • Home
  • >
  • QT
  • >
  • 성령의 폭발적 능력
이전으로
2021년 07월 25일 일요일
다음으로
이전으로
2021년 07월 25일 일요일
다음으로
주님은 나의 최고봉

성령의 폭발적 능력

… 한 자는 복이 있나니 …


마 5:3-10
video poster

한 줄 노트

  • 팔복 말씀을 감상만 하지 말고 삶에 적용해야 성령의 능력을 경험합니다.
  • 말씀으로 인해 아프다면 그 말씀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묵상질문

팔복 말씀을 하나하나 열거해봅시다. 어떤 말씀이 가장 아프게 다가옵니까? 그 아픈 말씀으로 인해 기뻐합시다.


묵상 레시피

◆마태복음 5:3-12
펼치기/접기

(마태복음 5:3-12)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 팔복의 말씀을 한 절, 한 절 묵상해 보십시오.
  • (5:3절은 7/21일자 묵상레시피를 참고하십시오.)

애통하는 자, 위로를 받을 것(4절)
‘애통’과 ‘위로’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다. 1) 죽음에 대한 슬픔과 종말론적 부활을 통한 위로 2) 죄에 대한 회개의 슬픔과 죄 용서의 위로 3) 악에 의해 고난을 겪는 의인의 슬픔과 받을 위로 4) 영적, 육체적 고난에 대한 슬픔과 받을 위로. ‘위로 받다(헬, 파라클레데손타이)’에 쓰인 단어는 ‘곁으로’와 ‘부르다’라는 헬라어가 합성된 형태다. 하나님이 자기 곁으로 불러 친히 위로하시고 만져 주시는 것이다. 더불어 ‘위로’는 구체적인 상황 가운데 실제로 일하시며 변화를 가져오시는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의미한다.

온유한 자,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5절)
‘온유(헬, 프라우스)’에 쓰인 헬라어는 히브리어 ‘아나우’를 번역한 것이다. 억압과 착취, 속임에 무방비로 노출된 무력한 사람을 가리킨다(시9,10편). 또한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겸손히 하나님을 바라는 사람에게 사용된다(시40:18, 사41:17, 습2:3). 하나님은 무시당하고 수탈의 대상이 되는 이들을 위로하시며 구원하신다(사29:19, 욥36:15, 시37:11, 사26:6). 온유한 자는 인간의 힘과 복수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모든 것을 위임한다. 외형적으로 무력해 보이나 하나님에 대한 신뢰로 심지가 굳고 일관성이 있다. 예수는 온유한 자의 모형이다(마11:29, 21:5).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로 가나안 땅을 분배받을 수 있었다. 하나님은 온유한 자들에게 ‘땅’을 분배해 주실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 삼으실 것이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배부를 것(6절)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취하는 바른 태도, 합당한 복종, 윤리적인 삶을 살아가고자 애쓰는 사람이다. 갈증과 배고픔이 있는 자는 체면을 차리지 않는다. 하나님의 의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하는 자는 진정한 배부름과 해갈을 경험하게 된다.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는 새로운 질서와 생활양식에 들어가게 된다(출16:18).

긍휼히 여기는 자,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7절)
인간은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자비)’에 의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 그분의 구체적인 도움, 구원, 용서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하나님은 인간 상호 간에도 이러한 긍휼을 베풀기 원하신다(시109:16, 잠3:3, 호4:1,6:6,12:6, 미6:8, 슥7:9). 긍휼은 연민의 느낌이나 감정을 품는 것, 혹은 율법의 강요가 아니다. 구체적인 행위이다. 하나님의 자비를 경험한 자들은 마땅히 자비를 베풀어야 하며, 자비를 베푼 자들이 또한 하나님의 자비를 경험할 것이다(마6:14-15).

마음이 청결한 자, 하나님을 볼 것(8절)
마음은 단순히 ‘내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의지, 사고, 감정이 거하는 곳이며 행위, 태도가 결정되는 곳으로서 인간을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정의하는 개념이다. ‘청결’은 주로 제의적 의미로 제물, 제사 도구, 제사장의 외적 온전함, 정결함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그의 전 존재가 하나님께 온전히 맞추어졌다는 의미다. 두 주인을 섬기지 않고(6:24)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향해 하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인간의 감정과 정서, 의지, 생각, 태도, 행위의 모든 부유물을 흘려보내고 하나님과 얼굴을 맞대어 보는 것이다(고전13:12, 요일3:2, 계22:4).

화평하게 하는 자,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9절)
평화를 만드는 자(헬, 에이레노포이오이)를 가리킨다. 이들은 평화가 파괴되는 곳에서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평화, ‘샬롬’을 위해 행동한다. 전 세계와 자연계, 온 세상 만물을 포함하는 우주적인 평화이다.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 깨어진 평화의 현장 즉, 생태계 파괴, 질병, 사회적으로 불의한 사고와 사건, 인종, 성별, 종교, 이데올로기의 갈등 현장에서 오늘도 ‘새로운 창조’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다.

의를 위해 박해 받는 자, 천국이 그들의 것(10절)
앞선 7가지 복에서 언급된 모든 사람들이 ‘의를 위해 박해 받는 자’이다. ‘의’는 예수의 제자들이 삶을 살아가는 태도 전체를 가리킨다. 제자들의 방식은 세상과 충돌할 것이다. 모욕과 박해,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11절). 그럼에도 기뻐하고 즐거워 할 것은 ‘상’이 크기 때문이다(12절). 제자로서 감수해 나가는 모든 순간이 하나님의 다스림 가운데 있다. 모든 장소와 시간이 하나님의 임재와 일하심을 경험하는 천국이다.


◆ 묵상도움글
펼치기/접기

1. 성령의 능력으로

7월 21일 묵상에서 처음으로 팔복 중의 하나인 ‘마음이 가난한 자’의 복에 대하여 다루었습니다. 챔버스는 팔복 말씀 하나하나가 ‘영적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폭발력을 가졌다고 말합니다. 이 폭발력은 일단 한 번 터지고 나면 우리의 언행을 변화시켜 주님을 따르게 만드는 능력이 있을 정도로 대단합니다. 산상수훈과 팔복 말씀은 그리스도인이 따라야 하는 단순한 규칙이 아닙니다. 성령님이 삶을 인도하실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처음 접할 때,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지금까지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세계 성인 중 하나로 여기고, 또한 그 말씀이 ‘참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산상수훈 말씀은 세속적인 사람들에게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나 아주 좋은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경험하는 거친 일상에서는 전혀 실용성이 없어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성령의 능력이 임하면 달라집니다.

“그러나 산상수훈은 성령의 폭발적 능력을 담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것이 터질 만한 상황이 되면 산상수훈의 교훈들은 엄청난 폭발력을 발휘합니다.”


팔복 말씀을 낭만적으로 듣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 삶에 적용해야만 하는 그 순간,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놀라운 폭발력이 일어납니다. 원문에서는 ‘다이너마이트’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삶에 이 말씀을 실제로 적용하도록 역사하시면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전까지는 아름다운 ‘금언’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런 말씀이었구나’라고 깊이 깨닫는 순간이 옵니다. 나의 삶과 인격에 관계없이 말씀을 보면 단순히 ‘참 좋은 말’인데, 이것을 우리 삶에 적용하려고 하니 치열한 싸움이 시작됩니다. 우리는 ‘순종할지 말지’ 결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순종의 여부에 따르는 놀라운 영적 변혁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이렇게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 팔복 말씀은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2. 법칙이 아닌 현상

조금 더 나아가 보겠습니다. 산상수훈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어린아이와 같이 유치합니다. 그저 좋은 말씀으로만 여기는 상태에서 굳이 거듭날 필요가 있겠습니까?

“산상수훈은 규범이나 율례가 아닙니다. 성령이 우리의 삶을 인도하실 때 삶에 나타나는 현상들을 진술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께서 그 말씀을 구체적으로 적용하게 하시니 우리는 삶에서 그 말씀을 구체적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거듭난 성도들에게는 이렇게 엄중한 작업이 필요합니다. 팔복 말씀은, 그 말씀이 구체적으로 우리 삶에 적용될 때 나타나는 현상인 ‘복’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우리의 관념에 머무르게 두지 않고 실제 삶에 적용하려 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주님의 가르침이 세상의 논리나 방법과 전혀 맞지 않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적용되기 시작할 때 불편함을 경험할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속에서 역사하실 때 말씀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이 정상입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산상수훈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오기 시작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말씀이 역사할 때 일어나는 ‘현상’을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다면 말씀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언젠가 우리 교회를 찾아와 등록했던 한 부부가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목사님! 교회 근처로 이사 오면서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어떤 교회에 가서 말씀을 듣던지 그 말씀으로 인해 제 마음이 불편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제 마음에 꼭 맞는 말씀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런데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 젊은 부부의 말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다는 증거는 그 말씀으로 인해 내 삶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오면 정욕으로 가득한 내 삶이 당연히 아프고 쓰리지 않겠습니까?


세상의 복을 추구하며 살던 우리에게, 영적인 복을 말씀하시는 산상수훈이 어떻게 자연스러울 수 있겠습니까? 오늘 말씀이 통곡하게 하고 많이 아프게 한다면 기뻐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살아 있다는 증거이니 말입니다.

Download
PDF다운로드
묵상 남기기
박영호
주님 팔복중에 화평케하는자 복있나니 천국이 저희것이요 하신 말씀이 제일 가슴에 찔립니다
주님 남편과 두아들 그리고 주벼동료와 시댁 친정식구들 모두 주님과 화평하도록 도와주어야 하는데 잘 안돼네요 저에게 지혜와 그들을 섬길 수 있는 능력을 주소서
2021.07.29
로딩중...
0:00 0:00
닫기
1.0x
0.5 1.0 1.2 1.5 2.0
닫기

구독설정

구독한 콘텐츠는 MY구독에서 한번에 볼 수 있어요.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