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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성령의 증거하심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롬 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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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상식으로 성령의 증거를 이해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성령의 역사는 의지를 내려놓을 때 보이기 시작합니다.

묵상질문

당신은 증거를 보여 달라고 기도합니까, 아니면 하나님 앞에서 나를 내려놓게 해달라고 기도합니까?


묵상 레시피

◆역대상 29:11-13 + 로마서 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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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상 29:11-13)
11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12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13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로마서 8:16)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11절)
  •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일들은 무엇입니까? (12절)
  • 이를 깨달은 이들이 할 바는 무엇입니까? (13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11절)
본문은 다윗이 성전 건축 준비를 마치고 드린 감사 기도의 일부이다. 하나님은 다윗을 통해 주변국들을 다스리게 하심으로 그분의 ‘위대함(히, 께둘라)’을 드러내셨다. 그러므로 ‘권능(히, 께부라)’ 즉, 왕권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다윗은 이스라엘에 ‘대왕’으로 불리는 존재지만, 그 자신은 하나님이 ‘왕’이심을 선포한다. 하나님은 피조물보다 뛰어나신 ‘영광(히, 티프아라)’의 하나님이며, 번영과 쇠락을 반복하는 세상 나라, 세상 왕들과 달리 영속성과 영구성을 지니신 ‘승리(히, 네차흐)’의 하나님이다. 이스라엘과 열방, 모든 피조물에 대한 소유권과 통치권, 지배권은 하나님께 속한다(주권, 히, 마믈라카). 하나님은 누군가 높여서 높은 분이 아니라 그 분 자체가 ‘높으신(히, 미트낫세)’ 분이다. 다윗은 일생의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께 모든 것이 있음을 체득했다.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12절)
‘부(히, 오쉐르)’는 ‘부지런한 노동의 열매, 여호와의 축복의 상징’이다(잠10:4, 삼상2:7, 시112:3). 하나님 없는 ‘부’는 ‘속임과 배반의 결과이며 일시적이고 허무한 것에 불과하다(렘5:27, 시49:16).’ ‘귀(히, 웨학카보드)’는 ‘무겁다’라는 뜻으로 가볍거나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 ‘존귀히 여김 받는 존재’임을 뜻한다. ‘만유의 주재(히, 마솰)’는 ‘모든 것을 다스림’이란 뜻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에 따라 사안과 인물들이 크고 강하게도, 작고 연약하게도 될 수 있음을 고백한다.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찬양하나이다(13절)
‘감사하오며(히, 모딤)’의 원형인 히브리어 ‘야다’는 일차적으로 ‘인정하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본문에서처럼 히브리어 문법 상 ‘사역형(Hiphil)’으로 쓰였을 때 ‘감사하다, 찬양하다’ 또는 ‘고백하다, 자복하다(잠28:13)’로 읽힌다. 이러한 용법은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인간의 공적인 선포나 선언을 나타낼 때에만 사용된다(대하5:13).’ 즉, 다윗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는 내용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인정하고 고백하는 ‘신앙의 고백’인 것이다.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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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정하지 말라

오늘 묵상에서 중요한 단어 하나가 등장합니다. ‘barter’라는 영어 단어인데, ‘물물교환 하듯이 흥정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챔버스는 오늘날 우리에게 있는 가장 위험한 태도가 성령님과 흥정하려는 경향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성령님과 흥정할까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키시는 일을 수행하기 전에 증거를 원합니다. ‘왜 하나님은 자신을 보여주지 않으실까?’ 주님은 그렇게 하실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당신이 완전히 주께 내려놓지 않는 한, 당신 자신이 주님의 증거를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위의 문장을 읽으며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왜 성령님의 증거를 요구할까요? 챔버스가 “당신이 완전히 주께 내려놓지 않는 한”이라고 말하는데, 저에게는 이렇게 이해가 됩니다. 사실 주님의 일을 할까 말까를 고민하는 것 자체가 이미 우리 안에 믿음이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의심하지 않는다는 말이죠. 문제는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수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사기 6장에 사사 기드온이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기드온을 부르셨고 그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시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드온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다 수용할 믿음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증거를 요구하죠. 다른 곳은 다 마르고 양털만 젖게 해 달라고, 다른 곳은 다 젖고 양털만 마르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양털 시험’을 합니다. 그 증거를 통해 기드온은 하나님께 자신을 내려놓습니다.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할 때까지 하나님은 기드온을 사용하실 수 없었습니다.


오늘 묵상의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기는 하지만, 하나님 앞에 자신을 온전히 내려놓고 양도하지 않는 한 성령님께서 우리 삶에 확실하게 증거 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확실한 증거를 원하는데, 그 증거를 얻는 방법은 두 손 들고 주님께 온전히 나아가는 것입니다. 챔버스의 표현입니다.

“당신이 구속에 근거해 당신을 내려놓고 주제넘게 따지지 않는 즉시 하나님께서는 증거를 주십니다. 당신이 논리와 주장을 내려놓자마자 하나님께서는 주께서 이루신 일들을 증거하십니다.”


여기에 신앙의 신비가 있습니다.

우리는 증거를 보여주시면 믿고 따르겠다고 말하지만, 성령께서는 먼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은 아주 유명한 주님의 명령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온전히 주께 맡기고 주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지 알고 싶다면, 온전히 주님께 맡기고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시는지 알고 싶다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고경환 목사님이 쓴 [나를 응원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요약해서 들려드리는 이 이야기를 오늘 묵상과 연결해 보면 어떨까요?

어느 바닷가에 갈매기 한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갈매기는 부둣가에 버려진 썩은 물고기 한 마리를 입에 물고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수많은 갈매기들이 그 갈매기 뒤를 따라 갔습니다. 갈매기는 ‘썩은 물고기’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며 하늘 높이 날아오르다가 움켜쥐고 있던 썩은 물고기를 바다로 떨어뜨렸습니다. 그러자 수백 마리의 갈매기들이 일제히 그것을 좇아 바다 쪽으로 날아갔습니다.

그때 갈매기는 푸른 창공이 온통 자신의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움켜쥔 ‘썩은 물고기’를 포기하는 순간, 드넓고 푸른 하늘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작고 하찮은 것을 포기한 순간 큰 것이 눈에 들어온 것입니다.


자신의 것을 내려놓지 않으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볼 수 없습니다. 주께 온전히 내려놓는 자들에게 보이는 증거가 있습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무엇일까요?

“성령은 주님의 구속을 증거하십니다. 성령은 다른 그 어떤 것도 증거 하지 않으십니다.”


아주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꾸 우리의 이해와 상식, 그리고 논리를 증명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기도합니다. 하지만 성령님이 하시는 일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주님의 구속’을 증거 하실 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상식적인 결정을 내린 후 성령께서 증거해 주셨다고 착각하여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성령님이 우리의 이성과 상식을 증거하시는 분이라고 착각한다면 우리는 점점 더 어두운 혼란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예는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간절한 믿음을 가지고 금식을 선포하거나 작정 기도를 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그 기도가 자신의 주장을 이루거나 뒷받침 하는 증거를 얻을 때까지 지속된다면 혼란은 제거되지 않을 것입니다. 진실한 기도는 자신의 주장을 내려놓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하루의 기도를 통해 열흘의 생생한 사역과 쓰임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의 상식을 여전히 구하고 있다면, 성령님은 어떤 증거도 우리에게 보여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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