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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비천함과 심오함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

고전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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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우리는 비천함과 심오함을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맡은 일에 성실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 가장 하찮은 일상에서 그리스도인처럼 행동하는 것이 가장 심오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방법입니다.

묵상질문

당신이 하고 있는 일 중에 가장 귀한 일과 가장 하찮은 일이 무엇입니까?하나님께서도 동일하게 구별하실까요?


묵상 레시피

◆아모스 7:10-15 + 고린도전서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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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7:10-15)
10 때에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가 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에게 보내어 이르되 이스라엘 족속 중에 아모스가 왕을 모반하나니 그 모든 말을 이 땅이 견딜 수 없나이다
11 아모스가 말하기를 여로보암은 칼에 죽겠고 이스라엘은 반드시 사로잡혀 그 땅에서 떠나겠다 하나이다
12 아마샤가 또 아모스에게 이르되 선견자야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에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에서나 예언하고
13 다시는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 이는 왕의 성소요 나라의 궁궐임이니라
14 아모스가 아마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라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로서
15 양 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나니

(고린도전서 10:31)
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 선지자 아모스는 어떤 예언을 했습니까? (11절)
  •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는 선지자 아모스를 어떻게 대합니까? (10,12-13절)
  • 아모스는 누구이며, 어떻게 선지자로 부름 받았습니까? (14-15절)

아모스가 왕을 모반하나니(10절)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나뉘었을 때, 북 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은 벧엘과 단에 국가 중심 성소를 세웠다. 제의적 상징으로 금송아지를 각각 세웠고, 레위 가문이 아니라 일반 백성 중에서 제사장을 세웠다. 절기도 남 왕국과 다르게 정하고 여로보암 자신이 직접 분향제를 드리기도 했다(왕상12:26-33). 북이스라엘에서는 종교, 제의, 제사장 모두 왕을 위한 정치적 도구로 이용되었다.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도 관변 제사장이었고 왕과 지배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였다.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거기에서나 떡을 먹으며, 예언하고(12절)
이스라엘에서 예언자의 위치는 상당히 중요했다. 그러므로 아마샤도 아모스를 함부로 대하지는 않았다. 아마샤는 벧엘에서 아모스로 인해 소란이 일어나길 원치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언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두려워했기에 아모스가 그곳을 떠나기를 바랐다. ‘거기에서나 떡을 먹으며’라는 말은 ‘밥을 벌어 먹다’는 뜻이다. 이스라엘에서는 예언자나 제사장이 개인 혹은 국가의 필요에 의해 고용되고 생계를 유지했다. 아마샤는 아모스에게 유다로 가서, 그곳에서나 예언자 생활을 하라고 말한다.

선지자가 아니며,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로서(14절)
아모스는 자신이 돈 때문에 예언활동을 하는 것이 아님을 밝힌다. 아모스는 자신을 목자요 뽕나무 재배자로 겸손히 소개하고 있지만, 1:1절에 쓰인 ‘노케드’라는 단어로 보건대 ‘비교적 부유한 목장주나 농업 경영인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생계 때문에 예언자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 부름 받았다. 아모스는 마치 다윗이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에서’ 왕으로 부름 받았듯이(삼하7:8, 시78:70-72), ‘양 떼를 따를 때에’ 예언자로서 부름 받았다(15절).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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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함부로 판단하지 않기

[주님은 나의 최고봉] 묵상이 거의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이제 챔버스의 생각과 그의 고민이 무엇이었는지 더욱 선명해지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모든 사역자가 그렇듯이, 챔버스에게도 그런 고민이 있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위대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늘 위대한 일을 통해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을 꿈꿉니다. 하지만 이내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어떤 위대한 일도, 어떤 하찮은 일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단지 우리가 그렇게 구분하고 있을 뿐입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0장 31절 말씀은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교인들을 향한 사도 바울의 권면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챔버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 헌신한다는 뜻은 비천해지는 것을 거부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이 비천하지 않다는 인상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려는 것은 당신이 영적으로 교만하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당신 안에 다른 사람을 향한 경멸이 생기는 것을 주의하십시오.”


이 부분의 통찰이 아주 중요합니다. 비천한 것과 비천하지 않은 것을 구별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문제일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편견을 가지고 대하게 만듭니다.

마이클 호튼의 책 [오디너리]에 보면 양과 염소의 비유를 통해 주님의 관심이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5장에서 마지막 심판의 날에 양과 염소를 나누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심판의 날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보면 두 가지 사실이 두드러진다. 첫째, 양들이 행한 사역이다.(염소들은 그런 사역을 행하지 못했다.) 예수님은 바야흐로 시작될 박해를 염두에 두고서, 양들이 감옥에 있는 형제자매를 방문하고, 그들에게 물을 주고, 옷으로 그들을 입힐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기대해야 할 것은 온 우주를 진동시킬 만큼 거창한 기적이 아니다. 양들의 믿음은 평범한 친절을 통해 밝히 드러난다.


둘째, 염소들이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을 보고 의문을 품은 것이다. 지금도 세상은 기적이라면 너도나도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나 예수님은 염소들에게 “내게서 떠나가라”라고 말씀하셨다. 염소들은 작은 일을 무시하고 영적 야심만을 추구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양들을 칭찬하셨다. 양들은 “주님, 우리가 이렇게 행하지 않았습니까?”라고 자기를 자랑하지 않고, “주님, 저희가 언제 그렇게 했습니까?”라고 말한다. 양들은 오히려 언제 칭찬받을 만한 행동을 했는지 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비천함과 심오함을 구별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대신해 구별하려는 것은 명백한 영적 교만입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쉽게 잔소리를 하고 쉽게 남을 꾸짖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그러한 행동들이 하나님의 기준이 아니라 자신의 판단으로 인한 것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속에는 늘 그런 유혹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뭔가 중요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욕망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말구유에 누인 갓난아이로 이 땅에 오셨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2. 하찮은 것이 심오하다

우리 신앙의 문제는 하찮은 것과 심오한 것을 구별하려는 시도들입니다. 기독교 역사 가운데 이러한 시도들은 늘 있어왔습니다.

디모데후서 2장 20절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하찮다는 것은 약하거나 깊이가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삶에 아주 하찮게 보이는 일들을 허락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도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일들 (걷고, 먹고, 말하는 것들)을 하시면서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서 사셨다는 것입니다. 올바른 신앙의 자세는 이런 것입니다.

“하찮은 것들을 바르게 대하며 살아야 안전합니다. 표면적으로는 상식적인 방법으로 평범한 삶을 살지만 하나님께서는 하찮은 일들을 통해 심오한 것들을 더해 주십니다.”


찰스 스펄전 목사님의 책 [스펄전 신약설교노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이 지금 “매트 밑을 청소했기 때문에” 회심한 것이 틀림없다고 고백한 한 소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인디언 전사인 코바는 최근 “나는 매일 기도하고 양파를 캐냅니다”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회심을 입증했다. 인디언으로서는 그것보다 자신의 회심의 진실성을 보여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육체노동은 인디언 전사에게 결코 주업도 아니고 자랑거리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스펄전 목사님의 설교가 참으로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복음을 빛나게 하는 것은 결코 자랑하거나 내세울 만한 일이 아니라 주변의 아주 사소한 일들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찮은 일들을 무시하고 심오한 일만 찾는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가장 하찮은 우리의 평범한 일상에서 그리스도인처럼 행동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귀하게 여기시는 것은 일상에서 모든 사람과 모든 일을 귀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발털이개가 되어 사는 것을 귀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마땅히 찢겨진 빵과 부어지는 포도주가 되는 것을 귀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누구도 우리를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께 사용되는 것, 누군가를 위해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처럼 귀한 일은 없습니다. 누군가 나를 고귀하게 여겨주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시는 일에 쓰임 받는 것이 귀한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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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은
가장 귀한 일 -
현재 귀한일을 하고있진 않지만 그중 뽑으라면 개척교회 헌금으로 돕고있는것
도움을 청하러 오는분들을 돕는것
가장 비천한 일 -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는것 원망하고 묻고 또 묻고 있는 것
하나님께서 는 내가 손쉽게 하는것을 오히려 귀하게 여기신다
나의 불순종을 아파하고 계신다
그리고 결코 교만하지 않도록 내 마음을 다스리고 이끌어 주시는것
아버지 오늘 현서의 머리카락을 찾았어요 발견했다는 표현이 맞겠지요
그토록 찾던 머리카락을 세개나 발견했어요
현서의 부드럽고 반짝반짝하게윤이나던 기다린 머리카락을
우리아이 머리카락은 정말 예뻤어요
염색을 해도 그렇게 예쁘게 안나왔을 컬이진 예뻤던 머리카락
지나간 문득 보게된 사진에서 아이의 체육복바지를 손목과 패딩을 보고 곁에 있는것처럼 그냥 제 곁에 있는거처럼
눈물을 참고있었나봐요
김연식목사님의 식사초대에 눈물이나서 혼이났어요
우리딸을 기억하는 사랑하는 분을 만나서
울고싶었습니다 엉엉 울고 싶었어요
2021.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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