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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불평을 찬송의 시로 바꾸시는 분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마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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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우리에게 주시는 멍에를 기꺼이 질 각오가 되어 있을 때, 그리스도를 가장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 성도들에게 불평은 하나님의 능력을 무시하고 의도적으로 약해지려는 범죄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묵상질문

오늘 당신에게 주어진 멍에를 주님께 맡기고 또한 그것을 감사함으로 받을 수 있나요?


묵상 레시피

◆출애굽기 6:2-8 + 로마서 6: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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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6:2-8)
2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이니라
3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4 가나안 땅 곧 그들이 거류하는 땅을 그들에게 주기로 그들과 언약하였더니
5 이제 애굽 사람이 종으로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 소리를 내가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6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
7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8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하셨다 하라

(로마서 6:9-11)
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10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셨습니다.
  • 출애굽 구원을 베푸신 첫 번째 이유는 무엇입니까? (3-5절)
  • 두 번째 이유는 무엇입니까? (6-7절)
  • 세 번째 이유는 무엇입니까? (8절)
  • 출애굽 구원을 베푸신 궁극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 (7:16, 8:1, 8:20, 9:1, 9:13 동일하게 반복)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5절)
이스라엘은 이집트에 거주하는 동안 하나님을 많이 ‘잊었다’. 그들은 이집트의 신들을 섬겼다(수24:14).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조상들과의 언약을 ‘기억하셨다’. 번지수를 잃은 그들의 ‘신음’과 탄식을 ‘귀 기울여’ 들으셨다.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출애굽은 단지 ‘해방’이라는 소극적 의미의 구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새 창조와 원복의 회복, 하나님 나라라는 적극적 구원을 지향한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사람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으로 우리를 부르신다.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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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멍에를 주님께

오늘 묵상 글 처음에서 챔버스는 히브리서 12장 6절을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라는 말씀인데, 이 구절은 이전에 챔버스가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며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징계하실 이유가 없다는 것이죠. 어제부터 나누고 있는 묵상 글의 주제인 ‘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무거운 짐이 지어질 때 불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불평은 얼마나 하찮은 것입니까! 주님은 우리가 주님과 교통할 수 있는 곳으로 우리를 인도하기 시작하십니다.”


무거운 짐이 찾아올 때, 우리는 종종 신음하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그 순간 주님은 우리에게 ‘그 멍에의 끝을 잡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죠. “나의 멍에는 가벼우니 나와 함께 이 멍에를 메자”고 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멍에를 같이 메는 순간 주님과 일치된 ‘관계’가 형성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감사하게 됩니다. 후안 카를로스 오르티즈 목사님도 [제자입니까]라는 책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이 멍에를 메야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구원’이란 무거운 짐과 문제로부터 해방되는 것만 의미하지는 않는다. 물론 구원받은 우리는 무거운 짐과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진다. 하지만 이것을 대신하는 멍에, 즉 예수님의 멍에를 져야 한다. 그분은 당신의 나라를 위해 우리를 쓰시려고 우리의 옛 짐들을 모두 벗겨 주신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문제를 안게 하시려고 우리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시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왕을 위해서 산다.


그리스도인에게 멍에는 없어지거나 회피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새로운 멍에’를 메고 주님과의 깊은 교제 속으로 들어가는 것 아닐까요? 챔버스는 좀 더 나아가 이사야 40장 29절 말씀을 인용합니다. “…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멍에를 주님께 맡기거나 주님의 손을 잡는 것이 끝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힘을 더하십니다. 그 때 하나님은 우리를 건져주실 뿐 아니라 우리 삶의 불평을 찬송으로 바꾸십니다. 챔버스는 말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님의 멍에를 지고 그분께 배우는 것입니다.”


2. 진정한 성도의 기쁨

두 번째 주제에서 챔버스는 느헤미야 8장 10절“…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라는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챔버스는 이어서 “성도들이 어디에서 기쁨을 얻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성도란 어떤 사람들인가요? 혹시 멍에도 없이 편안한 삶과 기쁨을 누리는 사람이 성도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가리고 있는 베일을 걷어 올리십시오. 챔버스가 아주 좋은 예를 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평안과 빛과 기쁨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멍에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워주시는 멍에는 포도송이를 짓이기게 되며 그 결과로 포도주가 나옵니다.”

‘성도’를 바라보는 잘못된 오해는 이런 것입니다. 짓이겨진 포도는 보지 못하고 그 결과물인 ‘포도주’만 보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에게는 이런 믿음이 있습니다. 이 세상뿐 아니라 지옥의 그 어떤 세력도 성도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절대로 정복될 수 없는 내적인 힘인 것입니다. 존 스토트는 [그리스도처럼]이라는 책에서 이 부분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예수님에게 와서 쉬기만 하고 예수님의 멍에는 메지 않으려고 하는 그리스도인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두 가지를 제안하고 계시지만, 각각의 초대에 응할 때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은 정확히 똑같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다시 말해서 우리가 예수님에게로 와서 짐을 내려놓을 때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멍에를 멜 때에도 우리에게 쉼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오늘 묵상을 마무리하고 있는 챔버스의 마지막 문장이 아주 멋집니다.

“만일 당신 속에 불평이 있다면, 가차없이 발로 차버리십시오. 불평은 하나님의 능력을 무시하고 의도적으로 약해지는 적극적인 범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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