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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믿음의 인내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계 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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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믿음은 단순히 견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며 끝까지 인내하는 것입니다.
  • 영생의 진정한 의미는 어떤 일을 당해도 요동하지 않고 견디는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묵상질문

당신은 지금 무엇을 기다리고 있습니까?단순히 견디지 않고 ‘인내’하고 있습니까?


묵상 레시피

◆야고보서 1:2-4 + 요한계시록 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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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1:2-4)
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요한계시록 3:10)
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 본문은 시험을 당할 때 어떻게 하라고 권면합니까? (2절)
  • 시험으로 인해 우리가 경험하는 일들은 무엇입니까? (3절)
  • 결국 시험과 시련과 인내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4절)

여러 가지 시험(2절)
‘시험(헬, 페이라스모스)’은 주로 예기치 않게 외부에서 닥치는 시험을 말한다. 이는 우연히 만나는 것이 아니라 함정에 빠지는 것, 불의로 인해 당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삶에서 당하는 경제적, 사회적 불이익 뿐 아니라, 믿음으로 인해 받게 되는 핍박, 압제, 박해 등에 해당된다.

믿음의 시련(3절)
‘시련(헬, 도키미온)’은 불순물을 제거하는 것을 가리킨다. ‘연단’의 성격이 강하다. 이로써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더욱 깊이 알게 되며 신뢰하게 된다. 시험(페이라스모스)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은 아니지만 믿음의 시련(도키미온)을 통해 인내(헬, 호포모네)를 만들어 낸다. 믿음이 순수해지고 견고해지며, 의심과 미혹으로부터 단련된다.

인내(3-4절)
인내(헬, 후포모네)는 수동적으로 참는 것뿐만 아니라 시험을 견뎌내고 도전하는 능동적 저항까지를 포함한다. 인내는 ‘만들어’진다. 여기에 쓰인 헬라어(카트에르가제타이)는 단번에 제조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과정을 통해 제조한 것을 가리킨다.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4절)
온전함(헬, 텔레이오스)은 시간적 지평에서의 완성, 성숙을 뜻한다. 구비한다(헬, 홀로클레로스)는 의미는 도덕적 차원에서 흠이 없거나 결함이 없음을 의미한다. 야고보서는 종말론적 완성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즉, 온전함을 이루기 위해 인내하여 종말의 때에 온전하게 되는 것이 목표이다. 인내도, 온전함도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반복되는 시험, 시련, 인내의 를 통해 성숙되고 온전함을 이루어가게 된다.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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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내’는 견디는 것이 아니다!

오늘 묵상의 첫 문장이 이렇게 시작합니다.

“인내란 지구력보다 더 강한 것입니다.”


챔버스의 묵상에는 ‘인내’(patience)라는 단어가 여러 번 등장합니다. 이전 묵상에서 보았던 ‘불굴의 용기’와 가장 잘 맞는 의미죠. 5월 2일 묵상에서도 ‘인내’는 모든 공격을 견뎌내는 어마어마하게 강한 바위를 연상시킨다고 했습니다. 사실 ‘인내’(patience)와 ‘지구력’(endurance)이라는  영어 단어의 구분이 쉽지 않습니다. 개인적인 해석을 덧붙이자면, 지구력은 단순히 참고 견디는 것이고, 인내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참아 내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에서 점검해야 할 부분이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가 그저 참고 있는지, 아니면 이유와 목적을 분명히 알고 참는지 말입니다. 챔버스는 오늘 묵상에서 이런 비유를 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볼 수 없는 목표를 향해 조준하고 활을 당기십니다. 이때 성도들은 말합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으시고 과녁이 눈에 들어올 때까지 활을 당기고 쏘십니다.”


이 비유는 인내와 견디는 것의 차이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내는 선하신 주님을 믿고 신뢰하기 때문에 주님 손에 나를 맡기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단순히 참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속으로 들어갑니다. 오늘 묵상 글에서 욥기 13장 15절을 다음과 같이 풀어 싣고 있습니다.

“그분이 나를 죽이신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주를 기다릴 것입니다.”

이 본문에 대해 [오스왈드 챔버스의 욥기]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욥은 자신에게 최악의 일들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느꼈고 자신 역시 진실했다. 그는 자신이 당하는 고난에 대해 “지금 나는 뭔가를 잘못해서 벌을 받고 있어”라거나 “지금 나는 더 완벽해지려고 고난을 받고 있는 거야”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 욥의 친구들은 그를 가리켜 위선자라고 비난했고, 심지어 무신론자라는 무언의 암시까지 주었지만, 욥은 바로 이러한 고통의 순간에 구약 전체에 있어서 믿음에 대한 가장 고상한 발언을 한다. “주님이 저를 죽이시더라도 저는 여전히 주님을 신뢰할 것입니다.”


“자네들이 하나님에 대해 잘못된 말을 할지라도, 나 역시 그분에 대해 다 설명할 수 없을지라도, 심지어 그분이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여전히 그분이 진실하신 분임을 신뢰할 것이라네. 그리고 그분을 기다리면서 내 진실함을 지켜나갈 걸세. 내가 확신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과 나는 어떻게 해서든 한마음이 될 거라는 사실일세.”


2. 믿음은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이다!

믿음이 무엇인가요? 믿음은 연약한 자의 감성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을 확고하게 붙들고 있기 때문에, 담대하게 확신을 가지고 서는 것이 믿음입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알고 있다는 한 가지만 분명합니다. 믿음이 깨지는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붙들지 못하여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의탁하지 못할 때 찾아옵니다. 챔버스의 말이 흥미롭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거셨습니다. 이제 주님은 우리가 그분만을 믿는 믿음 안에서 우리의 인생을 주께 걸기를 원하십니다.”


문제는 우리 인생에서 믿음이 역사하지 않는 부분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우리에게 모범이 됩니다. 주님은 전 영역에서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것을 거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에는 전적인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의 고통을 참고 인내하셨던 이유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가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챔버스는 오늘 묵상에서 요한복음 17장 3절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영생’은 참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에 어떤 일을 당해도 요동하지 않고 견디는 것입니다. 흥미롭습니다. 우리가 영생을 가졌다는 것은 인내한다는 말입니다. 여러 자료를 읽다가 또 하나 재미있는 표현을 발견했습니다. 우리가 이런 관점을 취한다면 우리 인생에서 위대한 ‘로맨스’를 경험하리라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우리가 끝까지 인내한다면 언제나 ‘놀라운 일’을 볼 수 있는 영광스러운 기회를 누릴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이런 일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은 인내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문득 인내가 마치 비를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스라엘 땅은 석회질이 많아 비가 오지 않으면 시멘트처럼 딱딱해집니다. 우기가 되어 이른 비가 내려야 딱딱한 땅이 부드러워져 농부들이 밭을 기경(起耕)해 씨를 뿌릴 수 있습니다. 농부가 아무리 수고해도 늦은 비가 오지 않으면 곡식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그래서 농부는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며 인내를 배웁니다. 우리가 열심히 노력했어도 열매 맺는 일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아는 것, 내 힘으로는 불가능함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해결하시기를 믿음으로 기다리는 것이 참된 인내입니다.


믿음으로 인내할 때 우리의 인생에 기대가 생길 것입니다. 주님께 칭찬받는 삶이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 요한계시록 3장 10절을 보십시오. 주님께서 인내했던 빌라델비아 교회를 칭찬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 칭찬받는 교회는 끝까지 인내하고 주님을 붙드는 교회입니다. 끝까지 인내할 때, 하나님과의 로맨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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