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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능력 있는 중보 기도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엡 6:18

(PrayOn 기간에는 5시 30분에 오픈됩니다)

video poster

한 줄 노트

  •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으면 온전한 중보 기도를 할 수 없습니다.
  • 누군가를 향한 연민으로 시작한 중보 기도가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묵상질문

누군가를 위해 중보 기도를 하면서 스스로 기도에 대한 답을 갖고 있지는 않았나요?


묵상 레시피

◆요한복음 11:1-44절 + 에베소서 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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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1:1-44절)
1 어떤 병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2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버니더라
3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4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5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6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7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8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10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11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12 제자들이 이르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13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그들은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생각하는지라
14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
16 디두모라고도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17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18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19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20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22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24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7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28 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자매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29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30 예수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마르다가 맞이했던 곳에 그대로 계시더라
31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
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33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34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36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
37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38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에베소서 6:18)
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 마리아, 마르다, 나사로 남매에게 어떤 일이 생겼습니까? (1-3절)
  • 예수님께서 도착하셨을 때 나사로의 상태는 어떠했습니까? (6,21절)
  • 마리아와 마르다, 유대인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21,32,37절)
  • 예수님은 이 사건에 대해 어떤 말씀을 하셨습니까? (4절)
  • 예수님은 하나님께 어떤 기도를 올리십니까? (41-42절)
  • 나사로는 어떤 상태가 되었습니까? (44절)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4절)
나사로 이야기의 중심은 질병과 치유 혹은 죽음과 소생이 아니다. 이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시는 일이 핵심이다. 마리아, 마르다, 유대인들의 눈과 평가는 질병과 죽음, 시체와 무덤에 머물러 있었다.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본격적으로 준비하신다(11:45-57).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21, 32절)
마리아와 마르다는 예수님의 치유 권능을 믿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 구하시면 다 성사될 것도 믿었다. 그러나 그들은 알고 이해하는 신앙의 범주 내에 머물러 있었다.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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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을 질책하다니

지난 3월 30일부터 4월 1일까지 묵상을 통해 우리는 ‘중보 기도의 유익’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인간에게 가능한 일 중 유일하게 ‘함정’이 없는 것이 중보 기도라고 했던 것을 기억하시나요?디트리히 본회퍼는 “그리스도가 우리 사이에 서 계신다. 주님을 통해서 이웃에게 다가서기만 하면 된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중보 기도는 하나님과 나 사이에서, 누군가의 문제를 들고 나갈 때 주님이 그 사람에게 역사하신다는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필립 얀시가 [기도]라는 책에 중보 기도에 대한 좋은 표현을 썼습니다. 중보기도는 잔잔한 호수에 이는 파문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으로 점점 넒은 동심원을 그리며 내게서 가장 가까운 이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들에게까지 멀리멀리 퍼져 나간다.


오늘 묵상을 통해 ‘중보 기도의 장애물’에 대해 생각해 볼 것입니다. 중보 기도를 하다보면, 기도의 대상자들이 우리 생각보다 더 많은 대가를 치르고 있음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우리에게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들고, 그 마음으로 인해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간섭하기 시작합니다. 이때 우리는 “그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과 일치되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에게 연민을 느낍니다.”


여기서 우리가 ‘연민’을 느끼는 것이 왜 문제일까요? 이 ‘연민’은 하나님이 일하는 방식을 신뢰하지 못해 일어난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중보 기도를 하는 상황을 이렇게 그려볼까요?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방법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의 상식과 예측보다 심하다는 생각과 함께 그 사람을 향해 ‘연민’을 느낍니다. 우리가 기도는 하고 있지만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이 우리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죠. 여기에 ‘기도의 장애물’이 등장합니다. 그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과 우리의 관심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과의 살아 있는 관계’는 의식하지 않고 오로지 동정심과 배려만 가지고 상황을 바라봅니다. 챔버스는 이러한 우리의 생각과 행위가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질책하는 행위”가 된다고 말합니다.


중보 기도를 하면서도 그 사람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을 신뢰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감히 우리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꾸짖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모릅니다. 올바른 중보 기도는 하나님과 그분이 하시는 일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모든 일을 맡기는 것입니다. 중보 기도는 단지 중보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결과를 좌지우지 하는 것이 아닙니다.


2. 죄보다 무서운 동정심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가장 큰 장애물은 하나님의 계획보다 우리의 동정심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나의 동정심과 편견 때문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중보 기도는 잘못된 것이 아닌데, 중보 기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 된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챔버스는 말합니다.

“하나님과의 일치가 중보 기도의 열쇠입니다. 주님과 일치되기를 거절하는 이유는 죄 때문이라기보다 다른 사람들을 향한 동정심 때문입니다.”


아주 중요한 통찰입니다. ‘동정심’을 갖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하는 동정심은 죄보다도 무섭습니다. ‘죄’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인간들의 문제입니다. 반면 ‘동정심’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그 일이 발생하도록 허락하지 않을 거예요.” 나의 얄팍한 동정심이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막으려 한다면, 어떻게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가 온전할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중보 기도를 할 때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온전한 중보 기도는 ‘자기연민’으로 인한 개인적 성향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것입니다. 중보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 자신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김양재 목사님의 책 [100프로 응답받는 기도]에 보면 오늘 우리가 나누고 있는 기도에 대하여 조금 더 명확하게 설명하는 글들이 있습니다.

* 제대로 된 기도를 하려면 하나님의 뜻과 생각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를 할 수 있다. 내 간구대로 상황이 나아지거나 무언가 이루어지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된다면 그것이 곧 기도응답이다.


* 내 자식, 내 재물, 내 복 때문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로 인한 기쁨 때문에 드리는 것이 진정한 감사와 찬양의 기도다. 뭔가 응답을 받아서 감사하고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 없고 의지할 데 없어도 오히려 그로 인해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어서 감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감사와 찬양의 기도다.


* 끈질기게 기도할 수 있는 원천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요,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교제다.

 

묵상을 마무리하며 함께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별의 영’을 주신 것은 남의 결점이 보일 때 비판이 아닌 중보 기도를 하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장애물들을 제거하고 온전한 중보 기도를 드릴 때, 비로소 우리는 그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과 철저하게 일치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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