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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내가 사랑하고 헌신할 분, 예수님

이는 그들이 주의 이름을 위해 나가서

요삼 1:7
video poster

한 줄 노트

  • 하나님은 우리 일의 도구가 아닙니다. 선교사는 하나님의 일에 도구로 쓰임 받는 사람입니다.

묵상질문

당신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은 도구라는 확신이 있습니까?
아직도 나의 일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까?


묵상 레시피

◆사도행전 4:1-14 + 요한삼서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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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4:1-14)
1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2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3 그들을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4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5 이튿날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6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여
7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8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9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13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14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

(요한삼서 1:7)
7 이는 그들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 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가둔 이유는 무엇입니까? (1-3절)
  • 그들은 누구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하고 이적을 행했습니까? (7-10절)
  • 그들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선포하고 있습니까? (10-12절)
  • 그들의 선포에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4,13-14절)
  • 그들이 이렇게 선포할 수 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8절)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2절)
부활은 권력자들에게 매우 불편한 주제였다. 부활은 ‘살아계신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단번에 바로잡으실 것’이며, ‘모든 것을 회복하시고 마침내 이 세상을 세우실 것’이라는 선언이다. 대제사장과 유대 귀족들이 포함된 사두개인들은 ‘부활 사상’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들은 성전 권력과 경제, 사회, 정치적으로 영향을 행사하는 자리에 있었다. 민중의 지지를 받는다는 면에서 또 다른 권력을 지닌 바리새인들은 부활을 받아들였다. 그들은 ‘정부’에 대해 좀 더 비판적이었으며 문제를 제기하는 경향이 더 짙었다. 사도들이 부활과 ‘새 성전’이신 예수를 선포한다는 것은 성전 권력을 쥔 사두개인과 제사장들에게 매우 위협적인 일이었다.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베드로는 ‘성전 시편’이라 불리는 시편118편을 인용한다(11절). ‘새 성전’은 현재의 성전을 쓸모없게 만든다. 권력에 예민했던 성전 지도자들에게 118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8-9).’

성령이 충만하여(8절),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13절)
지도자들이 사도들을 신문했을 때 베드로와 요한은 기대 이상의 답변을 해냈다. ‘학문 없는 범인’들의 입에서 랍비들에게 교육 받은 이들이나 기억해 낼만한 시편 118편이 인용되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과 밤낮 동행하고 동거하며 성경을 듣고 해석하고 메시지를 끌어내는 방식을 보고 익혔다. 그들의 선생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이었다. 이제 그들의 입술은 ‘성령’께 온전히 붙들린바 되었다(8절.마10:19-20). 더불어 ‘병 나은 사람’이라는 구체적인 증거는 지도자들의 말문을 막았다(14절). 부활하신 예수,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예수. 하나님의 나라와 부활의 능력이 이미 시작되었다.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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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한다는 의미

계속해서 제목에 ‘key’라는 단어가 쓰인 시리즈가 이어집니다. 이전 묵상에서 선교사에게 있어 핵심적인 삶과 메시지, 기도의 필요성에 대하여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선교사가 헌신해야 할 대상에 대한 묵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마음이 무엇인지 전하는 도구가 되어야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전하기 위해 하나님을 도구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챔버스는 다음 문장에서 이 부분을 정확하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주님의 관심에 당신을 맞추어야지, 다른 사람에 대한 당신의 관심에 주님을 맞추면 안 됩니다.”


요한복음 21장에서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 명령하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님의 양’을 먹이라고 맡겨주셨습니다. 우리의 관심으로 우리가 원하는 양을 만드는 것은 주님의 명령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을 향해 헌신하고 충성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충성은 내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부으신 성령으로 인해 구속의 초자연적인 역사가 내 안에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참된 헌신은 나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부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나오는 것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바로 ‘그 사랑’이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기독교의 진리]에 보면 이 부분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당신이 유용한 사람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당신 자신의 것이 아닌 주님의 것임을 항상 기억하십시오. 오직 주께만 충성하십시오. 예수님의 부활 생명을 온전히 의지하면 하나님의 목적과 완전히 접목되는 곳에 이르게 됩니다. 이때 모든 의심과 질문은 사라지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살아가게 됩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종종 성령의 역사를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어떤 능력, 즉 ‘안개’와 같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님께 충성하고 헌신하는 것은 그 성령님의 역사가 우리 안에 살아 있기 때문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묵상의 주제입니다. 선교사가 헌신하는데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무엇일까요?

“선교 헌신의 핵심은 이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 그 어느 것에도 마음을 두지 않고 오직 주님께만 마음을 두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마음을 두면 주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붙들어주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능력이 우리의 일상가운데 역사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주님께 연결되어 있다면 다른 외부적인 것들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역설적이게도 만일 우리가 세상에 대한 애착을 갖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애를 쓰고 있다면, 그것은 지금 온전히 주님께 마음을 드리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오늘 묵상 중에 떠오른 한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은 잘 알고 있지만, 이 놀라운 회개와 부흥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하디 선교사는 잘 알지 못합니다. 하디 선교사는 의료 선교사로 열심히 한국에서 선교 활동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그의 열심은 자신의 기준으로 한 열심이었고, 그의 헌신적인 노력이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원산에서 집회를 인도할 때였습니다. 하디 선교사는 성령의 강권하심에 따라 그의 마음을 온전히 주님 앞에 두기 시작했고, 그 결과 그는 자신의 오만과 교만으로 사역했던 과거를 회개했습니다. 이덕주 교수가 당시의 하디의 회개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내게 임하시어 첫 번째로 명하신 것은 내가 선교사 생활의 대부분 시간을 할애하였던 이곳 사람들 앞에서 내가 실패하였다는 것과 그 실패의 원인이 무엇인지 밝히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괴롭고 창피한 일이었습니다만 ‘하나님께서 오늘날 보다 많은 사람들을 구하여 내시려고 이 일을 선하게 여기시어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지난 수 년 동안 나는 한국인들이 죄를 깨닫고 회개한 후 믿음의 열매를 맺게 되기를 갈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일해 오는 동안 단순하면서도 분명하고 오래 지속되는 그런 회개를 본 적이 없었습니다. 내가 아는 대부분 사람들은 이런 것을 지식수준에서 받아들일 뿐, 이를 실제적이고 생생한 체험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람은 아주 적었습니다.”


선교사가 토착교인들 앞에서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공개적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하디의 표현대로 “괴롭고 창피한”(painful and humiliating) 일이었다. 그러나 하디는 강력한 ‘성령의 지시’에 따라 자기 잘못을 고백하였다. 그리고 이런 진솔한 회개가 토착교인들 사이에서도 일어나기를 기대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 2006년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세미나 ‘한국교회와 회개운동’ 발표자료 中


선교사의 진정한 헌신과 충성은 온 마음이 주님께 집중되어 인격적으로 열려야만 가능합니다.

챔버스의 묵상에는 ‘인격적’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는 헌신은 일방적이거나 강압적이지 않으시다는 말입니다. 인격적이라는 말은 ‘동등한 관계’에서 복종하는 것, 즉 ‘순종’을 의미합니다. 오늘 묵상의 마지막 문장이 참 좋습니다.

“주께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보내시는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성령의 역사에 의해 주님께 온전히 헌신된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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