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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그리스도인의 관심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고후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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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이미 승리 가운데 있음을 알면서 사는 것이 마땅한 그리스도인의 가치관입니다.

묵상질문

세상을 바라보는 당신의 관점은 무엇입니까? 승리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습니까?


묵상 레시피

◆고린도후서 2: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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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2:14-17)
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5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16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17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 바울은 어떤 이유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까? (14절)
  • 바울은 자신을 무엇으로 표현하고 있습니까? (15절)
  • 이는 사람들에게 각각 무엇으로 작용합니까? (16절)
  • 바울은 어떤 태도로 복음 사역에 임했습니까? (17절)

이기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14절)
‘이기게 하신다(헬, 드리암뷰온티)’는 승리를 가리키는 영어 triumph의 라틴어 어원 triumphus와 동족어이다. 이는 로마 황제나 장군들이 포로들을 줄 세워 동반하고 군중들에게 보이는 개선 행진을 떠올리게 한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 모든 복음 사역의 현장에서 승리의 행진을 계속해 왔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냄새(헬, 오스멘)’는 제물을 태울 때 나는 향을 뜻하며, ‘나타낸다(헬, 파네룬티)’는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노출되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 개선 행진 때는 향을 피워 길가에 냄새를 냈으며 신전에 이르러 희생 제물을 드릴 때도 역시 향을 피웠다.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선포할 때마다 곳곳에 향이 퍼져나간다고 표현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15절)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말한다. ‘하나님 앞에서’라는 표현은 바울이 스스로를 ‘번제물’로 인식함을 뜻한다. ‘향기(헬, 유오디아)’는 구약 희생제사에서 주로 사용되는 표현이다(창8:21, 출29:18, 레1:9, 민15:3). 사도들은 고난과 순교를 마다치 않고 그들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산 제물로 바쳤다.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16절)
바울이 풍기는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는 누군가에게는 죽음으로, 누군가에게는 생명으로 다가간다. 개선 행진에서 풍기는 향내가 한 편에는 승리요 생명의 냄새지만, 패전한 포로들에게는 절망과 죽음의 냄새다. 복음을 거부하고 ‘예수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들 자신도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복음을 통해 ‘부활한 예수, 살아 계신 예수를 고백하며 영접하는 자들에게는 예수님이 생명의 원천이 될 것이다.’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16절)
바울은 계속하여 승리를 누리며 산제물의 향내를 내는 일이 인간으로 불가능한 일임을 고백한다. 고린도의 적대자들은 영적인 교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이 아니고는 감당할 수 없는 자신의 연약함을 강조한다.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17절)
바울 당시에는 자격이 없음에도 활동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17절)’, 거짓 사도들이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헬, 카펠류온테스)’ 만들었다. 이는 본래 ‘행상인’을 뜻하는데 겉은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안 보이는 면에 불량품을 끼워 넣는 이들을 암시하는 단어였다. 이들은 받는 자의 유익을 생각지 않고 자신의 것을 과대 포장하여 ‘팔아먹으려’ 돌아다녔다. 이 표현은 물 섞은 포도주를 가리킬 때도 사용되었다. 바울은 ‘순전함(헬, 에일리크리네이아스)’으로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한다고 고백한다. 이는 ‘태양의 빛’과 ‘판단하다’라는 단어의 합성어로 ‘태양 빛에 비추어 보아도 능히 시험을 통과할 만한 상태’를 나타낸다.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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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세계관

오늘 묵상의 원문 제목은 하나의 단어입니다. “The viewpoint.” “그리스도인의 관심”으로 해석했는데, “하나님의 관점”으로 대치해 묵상하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관점’은 다른 말로 ‘세계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계관은 우리가 가진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관점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고린도후서 2장 14절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사도 바울의 이 고백은 하나님의 관점으로 자신을 보게 되었을 때 한 말입니다. 사실 챔버스의 다음 묵상은 얼핏 보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 안에서 이미 완전한 승리를 얻었기에 승리를 얻는 방법을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승리자’(예수님)께서 우리를 온전하게 사로잡으셨기 때문에 언제나 주님의 승리 외에 다른 관심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주를 통해 승리자 이상의 존재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교회에서 ‘승리하는 비결’들을 많이 배웠습니다. 그런데 챔버스는 이것이 오히려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방법을 배우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미 얻은 승리를 선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 승리를 쟁취하고 난 후, 그는 이 성취를 선포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톰 라이트의 [바울 평전]에 보면 사도 바울의 이러한 면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거듭거듭 그 기도로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그는 그 호흡의 박자에 맞춰 그 기도로 기도한다. 그는 그의 가장 깊숙한 내면의 자아 속에 자리하신 영의 호흡을 따라 그 기도로 기도한다. 그는 자신의 피스티스, 자신의 충성, 자신의 사랑을 다시 한 번 선포한다. 한 분 하나님, 한 주를 선포한다. ‘한’이라는 말을 힘주어 강조한다. 그가 평생에 걸쳐 한 일은 하나님나라 그리고 주이신 예수를 누구에게나 드러내 놓고 거침없이 증언하는 것이었다. 그는 처형자가 그 칼을 뽑은 지금도 기도하며 그 일을 한다. 그는 이 한 분 하나님을 그 마음과 생각과 힘을 다해 사랑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목숨까지 바쳐 사랑한다.


사도 바울의 글을 보면 언제나 기쁨과 감격이 묻어납니다. 그가 어떤 상황에서도 승리를 선포하는 기쁨을 누리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선포한 것은 항상 우리를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오늘 묵상의 첫 문장이 참 멋집니다.

“하나님의 관점은 사역자가 최선을 다해 최상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최상’이어야 합니다.”

“The viewpoint of a worker for God must not be as near the highest as he can get, it must be the highest.”


이 문장의 의미가 명확하게 이해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번역할 때 본래 의미가 많이 희석되어 버렸다는 느낌이 드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가져야 하는 관점, 즉 세계관이 무엇입니까?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에서 ‘거의’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자는 ‘최상’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최상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역자들이 유지해야하는 관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승리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한 행군에 사로잡힌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전시장에 진열된 전시품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알리기 위한 사명에 나의 삶이 완전히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 이곳에 있습니다.”


우리의 관심은 오로지 승리를 선포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스스로 주님을 위해 외로이 싸우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 마지막 요새를 지키고 있다고도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이미 승리자의 반열에 있으며, 이미 승리 가운데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 삶 한가운데서 역사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맥스 루케이도의 책 [부활의 주와 함께 살라]에 나오는 글로 오늘 묵상을 마무리 합니다.

우리의 승리가 무엇인지, 무엇으로부터 승리했는지, 승리에 사로잡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보았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만났다. 그들의 죄가 그들의 구원자와 충돌했고, 구원자가 승리하셨다! 사도들의 가슴에 불을 지핀 것은 그들을 지옥으로 보내셨어야 할 분이 그들을 대신해서 죽으셨으며, 여기에 대해 말씀하시고자 다시 오셨다는 확신이었다. 그 후 몇 십 년 동안 그들에게는 많은 일이 일어난다. 수많은 밤을 한데에서 자고, 굶주림에 속이 쓰리고, 뼛속까지 비에 젖고, 돌에 맞아 몸이 으스러질 지경이 된다. 또한 난파를 당하고, 채찍질을 당하고, 순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기억 속에는 그들로 하여금 결코 뒤돌아보지 않게 하는 장면이 있었다. 바로 배반을 당하신 분이 배반한 자들을 찾아오신 장면이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그들을 질책하려 하심이 아니라 사람들 가운데로 보내려 하심이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그분을 잊었다고 꾸짖으려 하심이 아니라 그분을 기억하라고 명하려 하심이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과 죄인들이 용서받은 것을 기억하라.


참 좋은 글입니다. 우리기 기억해야 하는 그리스도의 모습은 무엇인가요? 그분은 승리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은 승리하는 삶의 비결입니다. 우리가 선포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분이 하신 일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알리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최고의 존재로 다가오셨고, 최상의 것을 가르쳐 주셨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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