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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구하고 집중하십시오!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눅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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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한 번의 신앙 체험 위에 자신의 믿음을 세우면 자만해지기 쉽습니다. 이런 영적 교만에는 하나님을 대적할 위험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 문을 두드릴 때 보이는 더러운 손이야 말로,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어 하나님을 간절히 구하게 하는 아름다운 손입니다.

묵상질문

오늘 당신이 문을 두드리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하나님의 귀에 들리도록 처절하게 부르짖어야 하는 기도의 제목은 무엇입니까?


묵상 레시피

◆마태복음 20:29-34 + 누가복음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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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0:29-34)
29 그들이 여리고에서 떠나 갈 때에 큰 무리가 예수를 따르더라
30 맹인 두 사람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31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
32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들을 불러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3 이르되 주여 우리의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34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그들이 예수를 따르니라

(누가복음 11:9)
9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 많은 사람들 가운데 예수님을 크게 부른 이들은 누구입니까? (30절 상반절)
  • 그들이 거듭, 간절히 소리 질러 외친 말은 무엇입니까? (30절 하반절)
  • 사람들의 반응은 무엇이었습니까? (31절)
  • 예수님의 반응은 무엇이었습니까? (32절)

길 가에 앉았다가(30절)
예수님과 제자들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었다. 유월절을 앞둔 시점이라 순례 행렬로 북적였지만, 두 맹인은 그 가운데 낄 수 없는 소외된 자들이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30절)
이 문장은 보통 구걸할 때 사용하던 상투어였다. 그러나 예수님을 향한 두 사람의 부르짖음에는 더 많은 뜻이 담겼다. 비참한 인간 상황에 대한 처절한 울부짖음과 하나님의 자비를 갈구하는 간절함이다. 하나님 본성에 대한 호소다. 이 구문은 하나님의 자비를 비는 기도문으로서 예배와 영성기도에 사용된다.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31절)
무리들은 예수님이 왕으로 입성하여 더 큰일을 하실 분이라 여겼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찮은 둘에게 낭비할 시간이 없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의 길을 막는 그들을 꾸짖는다. 그러나 예수님은 걸음을 멈추고, 경청하고, 응답한다. 두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하듯 예수님께 푼돈을 구걸하지 않았다. 그들은 예수님이 ‘근본적인 문제’를 고칠 수 있는 분임을 믿었다. 구원의 희망을 발견한 이들은 온 맘을 다해 부르짖었으며 꾸중에도 굴하지 않고 더욱 소리를 높인다.

저희가 예수를 따르니라(34절)
‘따른다’는 표현은 단순히 뒤따라간다는 의미가 아니라 제자로 좇는 일을 가리킨다.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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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적극적으로 찾기

오늘 묵상의 원문 제목은 어제와 동일합니다. ‘그 다음으로 해야 할 최선은 무엇입니까?’ 어제 묵상 말미에 우리에게 영적 분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영적 궁핍’으로 구해야지, ‘욕심’으로 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3절 말씀을 보세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이 말은 하나님의 뜻 대신 우리의 만족을 구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욕망으로 구하는 것은 단지 자기 자신을 실현하려고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실현하려는 욕망의 기도가 많으면 많을수록 실제로는 하나님을 덜 구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는 기도를 어떻게 진정한 기도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은 어제 묵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어제는 영적으로 고통 혹은 ‘갈급함’을 느낄 때가 되서야 우리가 하나님께 구한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이런 기도는 조금은 수동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오늘 묵상에서는 오로지 마음을 다해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찾고 구하라고 권면합니다.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단순하게 궁핍한 상태를 기다리지 말고, 온 맘을 다해 하나님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 중에 하나는 ‘신앙 체험’에 만족하는 것입니다. 체험에 만족해서 하나님께 더 원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영적 안일함에 빠집니다.

“신앙 체험은 시작이지 끝이 아닙니다. 믿음을 신앙 체험 위에 세우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오스왈드 챔버스 기독교의 진리]라는 책에 보면 이 부분을 좀 더 명확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대부분 깊은 신앙 체험을 하고 나면, 다시는 천박한 삶을 살게 되지 않으리라 생각하는데, 그것은 엄청난 착각입니다. 깊은 체험이 있을지라도 부르심을 망각하면, 천박함과 이기심이 다시금 불쑥 튀어나오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는 죽음까지 직면했다가 살아난 체험을 통해 담대한 믿음의 행보를 이어나갔습니다. 그러나 어느새 그는 안일함에 빠져 주를 망각하고 다시 이기적이고 수치스러운 상태로 떨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믿음은 ‘자만’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형통할 때, 인간은 안락의자에 편히 앉아 자만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성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스스로 안락의자에서 내려와 매일의 일상에서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살아갑니다. ‘영적 공휴일’ 없이 깨어 있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신앙 체험 위에 우리의 믿음을 세우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요?

우리의 체험을 믿음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다른 사람을 향해 비판하거나 잔소리를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체험이 다른 사람의 체험과 어떻게 동일하겠습니까? 우리의 체험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아니,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나의 체험을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2. 문 두드리기

오늘 묵상 글에 말씀에 대한 아주 흥미로운 해석이 있습니다. 오늘 묵상에서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눅 11:19) 라는 구절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상을 해봅시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 위해 잠긴 문을 두드립니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내 손이 얼마나 더러운지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속에서 당연히 손을 깨끗이 하고 마음도 깨끗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리고 그 더러움 때문에 울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 앞에서 내면 상태 때문에 울어본 적이 있습니까? 이러한 슬픔은 자기연민과는 거리가 먼 것이며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깨닫고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자기연민으로 인한 슬픔은 주님에 대한 불신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내면 상태로 인한 슬픔은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슬픔입니다. 이때 우리의 심령에 ‘낮추라’는 음성이 들려옵니다. 하나님의 문을 두드리는 것은 자신을 낮추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문은 자기를 낮춘 자들에게 열립니다. 당신이 문을 두드릴 때, 더러운 손을 보면서 부끄럽더라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 부끄러움 가운데서 주님의 은혜를 경험할 것입니다. 갈보리 언덕 주님의 십자가 옆에 두 명의 강도가 함께 달렸습니다. 십자가에 달릴 정도로 흉악한 죄를 지었지만, 그들이 주님의 문을 두드릴 때 하늘 문이 열렸습니다.

누가복음 11장 10절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J. D. 그리어의 책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에서 ‘구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그 이름이 이 땅에서 영광을 받고, 우리 필요를 채워 주고, 우리 죄를 용서하고, 우리 안과 주변에서 기승을 부리는 악의 파괴적인 힘에서 우리를 구해 주길 원하신다. …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길 원하신다. … 우리가 구하기만 하면 온 세상이 복음으로 물들 것이다. 자, 여기서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드는 질문 하나를 던지겠다. ‘우리가 약속을 이뤄 달라고 요청하지 않아 하나님이 세상에서 혹은 우리 삶에서 행하시지 않는 일이 얼마나 많을까?


다시 한 번 정리합니다. 챔버스는 오늘 묵상에서 철저하게 구하는 ‘마음 자세’에 대해 설명하면서 ‘신앙 체험’만 고집하는 자세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목마름’은 우리 신앙인들이 마땅히 가져야 하는 영적 자세입니다. 우리가 오늘도 하나님 앞에 목마르지 않다면 영적으로 그만큼 무관심하다는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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