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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그리스도로 인한 자유함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 5:1

(PrayOn 기간에는 5시 30분에 오픈됩니다)

video poster

한 줄 노트

  • 하나님께 메인 자가 참 자유를 누리는 것은 기독교의 역설적 진리입니다.
  • 복음을 전한다면서 다른 사람의 자유를 구속하면 안 됩니다. 나를 자유하게 하는 복음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유의 복음이 되어야 합니다.

묵상질문

우리는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의 생각과 생활 방식을 전하고 있습니까?


묵상 레시피

◆골로새서 2:6-10 + 갈라디아서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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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2:6-10)
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10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갈라디아서 5:1)
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 바울은 성도들의 근원과 기준을 무엇으로 보았습니까? (6절)
  • 그리스도 안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7절)
  • 바울은 무엇을 주의하라고 경고합니까? (8절)
  • 바울은 흔들림 없이 누구를 따르라고 명령합니까? (8-10절)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6절)
‘받았다’에 쓰인 헬라어는 ‘전하다’라는 헬라어와 함께 랍비적 유대교에서 <가르침의 전승>을 표현할 때 쓰인 전문 술어이다. 유대의 율법 교사들은 자신들의 말을 모두 ‘모세’에게로 소급했다. 초대교회는 이러한 표현들에 준하여 자신들의 ‘근원’을 “주께로부터 받았다” (고전11:23) 라고 표현했다. 기독교의 복음은 유명한 교사들의 권위에 의지하지 않는다. ‘바른 행실’에 대한 지침으로서 전해진 예수의 말씀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다”를 지시한다(롬10:9, 고전12:3, 빌2:11).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굳게 서서(7절)
이 동사들은 모두 수동형으로 되어 있으며 주어는 ‘하나님’이다. ‘굳게 서서’는 진리 위에 세워진 굳건한 신앙, 교회 생활을 가리킨다. 7절은 믿음이 강화되는 데 중요한 것은 ‘믿는 행위’가 아니라 그들이 가르침 받은 ‘내용’이 무엇인가에 달려있음을 말하고자 한다. 때로 주체적이고 두터운 신앙이 거짓교사의 지도 아래 있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사람의 전통, 세상의 초등학문(8절)
원문을 직역하면 “누가 여러분을-포로로 삼지 않을까 조심하시오”다. ‘주의하라’는 ‘일깨라, 정신 차리라’는 뜻의 동사다. 철학은 헬라, 유대교 등 종교 안에 있는 분파, 경향, 관점들 모두를 말한다. ‘사람의 전통’은 유대교에서 스승과 제자 사이의 가르침 전수에 관해 쓰는 말이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직접 받은 사도적 전승, 바른 복음을 강조했다(갈1:12). 세상의 초등학문은(헬, 스토이케이아) 세계를 구성하는 기초적 원소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후에는 신화화되어 인간의 운명을 지배하는 인격적 존재로도 여겼으며, 인간의 운명을 조종하는 별들을 ‘스토아케이아’라고 칭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조들은 당시 교회에 침투하여 혼합주의적인 기독교 형태를 양산해 냈다.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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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정한 자유

오늘 챔버스가 택한 본문은 ‘자유의 복음’이라는 별명을 가진 갈라디아서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며 누리는 가장 큰 특권은 자유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믿는 자유를 가지고 도리어 다른 사람들을 억압하고 있지는 않은지 주의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로 인한 자유함을 누린다면 다른 사람들도 같은 자유함을 누릴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 자유함은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와 통치를 깨달음으로 인한 자유함입니다.”


어제 말씀을 통해 ‘심판과 사랑’이 서로 모순되지 않음을 배웠습니다. 오늘은 ‘자유와 기준’ 역시 상충하는 것이 아님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심판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았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기준을 통해 자유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예수님의 기준’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종종 착각합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을 강요하는 것과 주님을 믿는 믿음을 전하는 것이 동일하다고 말이죠. 우리는 복음을 믿고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얻은 자유를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해서 종의 멍에를 씌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진정한 성령의 사람은 ‘이것저것을 믿어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주님만을 믿고 주님을 기준으로 살아가라고 말합니다.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우리가 믿는 것을 믿는 믿음이 아니라,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써만 가능합니다.


챔버스의 말처럼 우리는 성경을 믿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성경이 계시하는 주님을 믿도록 요청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위해 부름 받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양심의 자유’를 제시하라고 부름 받았습니다.


진정한 자유는 우리가 주님의 통치 아래 있음을 깨달을 때 찾아옵니다. 세상의 율법과 기준은 우리의 자유를 앗아갑니다. 하지만 주님이 우리의 기준이 되어 다스리실 때는 진정한 자유가 찾아옵니다. 마틴 루터는 기독교인의 자유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크리스천은 가장 자유하다. 세상 누구에게도 예속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크리스천은 가장 충성스러운 종이다. 세상 누구에게나 예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이 놀라운 긴장 관계 속에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에게 속하였기 때문에 우리는 자유로이 그리스도의 멍에를 멜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자유가 ‘방종’이 되지 않는 이유는, 그 자유가 우리를 하나님과 세상에 대한 책임으로 자연스레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기독교의 역설이 있습니다. ‘자유하나, 자유로 종이 되는 진리’ 말입니다.


2. 진리로 자유하게 됨

주님의 기준은 우리에게 ‘멍에’입니다. 주님의 기준으로 우리가 평가 받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복음을 전할 때 우리가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멍에가 아닌 다른 멍에를 다른 사람의 목에 메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다른 멍에를 다른 사람의 목에 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우리와 생각이나 생활 방식이 다르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무조건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린 자유로 다른 사람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로 인해 자유를 누렸다면, 다른 사람들 역시 그리스도로 인해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


그동안 교회 안에는 이런 참 자유를 왜곡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복음으로 자유를 얻은 공동체에 생겨난 여러 가지 규칙들입니다. 이것은 내가 이렇게 복음을 받아들이고 자유를 얻었으니, 다른 사람들도 동일한 자유를 얻었으면 좋겠다는 열정에서 시작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복음이 아닌 ‘우리 신앙의 방식’이 자유를 얻는 통로로 대치됩니다.‘회심’이라는 말은 본래 복음으로 변화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이 경우 우리 신앙의 방식을 따르지 않으면 회심하지 않았다고 판단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신앙의 방식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면서, 서로 증오하고 심지어 서로 싸우는 일까지 발생합니다. 자유의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생명마저 위협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참지 못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멍에’를 메도록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참으셨는지 생각한다면,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가 명확해지지 않을까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내와 온유로 대하셨다면 우리도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온유와 인내’로 대하는 것이 진리를 희석시키는 일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진리는 진리로 선포되어야 합니다. 절대 진리를 가지고 어떤 상황들을 변론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서 제자 삼으라’고 하셨지 ‘사람들로 네 사상과 의견에 따르도록 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위해, 교제를 가르치고 배우는 것입니다.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 신앙은 더 이상 신앙이 아닌 ‘종교 생활’로 전락할 것입니다. 종교 생활은 우리에게 멍에가 됩니다. 종교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주님과의 관계가 소홀해지기 시작합니다. 종교 단체의 요구를 따라가기 버거워서 주님과의 교제 시간이 점점 줄어듭니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하게 함을 누리지 못하고 종교의 멍에가 우리를 구속하면 기쁨을 잃어버립니다. 자유로운 섬김과 봉사를 잃어버리고 오로지 의무와 책임에 짓눌려 허우적거릴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만 선포되고, 주님만이 우리 신앙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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