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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구름 속에서 무엇을 봅니까?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계 1:7
video poster

한 줄 노트

  • 고통은 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고통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선명하고 단순하게 만들어 가십니다.
  •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 순간 ‘구름’은 신비가 아닌 지식이 됩니다.

묵상질문

지금 당하고 있는 고통을 하나하나 열거해 봅시다. 그것이 주는 신비로운 의미는 무엇일까요?


묵상 레시피

◆시편 43편 + 요한계시록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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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43편)
1 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하시되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에 대하여 내 송사를 변호하시며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2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거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억압으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3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
4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요한계시록 1:7)
7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 시인이 처한 상황은 어떠합니까? (1절)
  • 시인의 심정은 어떠합니까? (2절)
  • 시인은 하나님께 무엇을 간구합니까? (3-4절)
  • 시인의 유일한 희망과 도움은 누구입니까? (5절)

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하시되, 나를 건지소서(1절)
시인은 원수의 압제로 인해 매우 괴롭다. ‘슬프게 다니다(히, 카다르)’에 쓰인 단어는 ‘재를 뒤집어쓰다, 어두운 색깔이 되다, 애도하다’의 의미가 있다. 시인은 마음만 슬픈 것이 아니라 겉보기에도 누추하고 비참한 모습이다. 그러나 시인이 더욱 괴로운 것은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것 같은 정서와 형편이다. 시인은 하나님을 ‘재판장’으로 부르며 판단과 변호를 요청한다. ‘판단하시되(히, 솨파트)’는 ‘다스리다, 심판하다’라는 뜻이다. ‘재판장’은 감정대로 판결하지 않는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판결을 내린다. 하나님만이 사람의 속마음과 일의 자초지종, 최선의 결론을 아시는 유일한 재판장이다. 시인은 원수 뿐 아니라 본인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정확한 평가와 지시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3절)
‘빛(히, 오레카)’에 쓰인 히브리어는 ‘빛’, ‘발광체’를 나타내지만 하나님과 관련해 사용될 경우 ‘하나님 자신의 영광’, 창조 때에 혼돈과 흑암에 비쳐진 ‘빛(창1:3)’을 가리킨다. ‘주의 진리(와아밋테카)’ 역시 그 자체로는 ‘확실함’, ‘진리’, ‘진실’을 나타내지만, 하나님과 관련해서 사용될 경우 ‘하나님의 진실하심, 의로우심, 신실하심’을 나타낸다.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5절)
우리는 구름을 통해 진리라고 ‘여기던’ 것, 분별의 기준이 되었던 개개인의 소신을 버리게 된다. 인간이 인식하는 선과 진리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감정과 정서는 더욱 변화무쌍하다. 시인은 어둠, 거짓과 악독이 둘러싼 현실에서 빛, 진리, 진실보다 그 자체 되신 ‘하나님’을 바라고 있다.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유한한 선과 진리를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선 자체이며 진리 자체이신 ‘하나님’을 바란다. 불확실한 것들 속에 유일하게 확실하신 한 분, 구원자 하나님을 찬송한다.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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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름이 뜻하는 것

‘구름’과 ‘어둠’은 챔버스의 묵상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입니다. 챔버스 자신이 4년간의 구름과 어둠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과 전적으로 새로운 관계에 들어가는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요한계시록 1장 7절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는 말씀을 통해 ‘구름’은 하나님과 관련된 단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름은 하나님의 통치에 반항하는 듯한 우리 개인 생활의 안팎에서 일어나는 슬픔, 고통, 궁핍의 상황들입니다.”


하나님과 관련된 구름을 통해 우리는 믿음의 길을 배웁니다. 이렇게 힘들고 아픈 구름들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만일 슬픔과 사별, 고통이 하나님과 함께 오는 구름이라면 이 구름을 보는 우리의 관점이 새로워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챔버스는 완전히 새로운 신앙적 관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름 없이는 우리에게 가까이 오실 수 없습니다. 그분은 청명하게 비치는 가운데 오지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르치기 위해 이런 구름을 보내시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고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구름을 우리에게 보내셔서 우리가 지금까지 배워서 알고 있었던 지식들을 버리기 원하십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신앙고백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름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구름을 통해 단순하고 명확하게 다가오십니다. 우리는 구름 속에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습니다. 챔버스는 이 구름의 시간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그림자가 되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선명해질 때까지 구름은 계속해서 찾아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문득 이런 의문이 듭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친밀하면 우리에게 고통과 슬픔, 사별과 같은 아픔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말인가요? 저는 이 부분을 이렇게 이해합니다. 구름이 더 이상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 문제가 되지 않는 때가 오면, 그 구름은 더 이상 우리 인생의 구름이 아니겠지요. 우리가 오늘 물어야 하는 것은 지금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가 어떠하냐는 것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순례자의 노래]에 나오는 글입니다.

안락의자에 앉아 “네, 저는 하나님께서 이러저러한 일을 행하실 것을 믿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저의 모든 필요를 채우실 것을 믿습니다”라고 말했는데 돈도 없고, 미래도 없다면 어떠한 반응을 보이겠는가? 끝까지 하나님을 믿으며 믿음의 연단을 통과할 수 있겠는가? 아니면 뒤로 물러나 뭔가 다른 것을 의지하겠는가?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시는 것은 시련을 이긴 믿음이다. 만일 우리가 믿음의 시련을 통과하여 이기면 하늘 창고에는 많은 것들이 축적된다. 그래서 다시 시련이 와도 그 자원을 사용함으로써 쉽게 이길 수 있다.


2. 하나님을 알게 됨

조금 전에 ‘구름이 구름으로 느껴지지 않는 때’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새로운 관계는 새로운 관점을 가졌을 때 가능합니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때는 구름이지만,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더 이상 구름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이해할 수 없는 섭리와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 사이에는 어떤 연관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우리의 지식에 비추어 인생의 신비들을 해석하는 것을 배워야합니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신비’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그것을 알게 되면 ‘지식’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신비에 가려진 우리 인생의 문제를 푸는 열쇠입니다. 참 신비로운 일입니다. 인생의 구름을 통해 그 구름을 제거하는 방법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지식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구름이 더 이상 구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지식으로 구름을 바라볼 때,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의 성품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챔버스는 오늘 묵상에서 ‘변화산 체험’을 비유적으로 인용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9장 34절 “이 말 할 즈음에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는지라 구름 속으로 들어갈 때에 그들이 무서워하더니” 제자들은 왜 두려웠을까요? 구름 속에서 주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하늘에서 음성을 듣고 주님을 바라볼 때 그 두려움은 사라질 것입니다. 구름 속에서 주님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구름 속에서 우리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나요?


오늘은 중세 영성가 메히틸드(Mechthild)의 일화로 묵상 글을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오늘 묵상을 잘 이해하도록 설명하는 이야기입니다.

메히틸드가 하루는 자기가 오랫동안 겪고 있는 육신의 고통 때문에 괴로워하며 하나님께 그것을 없애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 때문에 기뻐하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의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왼손에는 고통이라는 붉은 포도주를, 오른손에는 하늘의 위로라는 흰 포도주를 들고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장 고결한 사람은 붉은색과 흰색의 포도주를 모두 마시는 사람이다.”


이 환상은 메히틸드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었습니다. 삶의 고난은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와 동일한 무게의 축복이라는 응답입니다. 왜냐하면 고난을 통해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삶의 고난 속에서 교만과 욕심과 집착을 모두 내려놓고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것을 배우지 못한다면, 우리는 고난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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