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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거절해야 할 것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고후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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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빛이 우리 안에 들어와 어둠을 밝히면 즉시 수치스러움을 느낄 것입니다.
  • 정직은 사람 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묵상질문

하나님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함정’이 당신 속에도 있습니까?
더 깊은 함정에 빠지기 전에 하나님 앞에서 고백해야 합니다.


묵상 레시피

◆고린도후서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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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4:1-6)
1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2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3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5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 사도직을 행하며 낙심할 때 바울을 붙들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1절)
  • 바울이 하나님의 일을 하며 금한 것은 무엇입니까? (2절)
  • 사람들이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3-4절)
  • 거짓 사도들과 바울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5절)
  •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빛을 비추셨습니까? (6절)

이 직분을 받아, 낙심하지 아니하고(1절)
이 직분은 사도직, 더욱 구체적으로 ‘새 언약의 일꾼(고후3:6)’으로 보인다. 바울은 사도직을 수행하며 여러 어려움을 겪었지만 ‘낙심(헬, 엥카케오)’하지 않았다. 이 단어는 ‘악에게 굴복하다’, ‘용기를 잃다’라는 뜻이 있으며 단순히 힘이 빠진 정도가 아니라 아예 ‘포기’하는 것을 가리킨다. 매 맞음과 핍박, 날선 비난, 음해들 속에서도 사역을 지속할 수 있던 것은 ‘긍휼하심을 입었기’ 때문이다(헬, 엘레에데멘, 신적 수동태).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2절)
‘부끄러움(헬, 아이스퀴네스)’은 수치스러운, 불명예스러운 것을 의미한다. 거짓 사도들의 진실하지 못한 사역 태도를 가리킨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했지만 실상 자신의 야욕을 위해 일했으며, 이를 성취하고자 은밀한 수단들을 사용했다. 바울은 이러한 행위를 ‘버렸다(헬, 아페이폰).’ 완전한 결별, 단호한 결단을 의미한다.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2절)
‘속임(헬, 파누르기아)’는 영리하다는 뜻이다. 주로 부정적 의미인 ‘교활한, 속이는’이란 뜻으로 읽힌다.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술수나 속임수를 개의치 않는 자세’를 가리킨다. 바울은 이들을 ‘거짓 사도, 속이는 일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라 칭하며, 사탄의 특징을 가진 자들로 여긴다(11:13-15)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2절)
‘혼잡하게 하다(헬, 돌룬테스)’는 ‘미끼로 잡다, 거짓으로 속인다’라는 뜻을 지녔다. ‘불순물을 섞어 순도가 떨어진 금이나 포도주의 상태를 묘사할 때’ 사용되던 단어다. 앞서 바울이 언급한 ‘새 언약(3장)’에 비추어 볼 때 옛 언약인 모세의 율법을 지나치게 강조한 자들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혹은 당시 고린도가 헬라 철학 아래 수사학, 웅변술의 중심지였으므로 ‘청중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 말씀의 엄격성을 약화시킨 것, 곧 인간의 철학들과 혼합한 사실’을 지적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3절)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은 세상 신(4절, 요12:31,14:30,16:11, 고전2:8, 엡2:2), 즉 사단에 의해 영안이 가리어진 자들이다. 사단은 믿는 자의 마음을 ‘혼미하게(헬, 튀플로오)’ 만든다. 본래 ‘시각 장애인’을 뜻하는 단어에서 파생한 이 단어는 ‘눈멀게 하다’라는 의미다. 사단은 영적인 눈을 멀게 하여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한다(4절). 바울은 다메섹에서 ‘정오의 햇빛보다 더 밝은 빛’,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행26:13). 그리고 영적인 눈을 떴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6절)
태초에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며 ‘빛이 있으라’ 말씀하셨다(창1:3). 혼돈과 공허, 흑암이 물러나며 하나님의 창조가 시작되었다. 이제 하나님은 말씀이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시며 새로운 창조를 이루신다. 하나님의 복음을 알게 하시고 살게 하시며 누리게 하신다.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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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끄러운 일 버리기

오늘 묵상은 이런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당신은 ‘숨은 부끄러운 일’을 버렸습니까? 빛으로 드러나면 당신의 명예가 훼손되는 일들 말입니다.”


만일 우리의 마음속에 이렇게 숨기고 싶은 일들이 떠오른다면 거절해야 합니다. 이런 부끄러운 일들은 지난날 우리 육체를 치장하고자 했던 ‘죄성’입니다. 이러한 성향은 우리가 계속 경계하지 않으면 언제 고개를 들지 모릅니다.

손성찬 목사가 쓴 [일상의 유혹]에 나오는 글을 보겠습니다.

미국의 한 조사에 의하면 성인이 하루에 하는 거짓말은 평균 200회 이상이라고 한다. 누군가와 첫 대면을 했을 때 사람은 10분 안에 3회 이상의 거짓말을 한다는 보고도 있다. 이 정도면 거의 호흡이고 삶이다. 게다가 우리 시대는 거짓말쟁이를 옹호한다. 자기 자신을 잘 포장해야 하고 남에게 자신의 가치를 잘 팔아야 한다. … 솔직히 사회가 원하는 모습으로 더 정교하게 ‘메이크업’하는 자가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쉽다. …

핵심은 조금 다른 곳에 있다. 사실 거짓말을 가장 많이 건네는 대상, 가장 무거운 거짓말을 던지는 대상은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거짓말에 스스로 넘어간 후에야 타인을 속인다. 그렇다. 인간은 늘 자기 자신을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무겁게 속인다.


모든 사람에게는 부끄러운 일과 마음이 숨어 있습니다. 현대인은 그것을 마음에 품고도 자연스럽게 겉을 포장하는 데 익숙합니다. 거짓말에 능숙합니다. 이는 타인을 넘어서 자기 자신에게도 해당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부정직의 모습을 철저하게 거절해야 합니다. 스스로를 더 치장하기 위한 거짓 때문에 결국 “하나님께서 당신을 파멸케 하실 것입니다.”


부끄러운 일을 버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빛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아주 유명한 이야기죠. 미국의 정치가이자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벤자민 프랭클린은 자신이 사는 필라델피아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고자 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던 중, 집 앞에 선반을 만들고 아름답고 커다란 등을 하나 준비하여 올려 두었습니다. 사람들은 등불은 집안에 두어야 하는 것이며, 집 밖에 두는 것은 불필요한 낭비라고 여겼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한 주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여전히 거리를 환하게 밝히고 있는 등불을 보며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거리에 널브러져 있는 장애물을 피할 수도 있었고, 멀리서 방향을 알 수도 있었습니다. 위험한 요소들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도 있었기에 더 안전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깊은 뜻을 이해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하나둘 집 밖에 등불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필라델피아는 길거리를 가로등으로 환하게 만든 미국의 첫 번째 도시가 되었습니다. 세상 속에서도 빛 가운데 거할 때, 더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사람들의 어두운 내면이 만든 각종 위험 요소로부터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빛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 안에 부끄러운 일을 숨기는 이유는 빛 되신 예수를 마음 가운데 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 속이지 않기

우리가 경계하고 거절해야 하는 것 중 하나는 다른 사람들을 속이면서까지 목적을 달성하려는 마음입니다. 정직하지 못한 방법으로 우리의 수치를 가리려고 노력하지만 전혀 소용이 없습니다. 이 책의 주제인 가장 중요한 문장이 오늘 묵상에서 등장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당신을 속이면서도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에게 한층 높은 차원의 삶을 살라고 요구하십니다. 바로 최상의 주님께 당신의 최선을 드리는 것입니다.”


최상의 하나님께 최선을 드리기 위해서는, 가능한 최고의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정직입니다. 하나님은 정직한 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정직한 자의 예배를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불의한 재물보다 정직한 자의 헌신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우리가 이루는 성공보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묵묵히 그 길을 가는 모습을 사랑하십니다.


챔버스는 오늘 묵상에서 ‘함정’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속이는 것이 무서운 함정이라고 말합니다. 속이는 것으로 잠시 허물을 덮어둘 수는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기 때문에 결국 그것이 우리를 파멸로 이끌 것입니다. ‘정직’은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속임이 함정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거짓이 드러나지 않을수록 점점 더 깊은 늪으로 빠져들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속이고 드러나지 않는 죄를 보면서 하나님도 속일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면 겉잡을 수없는 수렁에 빠지게 됩니다.

“속임은 당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거짓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 속임으로 다른 사람들을 이끌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좀 더 정직하게 ‘속임’의 이유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거룩하게 포장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꿰뚫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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