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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거룩의 조건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살전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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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거룩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싸움을 통해 얻어내는 것입니다.
  • ‘나’만 홀로 남겨져 아무것도 의지할 수 없어 오롯이 하나님만을 바라볼 때 ‘거룩의 문’으로 들어갑니다.

묵상질문

하나님 외에 당신이 의지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하루를 지나며 하나하나 떼어내는 작업을 해보면 어떨까요?


묵상 레시피

◆누가복음 14:25-35 + 데살로니가전서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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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4:25-35)
25 수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28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29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30 이르되 이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 명으로써 저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32 만일 못할 터이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33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34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35 땅에도, 거름에도 쓸 데 없어 내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

(데살로니가전서 4:3)
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 예수님이 말씀 하신 참 제자의 조건은 무엇입니까? (26-27절)
  • 가족과 자기 목숨까지 미워한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26절)
  •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27절)
  • 제자들은 무엇을 각오해야 합니까? (28-33절)

수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25절)
많은 무리들이 예수를 따르기 위해 몰려들었다. 예수는 그들이 단지 ‘따르는 자’에 머물기보다 ‘제자’가 되길 소망하며 세 가지 비유를 들려주신다. 망대를 세우는 자의 비유(28-30절), 전쟁을 준비하는 왕의 비유(31-32절), 맛 잃은 소금의 비유(33-35절).

미워하지 아니하면(26절)
‘미워하다(헬, 미세오)’에는 2가지 의미가 있다. 1) ‘이것을 사랑하고 저것을 미워하라’는 말처럼 전형적인 유대식 표현으로 ‘미워하다’라는 문자적 의미보다는 ‘덜 사랑하다’를 뜻한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 우선순위를 구별하라는 뜻이다. 2) ‘근본적 단절’의 의미를 포함한다.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앞서 언급한 대상들과 단절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27절)
‘지고(헬, 바스타조)’는 옮겨가다, 참다, 짐을 지다, 라는 뜻을 지닌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의 고난을 다각도로 표현한 단어다. 제자는 어떤 고난도, 심지어 극형인 ‘십자가’와 ‘죽음’도 감수해야 한다. 예수를 따를 때 치러야 할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28-30절). 대적해야 할 적들도 무수히 많을 것이다(31-32절). 비용을 계산해보지 않고, 싸움을 헤아려 보지 않고 달려들었다가는 당혹스러운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 것처럼 제자의 길도 마찬가지다. 소금이 짜야 소금인 것처럼 제자는 제자의 도를 갖추어야 한다. “모든 소유를 버릴” 각오가 필요하다(33절).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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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싸움에서 시작되는 거룩

오늘부터 이틀 동안 우리는 ‘거룩’이라는 주제를 묵상합니다. 오늘은 거룩함을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떤 상태로 몰고 가시는지에 대해서, 내일은 어떻게 예수님의 거룩함으로 우리를 채워주시는지 묵상할 것입니다. 2월 8일 묵상 “하나님의 관점에서의 거룩”을 잠깐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거룩함을 이루기 위해서 살려야 하는 것이 있고, 죽여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 싸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내면에 무언가를 요구하실 때 시작됩니다.

“성령께서 거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보여주시면 바로 싸움이 시작됩니다.”


이 싸움은 치열한 과정을 지납니다. 누가복음 14장 26절 말씀을 보세요.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이 과정에는 친구도 부모도 형제도 없으며, 자기 유익도 구할 수 없는 ‘죽음의 장소’에 오직 ‘나 자신’만 남습니다. 이 상태에 이르렀을 때 거룩의 조건을 갖춥니다. 거룩의 조건을 갖추었다는 것은 비로소 거룩을 위해 싸울 준비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화평이 아닌 검을 주러 오셨다는 예수님의 말이 바로 이 싸움을 두고 하신 말씀일 것입니다. 이 싸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거룩에 실패합니다. 이 싸움은 우리에게 기꺼이 주님의 죽음과 하나 되기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주님의 죽음과 하나 되기를 거절하며 거룩에 실패합니다.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이 치열한 싸움 앞에서 ‘결단’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A.W. 토저의 [믿음에 타협은 없다]라는 책에 인용된 알버트 심슨(A. B. Simpson, 1843-1919)목사의 시 <네 마음을 정하라>를 조용히 묵상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빌라도의 법정에 서 계시니 모두에게 버림받고 배신당해 혼자이시다.

잘 들어보라! 저 갑작스러운 부름이 무엇일까? 네 마음을 정하라.


예수께서 조용히 재판을 받으시니 당신은 거짓 편에 서려는가?

아니면 해를 각오하고 진실 편에 서려는가?

빌라도처럼 그분을 피하려는가? 고난을 각오하고 그분을 택하겠는가?

그분을 피하려고 해봤자 헛수고니 네 마음을 정하라.


베드로처럼 네 주님을 부인하려는가? 아니면 그분의 원수들과 담대히 맞서겠는가?

그분을 위해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겠는가? 네 마음을 정하라.

그분께 이렇게 말씀드려라. “예수님, 오늘 제 마음을 드립니다.

예수님, 주님을 끝까지 따르겠습니다. 주님께 기꺼이 순종하겠습니다.”


예수님을 향해 네 마음을 정하라. 중간지대는 없도다. 언젠가 너는 “예수님이 나를 어떻게 하실까?”라고 “예수님이 나와 함께 무엇을 할 것인가?”라고 묻게 될 것이다.


2. ‘나’만 남을 때

어제 말씀에서 ‘절망’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현관이었다면, 오늘 묵상에서는 그저 죽음만 기다리는 ‘나 자신’이 되는 것이 거룩의 조건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이 ‘나’만 남겨진 상태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 관심을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온갖 요소들을 죽이는 것이 아닐까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나 자신이 생각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입니다. 우리가 거룩하지 못한 삶을 사는 이유는 주변에 얽힌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주님만을 생각해야하는데 우리에게는 고려할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오늘 묵상 글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룩함’은 우리 삶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요소들을 떼어내 단순해지는 것이구나! 아니, 단순하지 못하도록 붙어 있는 집착과 관념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구나! 세상에 믿을 것이 너무 많으면 오롯이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서기가 참 힘들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려할 것이 많으면, 하나님 역시 그 고려 대상 중에 하나에 불과할 테니 말입니다.


‘나’만 남는 순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온전히 거룩하게 만들어 가십니다. 이 순간이 오면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 이외의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출애굽기 3장에 모세가 소명을 받는 장면이 이러한 관계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가 선 곳이 거룩한 곳이 되고, 거기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체험하는 순간 말입니다. 바울선교회 국제본부장인 김태현선교사가 쓴 “비움과 채움, 하나님의 다루심”이라는 칼럼의 일부입니다.

모세를 훈련한 하나님의 훈련은 세상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함이 있다. 세상의 모든 훈련은 더하기 훈련이다. 즉 자기실현(Self-fulfillment)을 위하여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다. 더하면 그만큼 나의 소유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세를 다루신 하나님의 훈련은 철저히 빼기 훈련이었다. 하나님의 다루심은 인간적인 것을 철저히 비워버리고, 하나님 자신의 것으로 채우는 과정이다. 그의 왕자로서의 신분을 빼야 했고, 젊음과 자신의 정의감을 빼야 했다. 광야 서편 끝에서 모세가 대면한 하나님의 현존 앞은 그 어떤 것도 내세울 수 없는 벌거벗은 실존의 자리였다. 여기는 내 것이라고 할 어떤 소유도 남지 않았다. 그는 혈혈단신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했다. 광야 서편에서 그는 출구 없음(NO EXIT)과 마주쳐야 했다. 좌우상하가 꽉 막힌 상태라고 보면 된다.


모세를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 세우시는 거룩한 훈련 과정은 ‘나 자신’ 외에 무엇을 더하는 것이 아닌, ‘나 자신’ 밖에 남지 않도록 빼는 것이었습니다. ‘거룩함’이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태’에 이르는 것입니다.

“거룩이란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뭔가 추가하시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그분이 바로 나의 거룩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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