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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감히 걱정함으로 하나님을 모욕합니까?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고후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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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일에 대하여 함부로 ‘내 힘으로 할 수 없다’는 교만한 말을 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 염려는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며 크리스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묵상질문

지금 당신이 염려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염려 가운데 하나님이 개입하고 계십니까?


묵상 레시피

◆사사기 6:11-23 + 고린도후서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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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6:11-23)
11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12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13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또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 주셨나이다 하니
14 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하시니라
15 그러나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하니
16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시니라
17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만일 내가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18 내가 예물을 가지고 다시 주께로 와서 그것을 주 앞에 드리기까지 이 곳을 떠나지 마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너 돌아올 때까지 머무르리라 하니라
19 기드온이 가서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하고 가루 한 에바로 무교병을 만들고 고기를 소쿠리에 담고 국을 양푼에 담아 상수리나무 아래 그에게로 가져다가 드리매
20 하나님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고기와 무교병을 가져다가 이 바위 위에 놓고 국을 부으라 하니 기드온이 그대로 하니라
21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잡은 지팡이 끝을 내밀어 고기와 무교병에 대니 불이 바위에서 나와 고기와 무교병을 살랐고 여호와의 사자는 떠나서 보이지 아니한지라
22 기드온이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을 알고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 하니
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고린도후서 1:20)
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기드온을 사사로 부르십니다.
  • 하나님의 사자는 기드온을 무엇이라고 불렀습니까? (12절)
  • 기드온은 무엇을 하고 있었으며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습니까? (11,15절)
  •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무엇을 명령하셨고, 약속하셨습니까?(14,16절)
  • 기드온이 하나님께 요청한 것은 무엇입니까? (17-21절)
  • 그제서야 기드온이 깨달은 것은 무엇입니까? (22-23절)
    기드온의 영적 둔감함, 주저와 근심, 하나님의 명령을 묵상해 보십시오.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15절)
기드온의 가문은 부유하고 상당한 위상을 가진 가문으로 추정된다. 바알의 제의 장소, 아세라와 신전 요새를 소유할 뿐 아니라 제의 후원자일 정도였다(25-26절). 기드온은 바알 단을 허물 때 10명의 하인을 데려 간다(27절). 기드온은 지나친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하나님’에 대한 영적 둔감함 가운데 있었다.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14절)
이 문장은 소명 공식이다. 그러나 ‘아니냐’는 문장으로 약간 비틀려 있다. 하나님이 부르셨음에도 계속해서 깨닫지 못하고 주저하며 증거를 요구하는 기드온을 향해 하나님은 ‘내가 지금 너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기드온은 여호와의 사자를 알아보지 못하고 첫 대면부터 불평을 쏟아 놓는다(13절). 하나님께서 계속 그를 ‘향하여’ 말씀하고 부르시지만(14절), 기드온은 나중에서야 이를 깨닫는다(22절).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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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할 수 없다고 말하지 말라!

끊임없는 불평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참혹하게 망가뜨리는 주범입니다. 불평은 대개 우리가 가진 능력을 잘못 판단하는데서 옵니다. 우리의 재능과 능력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올까요? 챔버스는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의 비유’를 통해 우리의 능력을 ‘자연적인 재능’이 아닌, 오순절 이후에 성령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능력으로 해석합니다.


‘영적 역량’이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능으로써가 아니라, 약속된 성령에 의해 평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만일 하나님이 주시기 원하는 만큼의 성령 충만함이 우리에게 없다면 이렇게 불평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제가 일할 수 있는 능력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하십니다. 당신은 제게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하시기에 이제 이 상태로는 당신께 충성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일을 ‘자연적 인간의 능력’으로 하려니 당연히 능력의 한계를 느끼겠지요.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을 받았다면, 그 성령님의 역사가 우리 안에서 일어나기를 기대하지 않겠습니까?오늘 본문 고린도후서 1장 20절 말씀에서 우리가 기억해야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예’가 되니’ 라는 부분이 후반부의 ‘아멘’이라는 말과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라고 말씀 하신 부분에 대하여 우리가 ‘아멘’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아멘은 ‘정말 그렇다’, ‘진실로’라는 뜻의 히브리어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는 기도나 찬송의 마지막을 ‘아멘’으로 끝맺음 합니다. 그렇게 될 줄로 믿고 ‘아멘’하는 것이죠.


본래 유대교 회당에서 랍비가 성경의 한 구절을 읽을 때, 성도들이 그 구절을 따라 말함으로써 말씀 교육을 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아멘’으로 화답하며 따라하는 것을 대신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전통을 따라 목회자가 설교 중 중요한 구절을 말하거나, 말씀을 인용하게 되면 ‘아멘’하고 따라하게 되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아멘’의 본래 의미를 잘 보여주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아멘’을 합니다(느 5:13).

2)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기 위해 ‘아멘’을 합니다(고후 1:20).

3) 하나님 앞에 축복 받기 위해 믿음으로 ‘아멘’을 합니다(엡 3:21).

4)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확신할 때 ‘아멘’을 합니다(계 1:7, 22:21).


우리의 능력을 보면 의심할 수 있으나,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에 대하여는 ‘아멘’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서만 평가됩니다. ‘제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라는 말은 겸손하게 들리지만 무척 교만한 말입니다. 이렇게 말할 때, 이 일에 대한 기준이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지 않고 ‘자신’에게 있으니 말입니다.


2. 자기 정당화는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종이 감히 주인을 정죄했던 것을 아시나요?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1달란트는 엄청나게 많은 돈입니다. 그것만 있어도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정도의 금액입니다. 그런데 하인은 자신을 정당화하며 주인을 비난했습니다. 주인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것을 주셨는데, 하인은 주인의 요구가 너무 무리하다고 생각한 것이죠. 마태복음 25장 24-25절을 보세요.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이 사람은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주인을 모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불신앙이 우리에게도 똑같이 나타납니다.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하나님을 비난하지만, 이미 하나님은 우리에게 충분한 것을 맡겨주셨습니다. 챔버스의 말입니다.

“당신은 주님께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고 말씀하셨는데도 불구하고 감히 걱정함으로 하나님을 모욕한 적은 없습니까?”


걱정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육신적으로는 ‘나에게는 한 번도 좋은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어’라고 말하면서,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성품을 헐뜯으면서 그렇게 합니다.

이런 자들을 향해 주님은 이렇게 질책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26절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게으른 자의 특징은 언제나 걱정과 핑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걱정을 뜻하는 영어 단어 ‘worry’는 ‘메림나오(merimnao)’라는 그리스어에서 나왔습니다. 이 단어는 ‘나누다’라는 뜻의 ‘메리조(merizo)’와 마음이라는 뜻의 ‘누스(nous)’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어원을 따져보면 걱정이라는 단어는 “마음이 나눠져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염려하지 말라는 뜻은 ‘하나님을 믿는 마음’을 나누지 말라는 뜻입니다. 신학자들이 1세기 초대교인들의 삶이 기록된 서류들을 뒤지다가, 그들의 문서에서 이런 이름을 가진 사람의 수가 굉장히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합니다. 티테디오스 쟌, 티테디오스 폴, 티테디오스 바나바, 이렇게 이름 앞에 특별한 단어가 붙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티테디오스’가 무슨 의미였을까요? ‘티테디오스’라는 말은 염려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초대교회 교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이름, 혹은 크리스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말이 바로 ‘티테디오스’였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하는 것이 있습니다. 영적인 일은 우리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약속하신 성령님에 의해 평가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대답은 성령을 받았는지의 여부에 달린 것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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